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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현대 관객의 우울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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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5-31 18:43:40
  •  |  본지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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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중 시사회 때 영화를 보지 않고 일반 관객과 섞여 영화를 본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운 이유는 평론가와 기자로 가득 찬 객석은 아무 반응이 없고, 너무 냉랭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대중적 반응에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비평에 대중적 반응이 꼭 포함되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그런 소신은 꽤 존중할 만한 것이라고 보았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자서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영화 감식안을 터득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영화에 관한 안식이 높은 관객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는 혼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어디에나 널려있음에도 극장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1000명이 동시에 깔깔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관객 사이에 앉아 있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것은 경이로움이며 넋을 잃는 체험이라고.

스크린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객석은 그에 반비례하여 점점 협소해지는 오늘날의 극장 환경에서 이런 경이로움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나마 그리 넓지 않은 객석도 만석으로 채워지는 경우는 잘 없다. 대규모 관객이 자아내는 환호와 훌쩍거림, 탄성과 신음, 웃음소리와 비명은 극장을 찰나의 순도 높은 공동체로 탈바꿈시킨다. 그때 관객의 일부가 된 평론가는 그 영화에 대한 대중의 즉각적인 코멘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대중과 소통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또 그 일부가 되는 것에서 비롯되는 희열은 이제 향수 어린 추억이 되었다.

40여 년간 가장 부지런한 현장 평론가로 활동했던 로저 에버트의 극장 노스탤지어에는 확실히 유별난 측면이 있다. 나로 말하자면 도리어 대규모 관객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고 할 수 있다. 한산한 극장을 골라 관객이 가장 적은 평일 낮을 노려, 웬만한 객석 소음에도 방해받지 않으며 오로지 홀로 스크린과 마주하는 환상이 마련되는 자리를 찾아 앉는 나는 소외를 자청한 외톨이 관객이다. 떠올려보니 주변의 지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한 자리, 왼편 저 앞 구석자리를 지정석으로 삼는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왜 거기 앉느냐고. 그가 들려준 긴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방해받기 싫다, 쯤이 되겠다. "거긴 절대 아무도 안 앉거든."
이처럼 영화보기라는 집단체험을 최대한 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안간힘에는 애처로운 구석이 있다. 현대 영화의 혁명가 장 뤽 고다르는 영화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를 위해 뒷좌석을 선택하고, 유명한 시네필 프랑수아 트뤼포는 연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스크린 앞좌석에 코를 맞대는 식이었다면, 기껏 관객을 회피하기 위해 구석과 앞자리로 도망 다니는 우리의 좌석 선호도에는 좀 한심한 구석이 있다. 당신이 선택한 자리가 당신이 어떤 관객인지를 말해준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실제는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타인과의 공감보다는 스크린과 단독으로 마주하는 나르시시즘적이고 자폐적인 반응이며 타인을 내 영화 관람의 잠재적인 방해꾼으로 가정하는 이 방어적인 태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서글픔이 묻어있다. 객석의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외따로 앉은 현대 극장 관객의 우울한 초상이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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