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봉황동에 위치한 가야시대 왕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수릉원. 동쪽은 남성의 이미지, 서쪽은 여성의 이미지를 살려 수로왕과 허황후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공설 운동장 철거 후 조성, 가야 궁궐 일부 부지로 추정돼
- 수종 선정 등 공원 구성에 김수로왕·허황후 모티브 삼아
- 생태학습·문화축제 등 열려…지역민 교육·문화 공간 역할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시간을 쪼개 전국 유명산이 아니더라도 도심 야산에서 시원한 그늘을 찾아 숲 바람을 맞고 싶어진다. 청량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숲속에서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고 싶은 게 도시민의 바람일 것이다.

이런 여가 공간이 경남 김해 시가지 한가운데 있다. 수만여 그루의 나무가 우거진 도심 숲이면서 가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봉황동 수릉원이다.

■왕이 거닐던 정원으로 복원

	수릉원 내에 있는 허황후 동상

수로왕과 대성동 고분군, 봉황대 등 가야 유적 트라이앵글 중에 위치한 수릉원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과 허황후가 함께 거닐었던 숲이라는 의미로 시민 공모를 통해 이름이 붙여졌다. 이 숲은 단절된 수로왕릉과 가야 왕들의 능인 대성동 고분군을 연결해 주고 있다.

김해시는 수로왕릉과 대성동 고분군 중앙에 위치해 가야의 맥을 끊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오던 김해공설운동장을 2004년 철거하고 이 자리에 수릉원이라는 쉼터를 조성했다. 옛 공설운동장 부지 3만9496㎡에 55억 원을 들여 2005년 4월께 개장한 수릉원은 경남에서는 보기 드문 도심 숲으로, 주말과 휴일이면 무더위를 피해 찾는 사람의 발길로 북적이고 있다.

수릉원은 부지 전체를 옛 가야 궁궐터의 지형을 살리고 공원 곳곳에 상수리나무 등 재래수종을 심어 역사성과 자연친화적 요소를 한껏 살려냈다. 역사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현재의 수릉원이 2000년 전 가야 시대에는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바로 옆 한옥체험관 한 켠에서 가야의 궁궐 터가 발견된 것을 감안하면 정확한 고증이 없더라도 궁궐의 일부로, 수로왕이 허황후와 함께 거닐던 궁궐이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수릉원은 가야의 궁궐 일부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민초들의 집터로, 현대에 이르러 공설운동장으로 활용되다가 결국 가야시대로 되돌아간 과거의 숲이요, 미래의 숲이라 하겠다.

■2만 그루의 도심 숲 단지

수릉원 일대는 거대한 숲 단지다. 수로왕릉으로 연결되는 동쪽은 상수리나무와 가시나무, 산길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힘차게 위로 쭉쭉 뻗었으며, 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서쪽에는 수천 그루의 신이대와 야생감, 돌배, 살구, 개복숭아 등 열매를 맺는 유실수가 심어져 있다. 언덕에는 인도에서 온 허황후를 기리기 위해 불교를 상징하는 피나무들이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김해시 관계자는 "동쪽에 곧게 뻗은 울창한 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로왕의 기상을 간직한 남성스러움을, 서쪽에 유실수 등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밀집한 것은 여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를 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수릉원에는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노각나무 산단풍 산벚나무 산수유 수양벚나무 이팝나무 동백나무 치자나무 조팝나무 모란 등이 곳곳에 식재돼 있어 자연생태학습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곳에 심은 교목과 키가 작은 관목까지 합하면 2만여 그루가 넘고 있다. 또 능선과 오솔길 옆, 나무 아래 등에는 억새, 털부처꽃, 마삭줄, 수크렁, 양지꽃 등 야생화와 야생초 등 22만 포기가 심어졌다.

■교육·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봉황대

김해시는 최근 수릉원에 허황후 동상을 세우고 부산 강동동 원예시험장에서 우장춘 박사가 기르던 200년생 장군차나무를 옮겨다 심었다. 가야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허황후가 인도에서 시집 올 때 차 씨앗을 가져와 차가 재배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장군차'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김해시는 장군차나무를 1990년대 지역 특산 차로 지정한 이후 전국적인 명품 차로 육성하기 위해 재배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허황후 동상과 신단수, 피나무 등을 통해 가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역사 교육과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체험관 방면의 수릉원 남쪽 한 켠에는 자연생태학습이 가능한 340여 ㎡의 연못과 습지가 마련돼 있다. 해상왕국인 가야를 표현하고 수로왕과 허황후가 거닐었던 정원의 연못을 구상한 것으로, 가야시대의 대표 습지인 함안습지를 표본으로 해 만든 친수공간이다. 이곳에는 가시연꽃과 애기마름, 노랑어리연꽃, 물억새, 물옥잠 등 습지식물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수릉원에서 열리는 가야축제에는 지역민들은 물론 인근 부산과 경남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지난 4월 이곳에서 열린 김해 가야문화축제에는 100만 명이 다녀갔다.


# 수릉원 주변 가볼만한 곳

- 봉황대·수로왕릉·대성동 박물관… 최고의 역사 탐방 코스

	한옥 체험마을

왕의 정원으로 불리는 수릉원 주변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김해민속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옛 김해공설운동장 부속 체육시설을 리모델링한 2층 규모의 민속박물관은 2005년 개관했다. 이곳에는 481종 1139점의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 옛날의 농사용구인 무자위 등 322종 778점은 옛날 조상들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생활할 때 사용하던 민속유물이다.

김해민속박물관 맞은 편에는 고풍스러운 한옥건물로 구성된 한옥체험관이 자리잡고 있다. 13개의 객실을 갖춘 이곳에는 갖가지 한식을 음미할 수 있는 한식당인 감지방과 전통찻집,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다. 1박 2일 체험을 통해 한옥의 정취와 가족의 정을 다질 수 있으며 어린이들에게는 조상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 공간이다.

수릉원 서쪽 입구에는 가야의 역사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노출전시관인 대성동 고분박물관이 있다. 2003년 8월에 개관한 대성동 고분박물관은 고분군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23호 고분에서 출토한 가야 전사의 모습, 철을 수출하는 해상왕국 등 역사 속에 가려진 가야국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또 57호 고분에서 출토한 여성 인골을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보여 주는 등 찬란했던 가야국으로 안내한다.

수릉원과 맞붙어 있는 수로왕릉은 사적 제73호로 지정된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 봉분으로 높이는 5m에 이른다. 수로왕릉과 함께 수로왕 등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가락루, 연신루, 회로당 등 건물 15동 47칸도 김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둘러보는 필수코스다. 수릉원에서 남서쪽으로 500여 m 떨어진 봉황대는 가야시대 해상교역상들이 북적대던 해상포구였다. 이곳에는 패총기념관과 여의각이 세워져 있다. 여의각에는 1500여 년 동안 잊히지 않고 전해오는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슬픈 사랑의 얘기가 고스란히 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