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면 상태의 배아(왼쪽)와 싹을 틔운 종자. 국내 연구진이 작물의 발아시점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 관여하는 4가지 호르몬 발견
- 조기 발아현상 막을 수 있어

국내 연구진이 작물의 발아 시점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내 농산물 상품성 증진이 기대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은 포항공대 이영숙(사진) 교수팀이 이 같은 연구 성과를 거뒀다고 24일 밝혔다. 이 교수 연구팀은 어린 식물이 버틸 수 없는 환경에서 일찍 발아하는 현상을 막는 식물 호르몬 앱시스산(ABA)을 수송하는 단백질(수송체)과, 그 수송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ABA(Abscisic acid)는 종자의 발아억제, 휴면촉진, 낙과촉진 등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다.

종자의 발아는 식물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첫 단계이다. 배아는 성장에 좋은 환경(물, 햇빛, 온도 등)이 갖추어졌을 때에만 발아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견고하게 보호받는 종피 안에서 휴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부적절한 환경에서 휴면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종자는 외피에 있는 배젖에서 식물 호르몬(앱시스산)을 합성해 배아 쪽으로 지속적으로 공급, 배아의 성장을 억제한다. 그동안 이 호르몬이 어떻게 배아까지 전달되는지는 학계에 알려진 바가 없었다.

연구진은 앱시스산을 배젖에서 배아로 수송하는 단백질 수송체를 찾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하여 10개의 후보를 선발했다. 이들 수송체의 돌연변이 종자를 수집해 야생종과의 발아정도를 비교함으로써, 4개의 수송체가 호르몬 수송에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송체 중 두 가지는 배젖의 세포막에 위치해 호르몬을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나머지 두 가지는 배아의 세포막에서 호르몬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수행함이 밝혀졌다. 이 교수팀은 이들이 상호 협동해 종자의 휴면상태를 유지시킨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종자의 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앱시스산의 수송 원리를 밝힘으로써 이를 종자 품종개량사업에 응용해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벼의 수발아 현상과 같이 완숙기에 들어간 종자가 이삭에 매달린 상태에서 일찍 발아해 버리는 현상은 곡물 생산에 큰 피해를 준다. 이런 수발아 현상이 일어나면 생산성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품질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농가의 피해로 귀결된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발아 억제 유전자들을 이용하면 휴면 상태를 더 잘 유지하는 돌연변이 종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각종 종자 품종 개량사업에 응용하면 시기에 맞지 않는 발아 때문에 농산물의 상품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생명과학분야의 권위있는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 지난 3일 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