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모든 생물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서 살아간다. 자원을 확보하면, 즉, 먹잇감을 충분히 확보한 개체는 원활한 영양 공급으로 덩치가 커지게 되고, 커진 덩치는 그 자체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유리한 요소가 된다. 이는 육식동물뿐 아니라 초식동물에게도 해당된다. 코끼리는 비록 초식동물이지만 다 자라면 사자조차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무적의 존재가 된다.
따라서 충분한 먹잇감만 확보할 수 있다면, 개체의 진화는 덩치가 커지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전략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 바로 공룡이다.
2억2500만 년 전, 트라이아스 후기에 처음 지구상에 등장한 공룡은 크지 않았다. 아마도 현대인이 이 시절의 공룡을 처음 맞닥뜨린다면, 긴 꼬리를 가진 털 없는 닭을 닮았다고 생각했으리라.
공룡이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파충류는 있었으나, 공룡은 도마뱀이나 악어와 같은 파충류에 비해서 확실한 생존 이점이 있었다. 바로 다리의 구조였다.
보통 파충류의 다리는 몸통과 수평한 구조에서 뻗어 나와 몸을 떠받칠 수 없기에 상대적으로 이동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공룡은 다리가 몸통과 수직을 이루어 몸통을 떠받치기에 이동이 용이할 뿐 아니라, 빠르게 달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장점은 고만고만한 동물들만 존재하던 고생대 생태계에서는 유리했으며, 이 이점을 바탕으로 공룡은 빠르게 성장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또한 조류의 특징을 지닌 공룡의 폐는 대기 중 산소를 빨아들이는데 훨씬 유리했다. 이런 다양한 생태적 유리함은 공룡을 이후 2억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생태계 지배자로 군림하게 하는 원인이 됐고, 공룡은 이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큰 덩치를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몸길이 13m에 몸무게 6t의 거대한 사냥꾼이었으며, 슈퍼사우루스는 몸길이만 42m에 55t의 몸무게를 지닌 산더미 같은 생물체로 자라났다.
포유류는 파충류에 비해 온도 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새끼들의 생존율이 높아서 개체수가 어렵지 않게 증가했지만, 이들은 덩치가 큰 공룡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야 했기에 큰 덩치를 갖지는 못했다. 쥐 크기의 포유류들이 몸집을 불릴 기회를 잡은 것은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된 이후였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생태계에서 가장 먼저 승기를 잡았던 것은 다름 아닌 포유류였다. 이들의 몸속에서 수억 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 '크기에 대한 열망'은 매머드(몸무게 9t)와 마스토톤(몸무게 6t)으로 실현됐다.
쥐의 조상 중 하나인 포베로미스 패터르소니(Phoberomys pattersoni)도 이들에는 못 미치지만, 몸 길이 2.5m에 무게는 700㎏에 달하는 덩치로 자라났다. 코끼리나 코뿔소, 기린과 같은 개체들은 점점 덩치를 키워 생존에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형태로 변모했고, 반대로 쥐를 비롯한 설치류들은 천적의 눈에 덜 띠는 형태로 작아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이들 종 사이 개체 차이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의 쥐가 작다고 해서 미래의 쥐 역시도 작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쥐가 작아진 것은 환경과 맞물린 적응의 결과이지 쥐는 무조건 작아야 한다는 숙명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형 포유류들의 상당수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지금은 오히려 쥐에게 있어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기회인지도 모른다. 영국 레스터대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wicz) 교수는 고립된 생태계에서는 쥐가 생태계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하고 대형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쥐는 최고의 식성을 자랑하는 무편식주의자이기 때문에 먹잇감의 범위가 넓고, 번식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최근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는 몸길이 40㎝가 넘는 거대 쥐가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지구 생태계의 미래는 마이티마우스(Mighty mouse)가 지배하는 쥐들의 천국이 될 것인가? 정확한 답은 먼 훗날이나 알 수 있을 테지만, 지금처럼 대형 포유류의 멸종이 가속화된다면 그에 비례해 이 가능성은 더 커질 것만은 분명하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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