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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곤의 요기좋아<4>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방향 이제 돌려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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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앞면.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뒷면.


산꾼들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한다. 예외가 없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힘들게 오른 만큼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건 인지상정일 터.

하지만 천왕봉에서 찍은 사진은 예외없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지리산 천왕봉 1915m’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서는 독사진 내지는 두세 사람, 많게는 네뎃 사람이 전부다. 단체사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뒷면, 다시말해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뒷면이 배경이다.

왜 그럴까.

‘지리산 천왕봉 1915m’라고 적힌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부의 전체 면적이 30㎡에 불과한 데다 정상석 앞면에서 볼 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이 최대 3m 남짓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나면 그야말로 벼랑이다.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른 뒤 약간 상기된 채 사진을 찍을 경우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정상석을 돌려놓으면 어떨까. 해서,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에 문의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 정상석은 지난 1982년 6월 2일 경남도에서 세웠다. 지금이야 지리산을 비롯한 모든 국립공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관할하지만 당시에는 경남도가 맡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87년 설립됐다.

당시 지리산 철쭉제 행사를 겸해 시민등반대회가 열려 전국의 산꾼들이 정상석 제막식에 참석했다. 높은 분들로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과 이규효 도지사가 함께 했다.

남명 조식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명문이 적힌 기존의 조그만 정상석 대신 헬기로 공수돼 온 1.5m 높이의 정상석의 제막식이 진행되면서 한쪽에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정상석 뒷면에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 물론 천왕봉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지리산은 함양 산청 이외에 경남 하동,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문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천왕봉이 한라산(1950m)에 이어 남한 땅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여서 당연히 전 국민의 산으로 인식돼야 하기 때문에 ‘경남’ 대신 ‘한국’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정상석에는 누군지만 모르지만 ‘경남’ 대신 ‘한국’으로 바꿔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시 본론. 결국 기자는 정상석이 어느 방향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 있느냐고 공단 측에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상석을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생각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이라서 머뭇거리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만인의 안전을 위해 정상석 방향을 되돌려도 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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