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아끼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3년 작품이다. 조제는 하반신 장애로 혼자 외출하기 어렵지만 늘 바깥세상을 동경한다. 조제의 할머니는 세상의 눈이 무서워 그녀를 유모차에 숨긴 채 이른 아침에만 집을 나선다.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츠네오와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고 사랑이 싹튼다.
여주인공이 장애를 갖고 있을 뿐 이 영화는 장애인을 특별히 동정심을 가져야 할 대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남녀 간의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그 덕분에 최근 국내에서 영화로 리메이크되거나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2020년 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260여만 명. 부산에는 17만 명 정도로 수도권을 제외한 7대 특·광역시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부산 전체 인구는 줄고 있지만 노년 인구의 증가로 장애인 수는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중 ‘심한 장애’를 가진 6만7000여 명(38.2%)이다. 건강검진을 받고 싶거나 몸에 문제가 생겨도 병원을 다니는 일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부산복지개발원 설문에 따르면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못 간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7.5% 포인트 높았다. 교통편의 불편, 의료기관 예약 및 접근의 어려움, 정보 부족 등이 주요 이유였다. 결국 장애인 편의시설과 교통 인프라를 마련하고 장애인에 적합한 의료기관과 건강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 보건복지부와 국립재활원 중앙센터를 중심으로 지자체가 손을 잡고 2018년 처음 선보였다. 현재 전국에 10개가 개설됐고, 향후 9개가 추가로 선정될 예정이다.
부산시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장애인의 주체적이고 건강한 삶을 응원합니다’는 의지를 내세우며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주요 사업으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을 위한 지역사회기반의 의료 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구축, 여성장애인 모성보건사업으로 임신 출산 장애인 등록관리를 통한 의료서비스 연계, 보건의료인력 및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교육사업, 건강검진 등이 있다.
센터는 우선 각 보건소에 근무 중인 지역사회 재활사업 담당자 등 지역 내 다양한 보건의료기관·시설 관계자 및 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원활한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사업의 틀을 꾸려나가고 있다.
올해 현재 부산에는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2곳, 장애인 구강진료센터 1곳,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7곳이 운영 중이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센터가 중심이 되어 잠재돼 있는 지역 보건의료 자원들을 모으고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여 보다 손쉽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 나갈 계획이다.
아무쪼록 영화에서 할머니가 어려워했던 장애인의 외출이 조금 더 수월해지기를 바란다. 장애인들이 조제처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를. 나아가 일상적인 삶과 의료적인 혜택을 당연하게 영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종화 부산시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장·동아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