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줍’이라는 단어. 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의미다.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반려인 중 무려 20%가 ‘냥줍’했다는 통계도 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잘 알지 못하고 선뜻 시작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냥줍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것은 마음 가는 대로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그만인 그런 일이 아니다. 아무리 길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고귀한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냥줍이라는 가볍고 장난스러운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돼버렸다.
몇 번인가 돌보던 고양이가 사라졌다가 몇 개월이 지나 나타난 일이 있었다. 원래라면 어미와 함께 지내다가 그렇게 어른이 돼야 했을 그 고양이는 귀엽고 앙증맞은 새끼고양이 시절 사라졌다가 커서 발정이 올 무렵 다시 나타났다. 말 그대로 냥줍 당했다가 다시 버려진 고양이였다.
주워갔던 고양이를 다시 주웠던 그곳에 데려다 놓으면 다시 적응하고 잘 살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 고양이는 영역을 잡고 사는 기존 고양이에겐 불청객일 뿐이었고, 그 고양이 또한 사람과 사는 삶에 익숙해져 오히려 고양이를 두려워하고 사람을 따랐다. 당연히 적응하지 못하고 물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고양이에게 쫓겨 다니며 상처를 입었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사람에게 길들었고 다시 길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집고양이인 아이들. 그 아이가 배운 생존법이란 사람에게 애교 부리고 사람을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며칠을 지켜보다 결국 구조한 그 고양이는 버려졌던 상처를 안고 무서웠던 길에서의 생활에서 구해준 존재인 사람에게 오히려 더 의지하는 고양이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쉽게 냥줍하지 말아 달라고. 감기에 걸리거나 아픈 아이는 몸도 얼굴도 엉망이고 보기 흉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아이라면 냥줍하겠냐고. 정말 냥줍을 하고 싶다면 어미에게 버려졌거나 아픈 아이를 ‘구조’하거나 길에서의 고단한 삶보다 훨씬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을 때 해달라고. 그리고 평생 함께할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지 말라고.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선 필수에 가까운 중성화 수술이 무엇인지도 몰라 발정 났다고, 시끄럽다고 다시 버릴 거라면 처음부터 손 내밀지 말아 달라고.
만약 냥줍했다면 새로운 가족이 된 고양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더 나은 돌봄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애정 어린 손길로 돌봐준다면 그 고양이는 진정한 가족이 돼 더 큰 행복으로 보답할 것이다.
강민현 동물다큐멘터리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