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 개그학과·실용음악 밴드
- 끼와 재능 펼치던 공개 세미나
- 동네 주민 하나둘씩 방청석 차지
- 어느새 고정 공연으로 자리매김
- 예비 예능인은 박수쳐줄 관객을
- 노인은 문화활동 즐길 기회를
- 새로운 문화복지 실험으로 주목
부산 해운대구는 지역 내 빈부 격차가 상당한 곳이다. 부산 최고의 부촌도 있지만 복지 수요가 많은 지역도 꽤 된다. 반송동이 대표적이다. 이런 반송동에 청년과 노년이 결합된 문화복지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예능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을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공개 평가를 받고, 문화 혜택에서 절대적으로 소외된 이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이 평가 자체가 공연이 되고 있다. 출연자들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관객은 출연자들에게 용기를 책임지는 무대. 바로 해운대구 반송동 문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김영민의 화요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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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문화복지의 산실인 ‘김영민의 화요무대’가 막을 내린 뒤 김영민(앞 줄 가운데) 센터장과 출연진이 객석에서 관객인 반송동 주민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화요무대는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해운대문화놀이센터에서 열린다. 송진영 기자 |
■열정과 화답, 뜨거운 무대
매주 화요일 오후가 되면 반송동 어르신들의 발걸음은 ‘해운대문화놀이센터’(이하 놀이센터)로 향한다. 과거 KBS 개그콘서트에서 내시로 명성을 얻은 김영민(37) 놀이센터장이 이끄는 공연단의 무대가 오후 2시부터 해운대구가 운영하는 센터 3층 문화극장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10일 오후 1시30분. 어르신들이 속속 방청석에 앉더니 20분도 안 돼 50석 남짓의 객석이 모두 찼다. 이번에도 매진. 지난 3월 시작해 이날 스무 번째를 맞는 이 무대는 지난 4월 말부터는 단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만석이다. 관객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는데, 어르신 사이에서도 경로 우대는 확실했다. 뒤늦게 한 할머니가 도착하자 앞다퉈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이 정겹다. “어무이 아부지 식사는 하셨능교”라는 인사말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이날은 특별히 마술공연으로 시작됐다. 마술사 지망생의 현란한 공연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쉴 새 없이 손뼉을 치는 어르신들이지만 기다리는 무대는 따로 있었다. 흥겨운 트로트 무대가 시작됐다. 해운대 문화일자리사업단 소속 가수 6인방이 차례차례 무대에 올랐다. 한 어르신은 “장미야. ○○집 할머니 여기 있다”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가수를 반겼다. 반송 아이돌인 오하람 씨가 무대에 오르자 할머니들의 박수와 함성이 최고조다. 중간에 김 센터장이 직접 출연하는 만담 공연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센터장 얼굴이나 표정, 말투는 재밌는데, 말이 너무 빨라서 뭐라카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래도 웃기기는 웃기다. 여기 사장(센터장)이 참 명물이제”라고 말했다. 진지한 표정의 하재현 씨가 멋지게 색소폰을 불었는데도, 객석에서는 귀보다는 눈이 즐거운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무이, 연주 좀 들어보소. 제 얼굴 보지 말고, 눈 감고 귀로 노래 좀 들어보소”라고 외쳐봤자 무용지물이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화요무대는 모든 출연진이 객석으로 들어가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출연진이 무대를 내려오자 어르신들은 “지난번에는 뒤에 왔으니 이번에는 옆에 온나”고 손짓을 했다. 복장과 연령을 빼고는 누가 출연자고 관객인지 모를 정도로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반송의 웃음·행복을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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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능인을 꿈꾸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김영민의 화요무대’ 출연진. |
애초 이 무대는 예능 지망생들의 공개 세미나 형태로 시작됐다. 춤 노래 연주 마술 만담 등 온갖 예능의 끼를 공개적으로 발산하면서 평가받는 자리였는데, 세미나의 반응이 워낙 좋자 매주 화요일 공연무대로 상설 운영되고 있다. 출연진은 모두 해운대 개그학과 극단과 실용음악과 밴드 소속으로, 예능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다. 반송의 미소천사로 불리는 김장미 씨는 “처음에는 무심한 관객 앞에서 무대 적응력을 높이고자 마이크를 잡았는데, 어머님 아버님들의 큰 호응에 어느 순간 가수가 된 기분”이라며 “‘우리 장미, 가수 되면 인기 좋을 거다’며 비타민 한 뭉치를 건네주시는 어르신들에게 비록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지만 큰 웃음과 활기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이 끝나자 출연진에게 떡과 과자를 건네는 어르신이 많았다. 화요무대 출석 개근이라는 한 어르신은 “공짜로 이렇게 재미나는 공연을 봤는데, 그냥 갈 수 있나. 내 주머니 형편상 오늘은 떡으로 때우니 이해해라”고 출연진에게 인사했다. 일부 어르신은 센터 1층 커피숍에 출연진 앞으로 커피값 1000원을 소위 ‘달아놓고’ 귀가했다.
김 센터장은 “고령화 사회를 맞아 이곳 반송에서 화요무대가 ‘실버 콘텐츠 제작 거점’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며 “고령사회를 피할 수 없다면 단순한 복지 대상이 아닌 콘텐츠를 개발하는 파트너로서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구의원과 법적 공방이 생겨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공방을 끝내고 무대로 복귀했다. 무대 위아래를 불문하고 항상 익살스럽던 김 센터장이었지만 그간 마음고생 탓인지 진중한 표정으로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무혐의 처분으로 법적 공방은 끝이 났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지만 이제는 순수하게, 어르신들 앞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일념뿐입니다. 그동안 우리 영민이, 우리 센터장 어디 갔냐고 근황을 물었던 반송동 어르신에게 하염없이 감사하고, 이제 매주 새롭고 멋진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