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판규의 한방 이야기] 동서 몰래 내민 보약…한가위 情 물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9-12 19:26:01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그해 가을은 유난히 더웠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여름 탓에 자귀나무꽃이 졌다가 다시 피는 기현상이 연출되는 시골집에는 경희라는 이름의 맏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두 평짜리 화단에는 애기별꽃, 꽃마리, 풍노초 등의 풀꽃이 있고 조경수라곤 자귀나무가 유일하다. 경희의 혼수에 이 자귀나무가 든 것은 합환목이라는 이명(異名)처럼 부부가 화목하게 잘 살게 될 거라는 기대와 바람 때문이었다. 연애시절 지붕에 구멍이 난 남루한 집이라도 함께 누워 별을 헤며 잠들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남편의 소박함에 감동했다. 가난한 집 딸이라 당연히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야 된다 여겼고, 시어머니를 모시는 건 어릴 적부터 새긴 뜻이었고, 둘이 열심히 하나하나 살림을 만들어가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기제사만 일곱에 차례까지 매년 아홉 번의 제사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집안의 맏며느리 경희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상을 차려 설거지까지 한 후 출근했다. 퇴근 후 다시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 다음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해야 했다. 연료비를 아끼라는 시어미의 엄명에 따라 한겨울에도 더운 물 한 방울 쓸 수 없었다. 부도 맞은 남편은 신용불량자가 돼도 경희를 보증인으로 세워 계속 사업을 한다며 처음 약속과 달리 한탕주의 본색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바람피다 이혼당한 시누이는 친정으로 들어와 화장을 하거나 의상코디를 하는 것 외에는 온종일 손끝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차례음식을 장만하는 경희의 숏커트 머리카락 끝에 맺힌 땀방울은 시든 별빛처럼 애처로웠다. 탕국을 끓이랴 전을 부치랴 부엌은 마치 복날 삼계탕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년 전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을 받은 경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한약복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과로로 간(肝)에 열이 쌓이면서 갑상선기능장애가 생긴 것이다. 소시호탕을 장복하면 치료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한의사의 조언은 눈물만 부추기는 송곳이 되었다. 일찍 청상이 된 시어미는 홧병으로 홍삼을 먹을 수 없음을 알고 선물 받은 홍삼을 경희에게 줬지만 홍삼을 먹을수록 더 열이 오르고 몸이 무거워졌던 이유가 갑상선장애 때문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초인종소리가 울린다. 시동생네 식구들이다. "형님, 저는 요리를 할 줄 몰라 우리 거의 외식하는 거 아시죠." 선물꾸러미를 내려놓자마자 한 아랫동서의 첫인사였다.

이웃집 마실을 갔던 시어미가 한약을 한 재 지어 들고 들어온다. "그거 제가 달일께요"라는 경희를 흘겨보던 시어미는 "지난번 한약도 태워먹더니 또 그러려고"라며 약탕기를 꺼내 깨끗이 씻고는 물을 부어 한약을 앉힌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한약냄새가 온 집안을 풍요로운 향기로 가득 채웠다.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 바쁜 날 보약을 지어온 시어머니가 밉고 또 서러웠다. 손수 정성스럽게 한약을 짜서 안방으로 들어간 시어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방문을 빼꼼이 열고는 경희더러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경희에게 약사발을 내미는 시어머니. "이거 너 주려고 지어온 약이다. 작은 아이 오기 전에 어서 마시렴." 엉겁결에 약사발을 받아든 경희의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합환목 이파리가 가만히 경희네 방 창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명제한의원 원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3. 3“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6. 6[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7. 7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8. 8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9. 9“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10. 10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3. 3[속보]우크라 외무 “한국 중요해…외교적 오해 해결바라”
  4. 4[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5. 5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6. 6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7. 7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8. 8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9. 9정동영 “DMZ 지뢰 사고, 불행한 일…평화공존 더 절실해져”
  10. 10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4. 4신한은행 해킹 서버서 “‘중국어 AI 침투도구’ 흔적 발견”
  5. 5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6. 6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7. 7리사이클링·항만운영·담수화…부산 미래산업 이끌 혁신기술
  8. 8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9. 9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우수학술 부문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일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4. 4‘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5. 5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6. 6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7. 7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8. 8“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9. 9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10. 10시민이 만든 '부캉이' 공공 자산으로…부산시, 상표권 독점 막는다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5. 5LoL 대표팀, 대만 꺾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무실 세트 제패
  6. 6성적 부진·단장 공백·감독 결별·구단주 경고…김해FC ‘사중고’
  7. 7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8. 8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9. 9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10. 10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우리은행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