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치료 추진 인권보호 역행
- 묻지마 살인처럼 몰아가면 위험
- 사회적 인식개선·치료공감 중요
여성은 남성에 비해 힘이 약하고, 장애인은 기능에 한계가 있고, 정신질환자는 현실적응력이 떨어진다. 여성, 장애인, 정신질환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땐 때론 법과 사회제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중 인권은 약자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수단이다.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선 환자 본인의 허락없이 입원하는 '동의입원'이 인권 침해냐 아니면 환자를 위한 치료 행위인지를 놓고 공개변론이 열렸다. 지난 19일에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동의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향후에는 조건이 하나 붙게 됐다. 즉 환자 증상이 본인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을 때만 가능하고, 또 동의입원을 결정한 경우 외부기관인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한 차례 더 심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는
지난 22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돼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묻지마' 살인으로 인식돼 여성을 중심으로 연일 추모행사가 이어졌다. 언론에서는 '묻지마 살인'이라 보도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조현병으로 수차례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고, 사건 당시 피해망상이 심해 횡설수설하는 양상을 보이는 등 중증 정신질환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간 발생한 범죄 이면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성이 깔려 있었던 게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 다양한 유형의 성범죄 등은 강자에 의한 일방적 폭력성이 있었다. 이번 피해자 역시 연약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전체 여성의 불안과 불만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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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료원 윤경일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이 조현병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
경찰청장은 이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정신질환자에 대한 '행정입원'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했고, 법무부 차관은 '치료명령제'를 도입해 정신질환자 관리 강화를 약속했다. 부산의료원 윤경일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강자가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로 밝혀져 사건 이후의 전개가 또 다른 편견을 낳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약자인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라는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억울하게 죽은 20대 여성과 유가족이지만 향후 정책 방향에 따라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포함될 수 있다. 이 병은 전 인구의 1%인 50만 명이 앓고 있지만 전문적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10만 명에 불과하다. 이는 이 질환에 대한 부정적 선입감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드러내놓고 치료받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병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대국민 홍보행사를 해오고 있다.
■정신질환자 범죄 빈도 아주 낮아
대검찰청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빈도는 일반인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친다. 다만 이들이 계속 방치된다면 예기치 못하는 잔인한 사건이 또 벌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끔찍한 살인과 같은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타인을 공격하기보다 늘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윤경일 과장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이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 괴로워한다"고 말한다. 환자의 보호자는 환자가 방에서도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보기가 너무 안쓰럽다고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공포가 엄습해 무서워서 방구석에 숨었다고 한다. 윤 과장은 일상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환자를 자의입원시켰다. 자의입원은 치료적 공감대 형성이 더 잘 되고, 재발이 되더라도 안심하고 재입원을 받아들일 수 있다. 윤 과장은 "안전한 사회를 조성한다며 정신질환의 강제치료 방향으로 입법화하거나 행정조치하겠다는 식의 강경일변도 자세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질환자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이번 살인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조현병 환자를 사이코패스가 저지르는 '묻지마' 살인처럼 다룬다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은 더욱 어둠 속으로 숨어 적극적으로 치료받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윤 과장은 "그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여리고 예민한 사람"이라며 "이번 사건을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받아들여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한 합리적인 노력이 각계각층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움말= 윤경일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이흥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