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경기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화두를 남기고 마무리됐다. 정확도와 속도, 인간의 사고력까지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능력은 단순 반복업무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 활용돼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글은 인공지능 알파고의 유력 활용 분야로 의료와 바이오헬스를 꼽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소득 전문 직종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개발은 이윤을 극대화하기에 적합하니 과연 구글 답다.

잠시 생각해본다. 내가 하는 의료라는 것이 무엇이며 과연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일까.

임상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 중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음식으로 갑자기 체한 증상이라도 각자의 체질, 음식에 대한 반응,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 등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빨리 낫고 싶다는 기대감으로 간절해서 찾아오는 환자부터 엄마에게 억지로 끌려오는 아이까지 마음가짐도 각기 다르다. 이들을 대하는 의료인의 태도, 감정, 관계 역시 백이면 백 다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백 명의 환자가 있다면 그들과 백 가지의 관계를 맺게 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인간이다. '사람 인(人)', '사이 간(間)' 자를 쓰는 인간은 사람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본디 '사람과 사람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세상'을 뜻하는 단어였다. 의사와 환자의 만남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장선이다. 특히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의료인은 좋은 치료를 기대하게 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치료과정의 중요한 역할을 책임진다.

병마로 지친 마음은 때론 그저 얘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주는 행위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실례로 상담과정 중 형식적이었던 의사에 비해 다정하고 안심시키는 태도를 보였던 의사가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논문도 여럿 있다.

의사·환자의 관계와 의사의 태도는 치료의 맥락과 결과에 대한 환자의 기대감을 좌우한다. 이처럼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의한 효과를 플라시보라고 한다. 특정 치료법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서 이 플라시보는 실험결과를 방해하는 잡음으로 여겨져 철저하게 통제된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벌어지는 치료란 다양한 플라시보의 복합작품이며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플라시보에 의한 가짜효과니 진짜효과니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을 치료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장난 기계의 부품을 교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인은 아픈 환자들이 조금이나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긍휼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많은 환자들을 보기 위해 '기계처럼' 행동하는 의사는 진짜 '기계'에게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할 시대가 오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정보량과 정확성을 가진 인공지능의 활용은 분명 의료계에 큰 도약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 무엇인지 되돌아 봐야할 시기이다.

버드나무 한의원 진료원장·부산시한의사회 홍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