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환갑을 지나 67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침의 위력 때문이라고 한다. 침구 주치의는 당대 최고의 침의(鍼醫)이자 '침구경험방'의 저자인 허임이었다. 동시대에 사암침법을 창안한 사암도사,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이 있었던 것은 우리 한의학 역사상 최대의 행운이었다.

한의학적 치료는 '일침 이구 삼약'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질환 치료의 첫째는 침 시술, 두 번째는 뜸 치료, 세 번째는 한약 처방을 의미한다. 침 요법은 금속인 침으로 인체의 경혈 부위에 일정한 손놀림으로 발생케 하는 기계적 자극이며, 뜸 요법은 쑥을 경혈부위에서 점화 연소케 해 쑥 특유의 약효를 발휘하게 하는 온열 자극이다. 둘 다 인체 내 기혈의 운행을 조절하여 질병을 치료한다.

한의학에서 인체 내 생명력은 기(氣)와 혈(血)로 나타나며, 기혈(氣血)이 지나가는 통로가 경락(經絡)이다. 이는 고전 침구이론의 기본이다. 인체를 지하철에 비유할 경우 지하철 노선이 인체의 각 경락, 각 역이 경혈이며, 환승역은 경락끼리 만나는 회혈이다.

경락이란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와 신체표면과의 연결관계를 말하는 개념이다. 오장육부의 생리반응이 경락이라는 줄기를 따라 몸 표면에 나타나며, 이 중 비교적 반응이 예민한 요점을 경혈이라 한다. 즉, 같은 계통에 속한 경혈을 연결해 나가면 곧 경락이 되고 경락의 혈들이 만나는 부위가 회혈이 되는 것이다. 결국 병의 원인을 오장육부의 음양·오행원리를 응용한 사암침법이 고전침법의 금자탑이 되고 있다.

현대 생리학적 관점에서 침 자극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방출 및 자율신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침이라면 으레 삔 부위 치료만 하지 다른 질환에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침술의 효능은 각종 통증, 기관지염, 대장염, 위염, 요통, 안면경련 등 43개 질병에 달한다. 임상에선 중풍후유증, 야뇨증, 신경성 방광기능부전, 두통, 편두통, 삼차신경통, 안면신경마비 등 신경계와 테니스엘보우, 좌골신경통, 요통 골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에 특히 많이 응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침술이 면역기능 향상에도 관여한다는 학설이 과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한의학이론과 서양의학의 지식을 응용한 새로운 신침요법도 개발되고 있다.

특히 경혈을 귀에 집약시킨 이침술이 금연 및 비만치료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전기자극침, 레이저침이 개발돼 침을 두려워하는 어린이나 노약자, 만성 소모성질환자 등에 많이 시술되고 있다. 또 각종 한약물을 경혈부위에 자입하는 경락약침요법이 상용화되고 있다.

뜸 치료는 침 치료를 할 수 있는 모든 경혈점에 모두 시술하고 있지만 몸의 기능이 약한 허증 또는 냉증질환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침구 치료는 한의학 이론에 근거해야만 치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동시에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경락학설은 최근 침 치료 후 MRI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삼세한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