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은 외롭기 마련이다. 이런 외로움에는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최고다. 이성 친구라면 더욱 좋다. 동성 친구는 여러 경로로 만들 수 있지만 행동반경이 제한된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새 이성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 게다가 건전하게 부담없이 만나기란 더욱 어렵다. 이런 어르신들을 위해 1년에 한 번 실버미팅이 마련된다. 부산 화정종합사회복지관과 어진샘노인복지관이 함께 여는 실버미팅 자리를 가봤다.

■내 나이가 어때서

지난 20일 오전 10시 30분께 해운대복지관 강당에서 대중가요 노래소리가 올려퍼졌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지'라는 가사와 이번 행사가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미팅 목적이 '커플 만들기'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말벗하기 좋고 마음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하다. 취재당일에는 할아버지 12명, 할머니 12명이 참가했다. 재미있는 것은 참가 신청을 받을 때 가족관계증명서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해 법적으로 정말 싱글인지를 검증한다는 점이다. 혹시나 있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처음에 만나면 서로 어색하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깨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진행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필요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섞어 8명씩 3조로 나눠 앉은 뒤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이비네트워크 김세윤 소장은 풍선을 불게 해 각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뒤 그것에 나머지 다른 이성 친구들의 이름을 다 물어보고 써오라고 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트기 시작한 어르신들의 얼굴에서 어색함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손에 손 잡고

"친구들과 내 이름이 적힌 풍선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옆에 잡은 사람의 손을 놓지 않는 겁니다!". 조별로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든 뒤 아까 만든 풍선을 쳐올리는 게임을 했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처럼 깔깔대면서 풍선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헤딩을 하기도 하고 꼭 잡은 손으로 쳐 올리기도 하면서 어색함을 없애갔다.

그 뒤는 풍선 대신 손에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보며 방향을 바꾸도록 하는 게임. 처음에는 등을 밖으로 하고 모두 안쪽을 향해 있지만 손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어깨 아래로 돌아보면 모두 바깥으로 보도록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놀이처럼 두 사람이 팔을 쳐들고 아치를 만든 뒤 나머지 사람들이 그 아래로 지나가면 자연히 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어깨가 뻣뻣하고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게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손을 놓아버리거나 '아이고!' 하는 소리가 나왔다. 김 소장은 보다 못해 "시범 보여드릴께요. 자, 이렇게 하시면서 힘으로 밀거나 당기시면 안 됩니다. 다치시면 큰일이에요"라며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받아주실거죠? 제 마음

마지막 순서는 준비된 장미꽃을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에게 내미는 것이다. 장미를 주는 쪽은 할아버지이지만 선택하는 쪽은 할머니다. 받고 싶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 당일에는 12쌍 중 5쌍이 커플이 됐다. 김 소장은 "3년째 실버미팅행사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반 정도가 성사된다. 반은 그야말로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온 분들이고 나머지 반은 말벗이자 친구를 찾아온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국에서 이런 실버미팅 행사를 진행하는데, 확실히 부산과 서울의 지역적 차이가 있다"며 재미있는 분석을 내놨다. 서울 경기 쪽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데 무척 적극적인데 비해 부산은 할머니들이 많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행사를 통해 실제로 함께 여생을 같이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이날 행사의 취지는 건전하게 이성 친구를 부담없이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실버미팅데이는 1년에 한 번 진행된다. 올해까지 18회째 어진샘노인복지관과 화정종합사회복지관이 만들어 오고 있다. 

참가 자격은 만 60세 이상이며 법적으로 '싱글'이어야 한다. 대부분 사별로 인해 혼자되거나 이혼으로 배우자가 없는 분들이다. 이를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실버미팅데이는 보통 5월 가족의 달에 주로 열리는데 올해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미뤄져 6월에 열렸다. 할아버지 10명, 할머니 10명을 기준으로 남녀 같은 수로 참여한다. 참가비는 무료.

어진샘복지관 배지현 복지사는 "이성 친구를 건전하게 만들어 드리는 좋은 기회이므로 항상 참여도가 높다. 지난해 행사에서 커플이 되지 못한 분들은 다시 참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화정복지관 (051)362-0111, 어진샘노인복지관 (051)784-8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