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기부는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기부라는 단어가 가지는 부담을 덜어내려면 '나눔'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다른 이를 도와준다면 그게 바로 재능 기부다. 재능이라고 해서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기쁘게 잘 할 수 있는 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재능 기부다. 부산지역에서 활발하게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 음악으로 난치병 어린이 돕는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UKO)
- 개인생활·레슨 다 포기하고 오로지 난치병 아이들 위해 가장 아름다운 음악 연주
- 회비까지 내가며 활동, 연주실력 향상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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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UKO) 단원들이 연습실에서 이동신(맨 오른쪽)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주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아, 아, 갈수록 빨라집니다. 다시 천천히 진행합니다."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UKO)의 이동신 지휘자의 목소리다. 열린 문 사이로 연주자들의 집중한 얼굴도 보였다. UKO의 연습실인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환경관리공단. 연습실 문 밖으로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새어나왔다.
80여 명의 단원들이 이 지휘자의 지휘봉에 집중해 연습하고 있었다. UKO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낮 12시30분까지 연습시간을 갖는다. 주5일이 자리잡은 요즘 토요일은 당연한 휴일이다. 게다가 연주자들에게 토요일 오전은 많은 레슨이 몰리는 시간대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개인 생활과 레슨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희자 전 대표는 "단원 모두가 매월 1만 원씩 회비를 내가면서 활동하시는 데다, 레슨을 포기하는 시간까지 하면 기회비용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 이득이나 명성 대신 아픈 아이들 돕기를 택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의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중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이동신 부산시향 부지휘자다. 이 씨는 "토요일 오전엔 아무 약속도 잡지 않는 게 습관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아픈 아이들을 돕는다는 하나의 목표를 보고 함께해 오고 있는 것이라 언제나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UKO는 다른 오케스트라와는 좀 다른 분위기가 있다. 생계와 관련된 일이 아니므로 무척 자유로우면서도 음악적 진지함은 어느곳 못지않다"고 했다.
지난 2006년 7월부터 UKO창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신지현(27·비올라) 씨에게 왜 UKO를 하느냐 물었다. 신 씨는 "UKO활동은 그야말로 1석2조의 행복함"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분들 인 데다 연주 실력까지 갖춘 분들이셔서 음악적 성취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 씨는 "좋은 연주로 관객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그 분들이 내신 관람료로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선순환 구조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보통 연주단체가 이웃돕기를 하면 전체 수익금 중 일부를 내놓는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UKO는 수익금 전액을 다 내놓는다. 현재까지 UKO가 도운 난치병 어린이들은 8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음악은 난치병 아이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월 중순 께는 중국 강서성 남경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당시 수익금 5만 위안을 모두 현지의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기부했다. 그 돈으로 현지 어린이 60여 명이 도움을 받았다.
UKO는 총 26회의 연주회를 소화했다. 이동신 지휘자는 "처음에 UKO 발족 때는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었다. 돈을 내가면서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들이었다. 하지만 UKO 멤버들끼리의 유대는 더 강해졌고 연주실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UKO는 10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며, 1년에 4차례의 정기 연주를 한다. 이들 모두 자신의 재능으로 아픈 아이들을 돕는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지금도 즐겁게 달리고 있다.
# 기부하기 위해 일하는 문종술 변호사
- 읽은 책마다 요약본 만들어 만나는 사람과 내용 나눠
- 직접 책 써 강연회 열고 책 판매수익 전액기부
- 삶 목적은 '돕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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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기부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종술 변호사. 곽재훈 기자 |
부산 연제구 거제동 변호사사무실에서 만난 문종술(76) 변호사는 통성명을 하자마나 대뜸 "이거 읽어보세요"라며 종이 뭉치를 건넸다. A4용지 14장 정도의 분량이었다. 자신의 기부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했나 싶어 들여다봤다. 근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2012-11 내 몸 젊게 만들기'라는 제목이 보였다. 무슨 의미일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일단 읽었다.
읽다 보니 '내 몸 젊게 만들기'라는 책을 요약한 내용이었다. 그는 "올해 들어 11번째 읽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항상 요약을 해서 나눠준다.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더 볼 때는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으시라.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부분만 읽어라. 그렇게 한 달에 두 번씩만 하면 책 내용이 고스란히 머리속에 남는다"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초면에 대뜸 공부시키듯 해 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것도 그의 나눔 생활이었다. 문 변호사는 이렇게 요약본을 만들어 자신과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준다. 지난 한 해 동안 그 비용만 해도 300만~400만 원가량 들었단다. 그는 "좋은 내용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는 최고"라며 대수롭지 않게 행동했다.
그는 맨 위에 적힌 2012-11은 2012년에 11번째 본 책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치밀하게 독서한 뒤, 다양한 책에서 본 내용을 활용해 그는 자신의 책에 인용한다. 그렇게 쓴 책으로 기부를 해왔다. 자신이 쓴 책으로 강연을 하는데, 강연을 들으려면 참가자는 1만 원을 내고 책을 사야 한다. 그러면 문 변호사는 그 돈을 모두 기부한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을 쓰고, 그것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선뜻 내놓는 것이다. 그야말로 재능 기부다.
그는 "기부는 생활의 활력소"라고 힘주어 말했다. 문 변호사는 "생계를 위해서 변호사일을 해야 한다면 힘들어서 못 한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좀 더 많은 기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본말이 전도된(?)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부는 돈이 많아 차고 넘치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보다 이타심이 유별나게 뛰어난 사람들이 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 변호사는 달랐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부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그는 아내에게도 "생활비 이외에 내가 버는 돈은 기부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가 기부에 뜻을 두게 된 건 감사한 마음 때문이다. 문 변호사는 공부는 잘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줄곧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 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야 학비를 벌어 중앙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수석입학이라 그 때도 장학금을 받았다. 교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사법고시 준비를 해선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국민대학교 법학과를 야간으로 다녔다. 국민대를 졸업하고서야 검사가 됐다.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나니 주위를 돌아보게 됐다. 그는 "국민대에 2억 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냈다. 내가 어려울 때 학교가 나를 도와줬으니 나도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참 단순한 논리지만 실천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문 변호사는 "다른 이를 돕는 게 삶의 목적이 됐다. 나눔의 정신을 다들 가졌으면 좋겠다"며 기자를 배웅하고선 법률 서류더미로 가득찬 책상으로 돌아갔다.
# 재능기부 참여 어떻게?
- 기술·댄스·통역…사회에 필요한 달란트는 많다
요즘 재능기부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개인은 물론이고 각종 단체에서도 활발하게 이에 동참하고 있다.
부산가정법원은 다음 달부터 비행청소년의 재활을 위해 재능기부 운동에 나선다. 재능기부단을 결성해 법원 소년부에서 보호관찰처분 등을 받은 청소년에게 사회진출을 위한 미용 요리 제과제빵 등 직업기술을 가르쳐주거나 학습지도 및 멘토역할을 해준다. 부산에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쉼터나 종합지원센터 등의 시설이 부족해 한때 실수를 저지른 많은 청소년들이 비행 환경에 그대로 방치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재능기부단에는 대학생을 비롯해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부산시 여성회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난 4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자원봉사자들로 재능기부봉사단을 꾸려 다문화가족과 결연식을 했다. 봉사단은 다문화가족에게 한글지도와 외국어 통역, 예체능 지도 등을 한다. 특히 예체능 지도에는 미술과 음악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부산 사상구는 지난 3월부터 개인의 지식과 재능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신나는 학습나눔터'를 운영 중이다. 사상구 평생학습관의 프로그램 수강을 통해 실력을 쌓은 수료자들이 기부자로 참가하고 있다. 부산진구에는 지역사회 인재를 활용하고 나눔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된 학습 재능기부 동아리 '아우름'이 있다. 부산진구 평생학습관에서 웃음치료와 동화구연, 벨리댄스 과정을 마친 이들이 재능기부자들이다.
부산지역 각 단체에서는 수시로 재능기부를 할 지원자들을 모집 중이다. 여러 언론매체나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재능기부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