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인 아들 걱정에 경북 경산에서 부산까지 내려오신 어머니께 아들의 병증과 치료 계획을 설명해 드렸다. 현재 치질과 치열이 동반됐고, 이러한 상황은 급할 것은 없다. 이미 만성으로 진행돼 간단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군인 신분이라 여의치 않으면 식생활 개선과 적절한 세정, 배변 습관 조절로 현상 유지 관리하다 더 심해지면 수술할 수도 있음을 알려드렸다. 아들은 군인답게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복무 중이나 전역 후 바로 수술을 받겠다고 해 우선 약과 연고 등을 처방하고 관리 요령을 간단히 설명하고 돌려보냈다.
불과 한 달 사이 진료실에 군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필자의 세부 전공이 대장항문이다 보니 대부분 항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항문에 고름이 생겨서, 치질 때문에 피가 나서, 혹은 탈출이 되어 가렵다며 병원을 찾은 것이다.
부산 근교의 군 부대에서도 한두 달 새 7, 8명의 군인이 몰려왔다. 부모와 함께 온 경우도 있었지만 혼자 와서 수술을 해달라, 확인서 및 소견서를 적어 달라는 요청이 늘어났다. 수술 후 힘든 군 생활로 쉬지도 못하고 너무 빨리 복귀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두세 번 수술한 군인도 있었다. 예부터 남성은 군대에서, 여성은 출산을 하면서 항문병이 생긴다고 한다. 그만큼 남성의 군 생활이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비유될 정도로 힘든 것으로 풀이된다. 여성의 경우 출산 과정을 겪으면서 골반바닥과 회음 주위의 손상이나 항문의 울혈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출산 후 외견 상 이상이 관찰되지 않지만 실제 정밀 검사를 해보면 회음이나 항문 주위 괄약근의 손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회음이나 항문 주위의 크고 작은 손상은 대부분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런 신체 변화로 여겨지지만 적극 치료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현실이다.
부산 인근의 군부대에 근무하던 대전 출신의 치루 환자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추석 연휴 일주일 전에 수술해 달라며 병원을 찾았다. 일주일 입원 후 부대에 복귀하였고 추석을 군부대에서 보낸 후 바로 그 다음 날 병원을 찾아와 군 생활이 힘드니 다시 입원시켜 달라 부탁했다. 필자는 “아무래도 군생활이 힘들겠지” 하며 별 생각없이 입원시키고 부대 제출용 소견서도 작성해 주었다. 사실 치루 수술은 여러 변수가 있어 수술 후 관리가 중요하다. 그러니 꼬박 24일 간 휴식하며 안정을 취한 셈이다. 누가 이런 셈법을 알려줬을까. 치밀하게 계산된 휴식 방법이었다. 군대 있는 동안 병도 고치고 적절히 병가도 챙긴 영리한 젊은이였다.
상처는 군더더기 없이 잘 나아서 펄펄 뛰어도 될 듯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외래로 찾아왔길래 “이제 한 번만 더 확인하면 되겠다”고 하니, “며칠 뒤 전역을 해서 대전으로 올라갑니다. 이제 못 옵니다”고 했다. “그래요?” 하며 신기해서 유심히 얼굴을 쳐다보니 미남이었고 그의 표정은 매우 밝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의 나이 21세였다. 적절한 시기를 잡아 전역 전에 병도 고치고 푹 쉬었다 가는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참 똑똑한 젊은이의 셈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테스형! 요즘 군인들이 이래요.”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