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경기장서 은퇴식 계획
- “덕아웃서 우승 기쁨 누리고파”

“미국에서 돌아올 때 ‘은퇴할 때 내가 최고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플레잉코치는) 저한테 훈장과도 같습니다.”

한국프로야구(KBO) 롯데 자이언츠의 살아있는 레전드 송승준(42)은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한다. 3일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부산 사직구장에 나와서도 개인훈련에 집중하기보다는 투수 김대우의 허리에 줄을 매달고 잡아주는 등 후배 선수들의 체력 훈련을 도왔다. ‘롯빠아재’ 특유의 파이팅은 영하를 살짝 웃도는 추위에도 훈련장을 훈훈하게 데웠다. 앞으로는 2군 훈련장인 김해 상동구장과 사직야구장을 오가며 후배 선수를 지도할 예정이다. 그는 “선수로 뛰면서 후배도 봐줘야 하니까 좀 부담스럽다. 기껏 가르쳐놓고 마운드에 올라가서 제대로 못 던지면 민망할 것 같아서 그렇다”며 웃었다.

3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에서 송승준(오른쪽) 플레잉코치가 투수 김대우와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 송 코치는 올 시즌 중에 선수 생활을 마칠 예정이다. 김종진 기자

■“플레잉코치는 나에게 훈장”

송 코치는 부산 경남고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에도 출전하는 등 최고 유망주로 꼽혔지만 메이저리그 콜업 직전 부상으로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7년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338경기에 출전해 109승 85패 평균자책점 4.48을 기록했다. 윤학길(117승)에 이은 구단 최다승 2위.

우리 나이로 불혹을 맞으면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지난 시즌 22경기에서 2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6.20으로 부진했다. 그는 “자동차로 치면 15만 ㎞ 넘게 달린 폐차 직전인 상태였다. 지금도 시속 145㎞ 넘는 공을 뿌릴 수는 있지만 오래 던질 자신은 없다”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싸우려고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예전과 달리 몸 상태도 천천히 끌어올리고 있다. 송 코치는 “몸이 너무 좋아져서 자신감이 생기고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 그랬다. 팀도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을 더 오래 뛰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구단에 연봉을 백지위임해 5000만 원에 사인했다. 송 코치는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체에 의미를 느꼈다. 박찬호 선배가 연봉 5000만 원보다 훨씬 값진 공을 던지는 거라고 얘기해 주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어 “구단이 3000만 원을 제안했어도 계약했다. ‘이대호도 송승준처럼 계약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대호는 그에 걸맞은 계약을 맺었다. 팬들이 대호를 많이 감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가을야구 날려 팬들께 송구”

그는 올 시즌 중에 은퇴식을 할 예정이다. 송 코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수능 100일 남은 느낌도 있다”며 “야구를 시작한 지 33년째로 마무리하는 단계인데 아쉬움도 크고 시원섭섭하다. 후배들을 보면 앞으로 20년간 야구를 더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부러운 생각이 든다”고 떠올렸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마운드에 올라 상대 팀 타자를 위협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한국시리즈를 차지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그는 “15년 동안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공을 던지는 상상을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시리즈를 많이 경험한 장원삼이 ‘한국시리즈에서 던져봤소’ 하는 농담에 항상 작아졌다”며 “좋은 선발 투수가 나타나 팀이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코치는 정규리그에서는 불꽃 투구를 선보이다가도 정작 가을야구에서는 힘을 못 써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가을야구가 항상 제일 힘들었다. 내가 잘 못 던져서 팀이 지면 마운드 밑으로 꺼지고 싶었다. 동료들 앞에서 당당한 척했지만 집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있었다”며 “명절에 팬들이 텐트 치고 표를 사며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했을 때 ‘알겠다’고 해놓고 그 약속을 못 지켰을 때도 참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한 열망을 보였다. 송 코치는 “후배 선수들을 도와 올해 덕아웃에서 우승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