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포 줄부상 속 이강원 등 활약
- 역대 최약체 대표팀 혹평 불식
- 2그룹 잔류…올림픽 진출 청신호

"많은 선수가 빠져서 2진 정도 전력에 가깝지만, 새로운 선수들의 열정과 의욕으로 조직적인 동양 특유의 배구를 구사해볼까 합니다."

19일(한국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17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3주 차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 이강원(7번)이 공격을 성공시킨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FIVB 제공

2017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대륙 간 예선 라운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김호철 신임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대표팀의 전력을 '2진급'이라고 인정했다. 김 감독은 12개국 중 최하위만 아니면 면할 수 있는 2그룹 잔류를 위해 '4승'을 목표로 세웠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아 보였다. 지난 시즌 V리그 최우수선수(MVP) 문성민(현대캐피탈)을 비롯해 전광인·서재덕(이상 한국전력) 김학민(대한항공) 등 대표팀의 주포가 모두 부상으로 빠졌고, 훈련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대표팀이 일을 냈다.

19일(한국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끝난 월드리그 2그룹 최종 3주 차 I조 9차전에서 대표팀은 슬로바키아(29위)를 상대로 세트 스코어 3-2(25-18, 18-25, 25-18, 20-25, 15-7)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날 대표팀은 이강원(KB 손해보험)이 19득점으로 맹활약했고, 박주형(현대캐피탈·15득점)과 류윤식·박상하(이상 삼성화재·10득점)까지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4세트까지 세트 스코어 2-2로 팽팽하던 흐름은 5세트 초반 6-0으로 대표팀이 앞서가며 승기를 가져왔다.

대표팀은 이날 승리로 이번 대회를 5승 4패 승점 12점으로 마무리하며 2그룹 12개국 중 6위에 올랐다. 한국이 월드리그 예선에서 5승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은 1995년 이후 22년 만이다. 당시 한국은 김세진, 신진식, 하종화, 마낙길, 박희상 등 역대 최고 멤버로 대회를 치러 6승 6패를 거뒀다. 이번 예선 라운드 3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라운드 진출권 확보는 실패했지만, 3그룹 강등을 면하려던 '역대 최약체 대표팀'이라는 혹평을 불식 시킨 기대 이상의 성과다.

월드리그에서의 성과는 가장 큰 세계 무대인 올림픽으로도 연결될 전망이다. 2그룹 잔류에 성공한 대표팀은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의 열쇠가 될 랭킹포인트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지난 5월 FIVB의 발표에 따르면, 대륙별 랭킹 상위 2개 팀에 올림픽 세계예선 참가자격을 부여하는데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직행하면서 같은 2그룹 내 중국과 경쟁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세대교체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인 점도 고무적이다. 소속팀에서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던 라이트 이강원이 이번 대회 대표팀의 주포 역할을 해냈다. 그는 9경기에서 125득점으로 2그룹 전체 선수 중 6위에 올랐다. 안정된 수비를 선보인 정지석(대한항공)과 함께 이민규(OK저축은행) 노재욱(현대캐피탈) 황택의(KB손해보험)가 번갈아 출전해 경기를 조율하며 경험을 쌓은 젊은 세터진의 성장도 돋보였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