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에 왔을 때 친구들이 나보고 '북한XX' '짱X'라고 놀렸지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냥 웃었어요. 엄마한테 물어보니 말없이 울기만 하셨죠."
지난 19일 해운대교육지원청에서 만난 씨름 신동 이신(13) 군은 이렇게 말했다.
이신의 어머니 박봉숙(42) 씨는 2001년 쌍둥이를 임신한 몸으로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다. 봉숙 씨는 북한에서 남편을 사별했고 중국 허베이 성에서 새 남편을 만나 이신과 여동생 민(13)을 낳았다. 봉숙 씨는 중국 공안을 피해가며 밤낮없이 일했다. 하루 2시간 정도밖에 못자며 아이들을 키웠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봉숙 씨는 8살이 된 쌍둥이를 중국에 남겨두고 홀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봉숙 씨가 신이와 민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오는 데 3년이 걸렸다. 2011년 한국 땅을 밟은 신이는 한국에 적응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자라 학교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았고 툭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그런 신이를 바꾼 것은 씨름이었다.
원래 신이는 중국에서 육상을 했다. 한국에 와서도 해운대구 운봉초등학교에서 육상을 했다. 2013년 1월 학교에서 떠난 전지훈련지에서 다른 학교 씨름부를 만났다. 신이는 자신이 교내 체육대회에서 씨름 1등을 한 경험을 떠올렸다. 씨름부 숙소에 놀러 간 신이는 한마디 던졌다. "한번 떠볼래?" 결과는 처참했다. 씨름을 정식으로 배운 선수와는 시합이 되지 않았다. 신이는 연신 꼬꾸라졌다. 승부욕이 강한 신이는 종목을 바꾸자고 했다. 팔씨름이었다. 이번엔 덩치 큰 씨름부 아이들이 나가떨어졌다. 이 모습을 본 내리초 씨름부 박상규 감독(42)은 신이에게 씨름을 권유했다.
신이는 재밌어 보이는 씨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씨름을 시작한 신이는 2013년 5월 기장군 내리초등학교로 전학해 운동에 매달렸다. 씨름을 시작한 신이에게 변화가 시작됐다.
새로운 꿈부터 생겼다. 씨름으로 성공해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신이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6시간씩 악착같이 운동했다. 아침엔 간단하게 아령 운동하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엔 악력기를 손에 쥐었다. 점심 후에도 팔굽혀펴기, 하체 스쿼트 등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시간엔 내리초 씨름부에서 매일 3시간씩 훈련을 했다. 집에 와서도 2시간 헬스를 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신이가 씨름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사고를 쳤다. 신이는 2013년 9월 제10회 학산김성률배 전국장사씨름대회 초등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14년엔 전국소년체육대회를 포함한 전국 3개의 대회에서 3관왕을 거머쥐었다. 중학생이 된 올해는 전국대회 네 번 출전해 모두 8강에 그쳤다. 1학년이 3학년 형들을 상대로 승리하기엔 힘이 부쳤다.
변화는 또 발견됐다. 씨름을 시작한 이후 신이에게도 절친이 생겼다. 힘든 운동을 함께 견뎌내는 씨름부 아이들은 신이를 한국 친구 대하듯 살갑게 반겨줬다. 신이는 내리초에서 다른 친구들의 지지로 전교 부회장도 했다.
이젠 친구들이 "운동 잘하면 뭐하냐? 공부 못하는데"라고 놀린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신이는 이런 말을 듣고도 화내거나 싸우지 않는다. 다만 공부도 열심히 할 뿐이다. 앞으로 신이가 만들어 갈 장래가 밝아 보였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