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땀 젖은 베적삼’ ‘밭 가는 소’ 등
- 유유자적 느껴지는 밝은 가사
- 소박함과 진실함 가치 깨우며
- 피란민에 정신적 해방감 안겨줘
- 1956년 빅토리레코드서 발표
- 무명의 방운아, 일약 스타덤에
1950년대 초반 피란 시절, 부산의 빅토리레코드가 발표한 노래 중에서 우리는 ‘마음의 자유천지(손로원 작사·백영호 작곡·방운아 노래)’란 특별한 작품 하나를 기억한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횡액(橫厄)이었던 6·25전쟁은 전체 한국인의 정상적 삶을 완전히 중단시키며 치명적인 파괴와 상처, 후유증을 남겼던 참극이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일이 기적과도 같았던 시절, 이 노래는 크나큰 위로와 격려를 주며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여유를 회복하도록 도움을 주는 맑은 감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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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이 피란수도이던 시절 사진. ‘마음은 자유천지’를 부른 가수 방운아(왼쪽 세 번째)가 보인다. 이동순 제공 |
걸출한 작사가 손로원, 작곡가 백영호가 이 노래를 만들었고, 경북 경산 출생으로 대구 오리엔트레코드 전속가수로 활동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와 백영호의 제자가 되어 활동하던 가수 방운아(方雲兒, 1931~2005)가 이 노래를 불렀다. 195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무명의 방운아를 일약 최고의 스타급 가수로 발돋움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방운아는 미도파레코드사의 전속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로도 ‘한 많은 청춘’ ‘두 남매’ ‘인생은 고해련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방운아의 위상은 미도파 최고의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SP음반으로 듣는 방운아의 창법은 맑고 깨끗한 톤으로 우리들에게 여전히 아련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창법상의 특징은 남인수와 백년설의 장점을 함께 통합한 세계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2010년 10월, 필자는 경산 지역 가요팬들과 힘을 모아 가수 방운아 노래비를 경북 경산시 남매저수지 둑에 건립하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노래비 앞면에는 ‘마음의 자유천지’ 악보와 가사를 함께 새기고 그 위에 가수의 흉상을 제작해 올렸다. 이날 행사에는 방운아의 다정한 친구였던 가수 남백송, 명국환 등과 작사가 백영호의 유족들도 참석하여 한층 자리를 빛냈다.
■‘마음’의 가치를 노래한 힐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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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발매 당시 ‘마음은 자유천지’ 가사지. 이동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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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에 보석 놓은 왕관을 준다 해도/ 흙냄새 땀이 젖은 베적삼만 못 하더라/ 순정의 샘이 솟는 내 젊은 가슴 속엔/ 내 맘대로 버들피리 꺾어도 불고/ 내 노래 곡조 따라 참새도 운다
세상을 살 수 있는 황금을 준다 해도/ 보리밭 갈아 주는 얼룩소만 못 하더라/ 희망의 싹이 트는 내 젊은 가슴 속엔/ 내 맘대로 토끼들과 얘기도 하고/ 내 담배 연기 따라 세월도 간다(방운아의 대표곡 ‘마음의 자유천지’ 전문)
이 노래 가사에 담긴 참뜻은 서민적 소박함과 진실함이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일깨움이다. 백금에 보석 놓은 왕관 ↔ 흙냄새 땀이 젖은 베적삼, 세상을 살 수 있는 황금 ↔ 보리밭 갈아주는 얼룩소의 대칭구도는 이 노래의 가치관과 지향을 선명하게 환기해주고 있다. ‘마음’이라는 정신의 공간이 전쟁과 피란생활, 갈등과 번민 때문에 늘 제약과 구속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당시 주민들의 일반적인 정황이다. 이 경우 정신적인 해방감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가? ‘마음의 자유천지’란 제목이 주는 환기효과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던 1950년대 한국인들에게 마치 환상적 공간처럼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해석으로 보자면 비천한 탐욕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노래는 원래 2절이 따로 있는 3절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높다란 벼슬자리 걸상을 준다 해도/ 밤이면 새끼 꼬는 사랑방만 못 하더라/ 청춘의 꽃이 피는 내 젊은 가슴 속엔/ 내 맘대로 갈 수 있는 주막도 있고/ 내 사랑 꿈을 따라 샛별도 뜬다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가사지만 두 번째 단락에서의 ‘새끼 꼬는 사랑방’이 문제가 되었다. 195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종래의 봉건적 머슴제도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라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었다. 그 때문에 이 부분은 결국 삭제된 채 1, 3절만으로 취입이 되었던 것이다.
■철원 출생 걸출한 작사가 손로원
강원도 철원 출생의 작사가 손로원은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초반,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분주히 활동했던 뛰어난 대중문화인의 한 분이다. 손로현, 손회몽, 불방각, 손영감, 나경숙, 부부린, 남북평 등의 다양한 필명을 번갈아 사용했다. 워낙 다재다능해서 당시 극장 간판이나 포스터 중 상당수를 거의 직접 구성하고 제작할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공연기획에도 참가했고, 악극단 순회를 비롯하여 다수의 무대공연과 진행을 직접 담당했던 전문가였다. 하지만 손로원 선생의 가장 대표적 재능은 바로 대중가요 노랫말의 작사 쪽이었다. 1930년대의 대표적 작사가로 조명암과 박영호를 먼저 손꼽을 수 있지만 해방 이후와 1950년대 가요들의 상당수는 대개 손로원의 붓끝에서 개성적 작품으로 창출되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봄날은 간다’를 비롯해서 ‘귀국선’, ‘홍콩아가씨’, ‘고향의 그림자’, ‘백마강’, ‘비 나리는 호남선’, ‘경상도 아가씨’, ‘무영탑 사랑’, ‘님 계신 전선’ 등 기라성 같은 노랫말들이 모두 손로원의 작품이다. 그 중에 ‘마음의 자유천지’는 노랫말 분위기가 낙천성, 철학성을 담보한 가사로 독보적 세계를 지니고 있다. 유유자적(悠悠自適)으로 살아온 한국인의 기질을 느끼게 한다. 담백한 민중적 친화력, 융합(融合)을 지향하는 깊은 사상성이 우리로 하여금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가요시의 주된 특징은 우선 노래가사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예술적 정서와 그 향취가 아닐까 한다. 손로원 가요시 작품에 나타난 문학적 예술적 재능과 뛰어난 감각의 세계는 지금 다시 음미해보더라도 맑고 발랄하며 감성적인 생기로 가득한 품격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손로원 가요시 작품에다 뛰어난 작곡가 백영호의 솜씨까지 배합하여 작품 ‘마음의 자유천지’가 탄생했는데 이를 당시 대중들의 지친 삶과 가슴 속으로 부드럽게 전달해준 가수가 바로 방운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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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요를 즐기는 가요팬들에게 이 노래는 부산 피란시절의 애틋한 추억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가요작품으로 언제나 푸근한 미소를 띠며 다가온다. 그리하여 부산 피란 시절에 발표했던 가수 방운아의 여러 노래들은 그 특유의 잔잔하고도 구성진 성음으로 1950년대 대중들의 다정한 벗이 되었으며, 더불어 한 시대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껴안고 가는 곡비(哭婢)로서의 역할까지 톡톡히 떠맡았다.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