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생물학 연구 결과 토대, 생태·기후·소비 등 논점 확장
- 진화의 종말 /폴 에얼릭·앤 에얼릭 지음 /하윤숙 옮김 /부키 /2만3000원
진화생물학을 '생물학'의 영역에 가둬두지 않고 환경, 생태, 문화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진화의 종말(영문 원제 The Dominant Animal)은 주목할 만한 저서다. 이 책을 쓴 폴 에얼릭은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과학 교수이며 또 한 사람의 저자 앤 에얼릭은 스탠퍼드대 생명과학부 선임 연구원이다. 두 사람 모두 진화와 생태학 등의 부문에서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폴 에얼릭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노벨과학상에서 제외된 분야의 최고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크라포르드상 등을 받았고, 앤 에럴릭도 유엔환경계획이 주는 사사카와 환경상 등을 받은 것으로 프로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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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변화와 진화 속에 숱한 생물이 사라졌듯이 인간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를 책은 전하고 있다. 사진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350만 년전 직립보행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인류 '루시'의 복원 모형. 국제신문DB |
이 책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품고 사는 착각을 일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애초부터 그렇게 지구의 동식물·자원·환경을 지배할 존재로 태어났다고 믿는 착각이다. 또한 인류의 오랜 진화가 마치 인류를 지구의 지배자라는 지금 위치로 끌어올려주기 위해 '예정된' 또는 '준비된' 과정이었다고 믿는 관념도 산산히 깬다.
저자들의 논거를 따라가보면, 그 같은 믿음들은 '천만의 말씀도 그런 천만의 말씀이 없는' 수준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들이 보여주는 증거와 근거는 이 책을 가득 채운다.
모든 생물은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선택압(경합에 유리한 형징을 갖춘 개체군의 선택적 증식을 재촉하는 생물학적, 화학적 또는 물리적 요인)을 수용하면서 진화해왔다. 돌연변이, 이동, 번식과정 등을 통해 이는 우연히 일어났다. 이 같은 변화는 주위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다른 생물의 생태에도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지, 한 가지 현상만 홀로 일어난 경우는 찾기 힘들다는 점도 중요하다.
영국의 숲속에서 날개에 반점이 있는 흰 나방이 한때 우점종이었다. 분포도는 99%였다. 그런데 주변 공장에서 발생한 매연으로 환경이 오염되자 흰 나방은 포식자인 새들의 눈에 잘 띄게 되었고 거의 잡혀먹었다. 그러자 같은 종류이지만 흑색을 띤 나방들이 급속히 확산돼, 흑색나방 분포도가 99%에 이르렀다. 단 5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이런 변화의 영향은 그 변화를 겪는 생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생물을 먹이로 하는 다른 동물의 생태에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환경을 변화시킨다. 여기서 저자들이 강조하는 점이 인간의 개입이다. 흰 나방-흑색 나방의 사례만 봐도, 인간의 환경오염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른바 '문화적 진화'를 저자들이 강조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 책의 메시지는 뭘까? 환경변화와 진화 속에서 숱한 생물종이 멸종해갔다. 게다가 현재 지구는 인간이라는 '우연한 지배자'가 환경을 마구 변화시킨다.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이란 종에게도 다른 생물들이 겪었던 '대멸종'이 남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이 진화생물학을 토대로 인구 역사 생태 기후 소비 에너지 정치체제까지 확장되는 건 자연스럽다. 이런 관점과 방식은 일찍이 보기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