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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시봉 멤버들 공연 모습. 왼쪽부터 김세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삼십삼 년 전 여름의 어느 저녁, 고등학교 2학년 생이었던 나는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없이 동네 레코드 가게로 달려 갔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음반 한 장. 바로 '토함산'과 '사랑이야', '이십년 전쯤에', '나의 기타 이야기' 같은 주옥같은 송창식의 음반을 사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오자마자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걸고 바로 카세트 녹음기로 전곡을 복사하며 들었다. 지금 들어도 완벽한 감동을 선사하는 1978년 송창식의 걸작 앨범은 마악 첫사랑을 시작하던 고교 2학년짜리를 거의 실신지경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밤새워 듣고 또 들었다.
창밖으론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만(초기 송창식의 노래 중에 유독 비에 관한 노래가 많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카세트 녹음기를 들고 설악산으로 가는 수학여행 기차에 올라 도착할 때까지 이 노래의 복음을 같은 반 급우들에게 질리도록 들려주었다.
2011년 상반기 한국 대중음악의 놀라운 두 사건이 있다면 세시봉 붐과 '나는 가수다' 신드롬일 것이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토크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한 세시봉 멤버들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첨단의 비주얼 이미지가 군웅할거하는 세상에서 예순 중반에 다다른 이들이 펼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하모니에 이들을 알 턱이 없는 젊은 세대까지 감동을 나누었으며 새삼 통기타 붐까지 되살아나는 현상까지 일었다. 그리고 시작된 전국 투어는 전석이 매진되는 놀라운 노익장을 과시하며 연말까지 끝없는 스케줄이 잡혀 있는 중이다.
1968년 송창식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로 등장했을 때 화제의 중심은 보이 소프라노의 미성을 지닌 명문 의대생 윤형주였다. 하지만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이들이 솔로로 각자의 길을 나섰을 때 송창식은 한국 대중음악사를 아로새기는 거장으로 거듭난다.
1970년 '창밖에는 비오고요'를 담은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시작된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1986년 '담배가게 아가씨'와 '참새의 하루'를 담은 그의 최대 걸작 앨범 ''87 송창식'으로 막을 내린다. 이 기간 그가 발표한 명작들을 나열하려면 신문의 두세 면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음악이 가장 성숙하게 발효되는 그 시점에 그는 마치 마술처럼 우리 앞에서 사라졌고, 미사리의 작은 통기타 하우스 무대 말곤 일체의 공식 활동을 거부하는 미스터리의 행보를 이십 년이 넘도록 이어왔다.
송창식은 가왕 조용필의 맞은 편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지닌 우리 대중음악의 영원한 가객이다. 그는 아직도 매일 눈을 뜨자마자 노래를 연습하고 노래를 만드는 현역이다. 그가 왜 오선지로만 남아 있는 수많은 신곡들을 음반으로 발표하지 않는지 왜 자신만의 콘서트를 열지 않는지는 본인 말곤 아무도 모른다.
세시봉 콘서트에 모여든 머리 희끗희끗한 관객들, 지난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협곡을 헤쳐온, 콘서트라는 문화가 사뭇 생소하기만 한 이 대한민국의 공신들은 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훔친다.
세시봉 콘서트는 그저 효도용 디너파티를 넘어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젠 송창식이 '담배가게 아가씨' 다음을 우리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