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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와 시도]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최은희 작가 ‘해방된 회화’展

  •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
  •  |   입력 : 2026-07-23 19:23:54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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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까지 초량 낭만시간연구소
- 밭에 전시한 회화들 전시장으로
- 영구 보존 통념 깬 시도로 주목
- “작품 뚫고 싹 틔운 자연에 경의”

최은희 작가가 지난 20일 낭만시간연구소에서 바깥에 놓았던 작품을 다시 안으로 가져와 ‘회화의 해방’을 추구한 ‘해방된 회화: 토양에 뿌려진 그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선임기자 kimsh@kookje.co.kr
최은희(43) 작가의 회화는 정제된 화면에 자연의 생기를 품어 인상적이다. 린넨 소재의 하얀 바탕, 물감 튜브에서 핀 꽃과 식물은 차분하면서 싱그럽고, 인위적이면서 생명력이 넘친다.

부산예고와 부산대 미술학과, 동서대 디자인전문대학원(시각디자인 박사) 등 지역에서 이력을 쌓으며 자신만의 작업을 피워낸 최은희 작가는 미국 JP 모건 체이스재단의 작품 소장을 계기로 서울 미국 홍콩 등 국내외 무대를 넘나드는 작가로 거듭났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40대 여성 작가로는 드물게,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든 것이다.

국내외 전시와 아트페어에서 러브콜이 쏟아져 분주한 그가 ‘청개구리’ 같은 일을 벌였다.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 잘 어울리는 자신의 그림을 바깥, 그것도 야생의 밭으로 들고 간 것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동료 예술인들과 농사를 짓던 밖-앝(부산 기장군 기장읍)에서 개인전 ‘Land of Utopia’를 열었다(국제신문 지난해 10월 10일 자 14면 보도). 자신의 작업실과 전시장 외에는 작품을 갖다 놓은 적이 없던 그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Transition_Land of Utopia#3, Acrylic on linen,45.5x33.4cm, 2025-2026.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작가의 회화는 바깥에서 햇빛과 비바람을 맡고 관람객의 손길을 느끼며 두 달여간 해방됐고, 갖은 얼룩과 곰팡이 등 자연의 흔적도 함께 남았다. 그렇게 밖에서 ‘해방된 회화’가 다시 화이트 큐브 안으로 들어왔다. 낭만시간연구소(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기획한 전시 ‘해방된 회화: 토양에 뿌려진 그림들(26일까지)’을 통해서다.

지난 20일 낭만시간연구소에서 만난 최은희 작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아름다운 감옥’에서 해방됐던, 근래에 가장 재미있게 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JP 모건 체이스재단에 작품이 소장되면서 해당 작품이 마치 표준 규격처럼 통용되기 시작했다”며 “같은 사이즈의 그림만 계속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이 상황을 깨지 않으면 매우 고통스럽게 작업하겠구나’ ‘감옥에 갇힐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밭으로 나갔다”고 야외 전시의 계기를 소개했다.

Transition_회화의 자리, Acrylic on linen,45.5x33.4cm, 2025.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밭에서의 야외 전시는 그가 평소 생각했던 ‘회화의 해방’을 마음껏 실현해줬다. 작가는 “다들 회화를 사각 프레임에 가둬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며 “‘회화가 이렇게까지 보존되어야 하나’ ‘나의 작업이 갇히면 나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깥에 작품을 내놓으면서 나를 짓누르던 억압 강압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회화의 해방’을 경험하며 얻은 것은 또 있다. 자신이 그리는 자연에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태풍까지 견딘 회화가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오는 데는 곰팡이와 벌레 등을 제거하는 꽤 수고스러운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자연이 남긴 얼룩을 그대로 간직한 회화는 인위적으로 만들기 힘든 색감과 기운을 머금고 온전한 생명으로 되살아났다. 최은희 작가는 “터프팅(실을 심는 직조 기법) 작품을 나무에 깔아뒀는데 그것을 뚫고 식물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늘 예상을 빗나간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그는 자신을 번뜩이는 재능이 있는 작가라기보다 오랫동안 갈고 닦으며 준비한 쪽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페르소나와 같은 물감과 붓, 그리고 어릴 적 강렬했던 씨앗의 기억을 바탕으로 물감 튜브에서 꽃과 식물을 피운 그의 회화는 그동안 묵묵히 인내의 시간을 버틴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최은희 작가는 “40대가 되니 무서울 게 없어졌다. 알아주지 않던 시기를 견디고 버티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를 드러내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고 깨달았기에 이제는 나를 어필할 줄도,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 것 같다”면서 “여전히 같은 그림을 그리겠지만, 밭에서 새로운 원동력을 찾은 것처럼 회화가 주는 전제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또 다른 ‘해방된 회화’를 꿈꾸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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