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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대지서 5000년 견딘 선사인의 세계관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7> 영국 스톤헨지

  •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
  •  |   입력 : 2026-06-23 19:26:0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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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거석 유적 ‘스톤헨지’와 메인 유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힐 스톤. 스톤헨지와 힐 스톤은 하지 일출 때 태양과 일직선이 되기에 이곳이 과거 천체관측소였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 미래세대에 남긴 선명한 메시지
- 철학 종교 과학 등 다방면 분석
- 장례공간·천체관측소 해석 유력
- 숱한 노력에도 아직 실체는 몰라

- 2024년 제단석 연구 뜻밖 결과
- 스코틀랜드 최북단서 운반 확인
- 국가 개념 없던 시기 ‘화합’ 상징
- 현재에도 인류 공동체 구심 역할

유럽 북서쪽에 자리한 섬나라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네 구성국이 모여 이루어진 연합왕국(United Kingdom, UK)이다. 영국 솔즈베리의 황량한 벌판 위에 마법처럼 우뚝 서 있는 초현실적인 거석 유적, 스톤헨지는 인류가 있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에서 선사시대인이 미래 세대에게 남긴 가장 선명한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세계가 스톤헨지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류 문명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선사시대 유적이기 때문이다.

■5000년 전 초현실적 거석 유적

위에서 내려다 본 스톤헨지.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스톤헨지 내부로 직접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그 외곽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다 보면, 마치 예리하고 꼼꼼한 명탐정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설사 안내판을 보고 정보를 알고 왔다 하더라도, 이 예사롭지 않은 거석 무리가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세워졌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유적은, 특히 이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유적은 제발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달라고, 물어봐 달라고 소리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자꾸 묻고 탐구해도 좋다. 그 소리침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성찰로 이끄는 철학까지 후대에 전하려는 유적의 이타적 발현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없듯이, 아무것도 아닌 유적도 없다. 우리가 아직 그 무엇임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 무엇임을 밝히기 위해 지금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스톤헨지를 역사 철학 종교 화학 물리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활발히 분석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수많은 논문과 자료로 축적되고 있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에 따르면, 이 거석 무리는 영국 신석기 시대인 약 5000년 전에 세워졌으며, 건설은 무려 1500년에 걸쳐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외곽 원은 30개의 사르센석(사암의 일종), 안쪽 원은 약 38개의 외부에서 운반된 석재인 블루스톤으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구조물인 ‘트릴리톤’(Trilithon, 두 개의 돌을 수직으로 세운 후 그 위에 가로로 하나의 돌을 얹은 형태)이 중앙에 말발굽 모양으로 5쌍이 배치되어 있다. 이 ‘트릴리톤’ 구조 때문에 스톤헨지, 즉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원래는 더 많은 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 스톤헨지에는 기타 입석 제단석 등을 포함해 총 93개의 주요 돌이 남아있다.

본격적인 학문적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이 거석들의 목적에 대해서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공동체 매장지다. 실제로 스톤헨지 주변의 구덩이에서 약 250명에 이르는 인골 조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유골들은 스톤헨지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톤헨지에 묻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지역 출신이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스톤헨지가 특정 지역 무덤이 아니라 영국 전역, 아니 유럽 전역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이곳의 유골이 스톤헨지가 죽은 자를 위한 공간, 곧 오늘날의 장례 공간과 같은 역할을 했던 증거라면, 이곳에서 죽음을 보내는 숭고한 의식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살아 있는 자가 최선을 다해 죽은 이를 마지막까지 품위 있게 ‘영원’으로 보내던 성스러운 곳이 된다.

그리고 거석을 세워 사회가 함께 의례를 치르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기려왔다면, 너무나 뻔한 인간의 삶을 뻔하지 않게, 오히려 의미 있고 거룩하게 만든 선사시대인의 품격을 보여준다. 이러한 품격은 동물과 구분 짓는, 인간만이 지닌 절대적 영역이다. 그래서 인간은 꽃보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불가해한 유적지인 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스톤헨지가 천체관측소라는 설도 있는데, 일부 구조가 해가 뜨는 방향을 반영하는 듯한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동쪽의 ‘힐 스톤(Heel Stone)’은 하지 일출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며, 중앙 통로와도 일치한다. 그래서 지금도 매년 6월, 스톤헨지에서는 하지 축제가 열려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 태양이 힐 스톤 위로 떠오르는 장관을 함께 맞이한다.

여러 가설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선사시대 공학자의 기술이 현대의 우리를 뛰어넘었으며, 그들이 꿈꾸던 세계관을 지상에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철제 도구조차 없던 시대에 건축의 원리를 이해하고, 압도적으로 무거운 거석을 정교하게 세워 올린 그 기술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거석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데, 특히 덮개돌과 기둥 사이에 홈과 돌기를 만들어 정확히 맞물리게 한 결합 방식은 현대의 목공 기술을 연상시킬 정도다. 오랜 시간 집단의 노력을 모아 끝내 자신들의 이상을 구체화한 그 정신! 지금 우리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선사시대 ‘통합 공동체’의 유산

그런데 2024년, 호주와 영국 공동 연구팀이 스톤헨지 제단석에 관한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스톤헨지의 제단석이 약 750㎞ 떨어진 스코틀랜드 최북단 지역에서 채석된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지금까지 외곽의 사르센석은 잉글랜드 남부에서, 내부의 블루스톤은 웨일스에서 운반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제단석이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스톤헨지는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세 지역을 대표하는 거석들이 모여 이루어진 상징적 구조물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졌다.

스톤헨지가 어떤 목적으로 세워졌는지, 또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에, 각지의 부족들이 초기 공학 기술과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먼 지역에서 돌을 의도적으로 가져와 함께 세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곧 ‘공통된 목적’을 위해 그들 사이에 화합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원형 구조를 가진 스톤헨지는 모든 방향에서 중심을 향해 동일한 거리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공동체의 평등성과 통합을 상징한다고 해석되었는데, 여기에 세 지역의 돌이 함께 모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해석에 더욱 힘을 싣게 되었다.

오늘날 영국이 통합적 정체성을 갖기까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침공에 맞서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역사적 왜곡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스코틀랜드 독립 투쟁을 다룬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당하며 외친 ‘Freedom!’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런 것이다. 통합이라는 것이. 자율보다는 무력이 동반되기 쉽다. 그러니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통합도 공짜가 아니다. 지금 누군가와 화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면,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선사시대라고 달랐을까. 국가라는 개념이 없다 해도 부족 간의 전쟁은 더 치열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톤헨지를 중심으로 연대감을 형성하기까지, 영국 통합 과정 못지않은 피의 희생이 따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스톤헨지가 선사시대의 통합 정신을 품은 유산이라는 사실이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영국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스톤헨지로 인해 통합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통합은 공동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지만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운명적인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스톤헨지는 바로 그 증거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노동과 사회적 협력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산물이었기에, 오늘날에도 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석을 세워 공동체로 함께 했음을 불멸의 돌에 새겨둔 선사시대인들, 지금도 스톤헨지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면, 우리는 우주 속에서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스톤헨지의 소리침을 처음 들었을 때 직감했다. 인류는 이 지구에서뿐만 아니라 죽음 후 우주에서도 운명의 공동체라는 것을.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스톤헨지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스톤헨지는 인류공동체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는 것을.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한국유적지기행’‘아시아유적지기행’‘세계10대유적지기행’ 저자·유적지 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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