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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위치한 아야소피아 외부 전경. |
- 높이 55m 반구돔 찬란한 건축
- 오스만 침략 때 몰수된 로마성당
- 옛 터키정부 박물관·모스크 전환
- 기독교 모자이크 가리려던 회칠
- 오히려 긴 세월 보존 가능케 해
- 뿌리 같은 두 문명의 갈등 품고
- 공존의 의미를 제시하는 공간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은 ‘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는 고사성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다. 세계의 유명 유적지가 있는 도시 중 파란만장하지 않은 곳은 드물지만,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뀐 것만 보아도 수많은 격변의 순간을 지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흑해로 이어지는 길목,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동서 문명의 교차점이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결정적이었다. 고대에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로마로 향하는 출발점이었고,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 종교 예술이 융합하고 충돌하는 세계사의 현장이었다. 이런 풍운(風雲)의 도시에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 유적, 아야소피아가 있다. 그러나 두 거대 문명이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맞부딪치는 과정에서 아야소피아의 운명은 이스탄불보다 더욱 파란만장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유적지 |
| 아야소피아 내부 모습. 거대한 반구형 돔을 둘러싼 창으로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광경이 신비롭고 황홀하다. |
‘거룩한 지혜’라는 뜻을 지닌 아야소피아는 서기 36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황궁 옆에 성당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여러 차례 재건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야소피아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다시 지어 537년에 완공한 건축물이다. 긴 역사 속에서 모진 세월을 꿋꿋이 견뎌낸 아야소피아는 결국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다. 전쟁의 관습에 따라 병사들에게 약탈이 허용되었으니, 아야소피아 안에서 벌어진 참상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고 흉포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전쟁의 승리자는 아야소피아 대성당을 몰수하여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했다. 이슬람의 성소가 된 아야소피아에는 메카의 방향을 표시하는 미흐라브가 새롭게 설치되었고, 내부 벽과 천장을 장식하던 기독교 모자이크는 모두 회칠로 덮였다. 시간이 지나 회칠이 벗겨지면 다시 덧칠을 반복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 덕분에 모자이크들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1935년, 오스만제국이 막을 내리고 터키(현 튀르키예)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야소피아는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때 이미 오랜 세월을 견뎌온 아야소피아는 크게 약해진 상태였다. 터키 정부는 세계 각국에서 기금을 모아 돔을 비롯한 건축물의 균열을 안정시키고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2020년 아야소피아는 다시 모스크로 전환되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야소피아가 박물관이었을 때 답사할 수 있었으니. 규모와 기술력, 예술성까지 두루 갖춘 걸작으로 인류 문명의 정수라 평가받는 아야소피아는 세계인의 버킷리스트에 반드시 보고 싶은 유적 중 하나로 꼽히며, 세계 다큐멘터리에서도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런 유적을 보고 싶어 애달파했으니,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완공 후 성당에 들어서며 “솔로몬이여, 제가 당신을 능가했습니다!”라고 외쳤듯, 아야소피아 안에 들어섰을 때 “신이시여, 드디어 제가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아야소피아의 경이로움은 내부로 들어서야 비로소 절정에 이른다. 이곳의 핵심은 하늘나라를 상징하는 거대한 반구형 돔이다. 높이 55.6m에 이르는 돔을 둘러싼 40개의 아치형 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빛줄기! 너무나 경건하고 거룩하고 신비로워 마치 천국에 들어온 듯하다. 너무 벅차서 온몸이 깊은 울림으로 떨릴 때,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눈부신 대리석과 예술적인 모자이크가 펼쳐져 있어 그 순간 “신의 방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거룩한 신의 방에 초대받은 듯한 이 경험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싶은 마음을 저절로 불러일으킨다. 이쯤이면 왜 아야소피아가 수많은 시련을 꿋꿋이 견디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우리에게 이 귀함을, 이 천국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야소피아! 감격한다!
■화합과 공존을 품은 공간 |
| 아야소피아 내부 벽과 천장에 회칠이 벗겨져 드러난 기독교 성화. |
이 아름다운 천국의 공간에서 우리는 기독교 모자이크와 이슬람 글자판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기막히게도 인류사의 두 거대한 종교가 한 공간 안에 있다니, 그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회칠이 벗겨진 모자이크들이다. 특히 예수님의 성화는 이 건축물이 기독교 문명에 의해 세워졌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두 문명이 오랜 세월 갈등을 이어왔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이 두 문명은 인류 역사 속에서 충돌과 전쟁을 피하지 못했을까.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도 영원한 앙숙처럼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World Christian Database’에 따르면, 2026년 현재 전 세계 인구 80억 가운데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 포함)는 약 26억 명, 이슬람교는 약 20억 명으로 두 종교가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종교의 갈등과 충돌은 이슬람교가 태동한 7세기 이후 1400년 넘게 이어져 왔다. 두 종교는 같은 아브라함 계통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행한 역사의 뿌리는 상대 종교의 구원자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며 그의 부활을 핵심 교리로 삼고 성경을 경전으로 신성시한다. 반면, 7세기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여러 예언자 중 한 명으로 본다.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여기며, 그의 가르침을 담은 코란을 경전으로 삼는다. 또한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을 부정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 결국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음에도 두 신앙은 교리적 차이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무력 충돌의 결정적 원인은 성지(聖地)였다. 이슬람교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영적 성지가 된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기독교도의 성지순례를 막았다. 기독교 국가들이 이를 좌시할 리 없었고,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뭉친 것이 바로 11세기 시작된 ‘십자군 전쟁’이다. 이후 약 200년 동안 총 9차례 이어진 전쟁으로 두 종교는 앙숙이 되었다. 물론 현대의 시각에서 십자군 전쟁은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처음에는 성지 탈환이라는 숭고한 명분이 있었고, 실제로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거듭될수록 신앙의 순수한 열정은 퇴색하고 변질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변모했다. 물망초심(勿忘初心), 무슨 일이든 초심을 잃지 않으면 좋으련만. 인간에게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보다.
이 두 문명의 충돌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서로의 구원자만이 참된 길이라는 배타적 태도를 버린다면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이미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두 문명의 대립은 결국 자원을 확보하려는 인간 본성의 투쟁으로 치달았고, 종교는 그 투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왔다. 지구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인류가 늘 새로운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한, 각자의 구원자를 앞세워 앞으로도 갈등을 이어갈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두 문명은 영원히 앙숙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묵묵히 품고 있는 아야소피아. 종교는 갈등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진리 사랑 자비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통해 인간을 윤리적으로 고귀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 왔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나아가 종교가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일깨우기도 한다. 신학적 해석은 달라도, 구원자가 서로 다르더라도, 신을 향한 인간의 구도(求道)라는 점에서는 결국 하나이지 않은가. 아야소피아, ‘거룩한 지혜’라는 이름은 결코 우연히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흔적을 화합과 공존으로 품어낸 아야소피아는 그 자체로 지혜롭다. 지혜로 빛난다. 지구별에 찰나보다도 짧은 순간을 머무는 한 사람으로서, 아야소피아를 직접 만나볼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었다.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한국유적지기행’‘아시아유적지기행’‘세계10대유적지기행’ 저자·유적지 기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