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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78> 바다의 새, 새조개

육수에 데치듯 살랑살랑, 달큰·구수함이 입안 희롱…매화와 함께 피는 절정의 맛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6-02-24 18:48:42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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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선 갈매기, 거제도선 오리
- 지역 달라도 ‘새’에서 따온 이름
- 일제강점기 남해안서 본격 채취
- 해방후에도 전량 일본으로 수출

- 쫄깃하고 부드럽고 고급진 식감
- 살짝 익히는 샤부샤부 요리 인기
- 제철 채소 시금치와 최고의 궁합

아직 겨울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봄기운이 슬며시 느껴질 즈음의 2월. 이맘때쯤 진해만 해안을 자주 드나든 적이 있다. 바다에서부터 서서히 봄이 다가옴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봄몸살 나듯 마음이 들뜨는 시절이었다. 봄, 그리고 화양연화(花樣年華)….
샤부샤부용으로 손질한 새조개와 전복.
이즈음 진해만 일원에는 겨우내 바다가 키워낸 갯것들로 한창 풍요롭다. 겨울을 보내고 떠날 준비를 하는 어족과 봄을 따라 터를 잡기 시작하는 갯것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의 장소. 이때쯤이면 진해만은 온 바다가 펄떡펄떡 부푼 생명으로 끓어 넘친다. 봄 여인처럼 여린 꽃봉오리로 온통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이다.

한때 진해만 포구마다 새조개를 까는 여인들이 있었다. 조개 칼 한 자루면 전광석화처럼 단번에 조갯살을 분리해 내는 이들이었다.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노라면 “한 점 먹어 볼란교?”라며 칼로 새조개를 쓱쓱 장만하여 초장에 푹 찍어 한 점 입에 넣어주곤 했다.

쫀득쫀득, 보들보들, 살강살강한 식감에 이어 달큰하고, 짭조름하고, 구수함이 차례로 입안을 희롱하는 맛에 두 눈이 번쩍 뜨이고, 궁극에는 온몸으로 손뼉을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조개와의 조우. 거의 30년 전의 일이겠다.

■일본인이 독점했던 귀족조개

손질하기 전 새조개. 조개의 발 역할을 하는 부족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새조개로 불린다.
새조개. 새조개 목 새조갯과의 이매패(二枚貝, 좌우 대칭의 조개껍데기 2개를 가진 연체동물의 총칭) 조개로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 등지에 분포한다. 껍데기는 얇고 매끈하며 둥글고 볼록하다. 겉은 연한 황갈색이고 안은 분홍색을 띠고 있다.

주로 겨울 바다의 30미터 내외의 수심에서 자라는데 12~3월까지가 제철이다. 특히 2월이 살이 두툼하고 쫄깃하면서 단맛이 돌아 가장 맛있을 때이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매화가 필 때쯤 새조개의 맛 또한 절정으로 피어오른다’고들 한다.

새조개는 껍데기를 까서 보면 조개의 발 역할을 하는 ‘부족(斧足)’이 새의 부리를 닮았기에 ‘새조개’라 불리게 되었다. 한자로 조합(鳥蛤), 작합(雀蛤)으로 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따르면 참새 작(雀)자를 써서 ‘작합(雀蛤)’, 속명 ‘새조개(璽雕開)’라고 불렀다. “큰 것은 지름이 4, 5치고, 조가비는 두껍고 매끈하며 참새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 그 무늬가 참새 털과 비슷하여 참새가 변하여 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통영에서는 ‘갈매기조개’, 남해에서는 ‘갈망조개’, 거제도에서는 ‘오리조개’로 부르기도 한다. 모두가 새의 부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인 것을 알 수 있다.

잘 익혀 초간장 소스와 곁들인 새조개.
새조개의 주산지는 남해안의 진해만 광양만 가막만 여자만 득량만 등과 서해안 천수만 등이다. 요즘은 서해 홍성 남당항을 중심으로 새조개 소비가 활발하고 새조개 축제가 열리는 등 잘 알려졌지만, 원래 주생산지는 남해안 일대이다.

남해안 새조개 채취는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새조개는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산 식재료 중 하나로 일본어로는 ‘토리가이(鳥蛤)’로 불린다.

주로 회로 먹거나 고급 초밥 재료로 널리 쓰였다. 그러했기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남해의 새조개를 독점하기 위해 ‘수산 통제 어종’으로 지정, 조선인들은 일절 잡지 못하게 막았다.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남해안의 새조개는 비싼 가격에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었다. 그래서 남해 어촌 지역에서는 이 새조개가 나는 해역을 차지한 임자는 ‘팔자를 고쳤다’고 전해진다.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비싼 가격의 귀한 조개이면서 그 맛 또한 여느 조개보다 한 수 위여서 ‘귀족조개’라고 불리기도 했다.

새조개는 배에 쇠갈퀴가 달린 자루그물을 달아 바다 밑바닥을 끄는 ‘형망(桁網)어업’으로 주로 채취한다. 쇠갈퀴가 달린 자루그물인 ‘형망’을 배에 달아 끌면서 바닷속 모래와 진흙 바닥을 긁어 적정 크기의 새조개를 선별, 잡아들이는 것이다. 때에 따라 잠수부가 직접 바다 밑에서 캐내는 ‘잠수기 어업’으로 채취하기도 한다.

새조개는 도끼처럼 생긴 발, 부족을 이용해 바닷속을 힘차게 차고 나갈 뿐만 아니라 헤엄을 쳐 먼 거리를 이동할 수가 있다. 마치 바닷속에서 새처럼 날아다니듯 하는 것이다.

그만큼 탄탄한 근육질의 발이 잘 발달해, 살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탄성이 좋으면서도 씹을수록 살강거리는 식감이 흔쾌하다. 맛 또한 감칠맛이 풍부해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활용된다.

■살짝 익혀 먹는 샤부샤부 인기

잘 우려낸 해물 육수에 다양한 채소를 넣고 살짝 익혀 먹는 새조개 샤부샤부.
한때 바닷가 마을에서는 갯벌에서 캐낸 몇 마리의 새조개를 살짝 데쳐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몇몇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조물조물 무쳐 회무침으로 먹었다.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기도 하고, 미역과 함께 끓여 새조개 미역국으로도 먹었다. 칼국수에 넣어 먹기도 했다.

새조개는 조개 중에서도 가장 비싼 축에 들기에, 요즘은 잘 우려낸 해물 육수에 갖은 채소를 넣고 새조개를 살짝 익혀 먹는 샤부샤부 코스로 즐긴다. 팔팔 끓는 전골 육수에 잘 장만한 새조개를 넣고 살랑살랑 몇 번 흔들어 살짝 익힌 뒤 여러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다.

주로 멸치 다시마 무 대파 등속으로 끓여낸 육수에 제철 채소인 냉이 시금치와 배추 버섯 등 채소를 넣고, 손질한 새조개를 5~10초간 살짝 데치듯 익혀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조갯살 본연의 쫄깃한 회 맛도 나고, 살짝 익힌 부드러운 숙회의 식감도 즐길 수 있어 좋다.

이렇게 데친 새조개를 초간장 소스나 고추냉이 소스, 초고추장 등 다양한 양념을 곁들여 먹는데, 미식가들은 처음에는 소스 없이 본연의 새조개만을 음미하다가 초간장 고추냉이 초고추장 순으로 먹기도 한다.

새조개 샤부샤부는 깊고 시원한 전골 육수에 갖은 채소를 함께 곁들이기에, 잔칫상처럼 풍성한 상차림이 좋다. 특히 이즈음 제철인 시금치와는 대체 불가할 정도로 음식 궁합이 잘 맞기에 더욱 맛있는 시기이다.

요즘은 새조개와 함께 전복 등을 함께 내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바지락, 동죽 등을 더한 육수에 칼국수나 라면을 넣고 끓이거나 죽을 쑤어 먹기도 한다.

타우린과 단백질, 필수 아미노산 등 인체에 유익한 영양 성분이 풍부해 남녀노소가 즐기는 겨울철 보양식 새조개. 온 식구가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가족 음식이기에 마지막 겨울 밥상을 더욱 빛나게 해주기도 한다. 이곳저곳 매화가 핀다. 절정의 새조개 맛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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