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57> 이의양의 ‘황학루도’

황학루가 잇는 시와 그림의 경계

  • 위순선 부산박물관 전시운영팀장
  •  |   입력 : 2025-12-17 18:32:40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박물관에는 조선 후기 화원 이의양(李義養, 1768~?)이 그린 ‘황학루도’ 한 폭이 소장되어 있다. 긴 화폭의 상단에는 옅은 색으로 텅 빈 하늘이 펼쳐지고, 학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른다. 누대 위에는 검을 찬 선인이 피리를 불고 있고, 아래쪽에는 바위와 소나무가 둘러싼 정자에 서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화면 전체가 적막하고 정제된 분위기 속에서도 묘한 긴장이 흐른다. 선인이 피리를 마친 뒤 곧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오를 것만 같다. 당나라 시인 최호의 시 ‘황학루에 올라서(登黃鶴樓)’가 지닌 쓸쓸하면서도 초월적인 정취를 이의양은 회화적으로 재현해 냈다.

조선시대 화원 이의양이 그린 ‘황학루도’. 부산박물관 제공
황학루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황학산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예로부터 신선 자안(子安)이 황학을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 누각이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뛰어난 경관보다 시문학의 힘이었다. 당나라 시인 최호가 이곳에 올라 읊은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황학루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구절은 한 시대의 감성을 압축한 명시였다. 신선의 날갯짓이 떠난 자리, 흰 구름만이 남은 공간에서 인간은 시간의 덧없음을 느낀다. 이 시는 이백조차 감탄하며 붓을 꺾었다는 일화로 전해질 만큼 애송되었고, 고려 말부터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도 수백 회에 걸쳐 인용될 정도로 널리 퍼졌다.

우리 화단에서 황학루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신 이색의‘목은시고’에는 황학루도가 포함된 12폭 산수화 병풍을 감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미 이 무렵 황학루가 회화의 주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 전기로 접어들면 안평대군의 수장 목록 속에 안견의 ‘황학루도’와 ‘등왕각도(滕王閣圖)’가 함께 등장한다. 중국 회화와 시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안평대군이 이 두 누각을 모두 그리게 했다는 사실은, 황학루가 조선 문인 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문화 상징이었음을 뜻한다.

성종 대에는 황학루도를 둘러싼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성종은 ‘등왕각도’와 ‘황학루도’를 내어 승정원과 홍문관 학사들에게 율시를 짓게 하고, 이듬해에는 자신이 직접 그 그림 위에 시를 써 신하들에게 제비뽑기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그만큼 황학루가 조선의 군왕에게까지 문예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주제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의양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활약한 인물로,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이신(爾信), 호는 신원(信園)이다. 1811년 대마도 사행에 참여하면서 여러 산수화를 남겼으며, 정밀하면서도 운치를 잃지 않는 필치로 이름을 얻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산수화이나, 이번에 소개하는 ‘황학루도’는 그중에서도 드문 ‘시의도(詩意圖)’ 형식이다. 한 폭의 그림 속에 시와 철학,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함께 녹아 있다.

‘황학루도’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 문인들이 공유한 시적 정서와 문화적 기억의 풍경이며, 한 시대의 정신을 담은 예술적 상징이다. 박물관의 한 점 그림이 전해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풍광 그 이상이다. 시와 그림이 서로의 언어로 대화하던 조선 회화의 깊이, 바로 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원 국힘서 민주당 다수로…낙동강協 단체장 회동 촉각
  2. 2지방소멸기금 강원·충남 66억씩 최다…부산·경남 34억씩
  3. 3매출 목표 30% 그친 홈플러스, 분리매각 기로
  4. 4시속 110㎞ 스릴, 6m 아기상어 캐릭터, 달맞이 음악실…부산 새 핫플
  5. 5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6. 6북극항로 연 아크로호 귀항…이젠 상업화 길 연다
  7. 7市 개발 ‘부산 단디체’ 무료 배포…130개국서 활용 가능
  8. 8인구감소지역 신규지정 금정구, 정주여건 개선 올인
  9. 9집 값 띄우기?… 부산 아파트 매매 계약 해지율 5년 반 동안 6.16%
  10. 10“부산 라이프스타일 만족도 최상…아이 키우기에도 매력적”
  1. 1[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35.2%…민주 35.5%·국힘 41.3%
  2. 2경찰개혁·김지용 중수청장 청문도 공방 예고…부산 해수부 첫 국감
  3. 3경남도 대변인 “박완수 지사 13시간 조사, 정치공세 대상 되면 안 돼”
  4. 4與·한동훈 점입가경 공방 인신공격까지(종합)
  5. 5[속보]국힘 주진우에 민주당 "인간 도리 저버린 막말" 사퇴촉구
  6. 6이 대통령 "노동자에 중금속 배출주사 투약 엄중대처"
  7. 7국힘 “한미 균열…정동영 통일부 장관·이종석 국가정보원장 경질을”(종합)
  8. 8[속보]국감까지 간 '부캉이' … 여야 "상어 생태환경 연구확대 필요"
  9. 9정동영 “한미동맹 이상 없다…北에 저자세 아니라 정자세”
  10. 10정부, 김지용 저격 임은정 감찰 지시(종합)
  1. 1매출 목표 30% 그친 홈플러스, 분리매각 기로
  2. 2시속 110㎞ 스릴, 6m 아기상어 캐릭터, 달맞이 음악실…부산 새 핫플
  3. 3북극항로 연 아크로호 귀항…이젠 상업화 길 연다
  4. 4집 값 띄우기?… 부산 아파트 매매 계약 해지율 5년 반 동안 6.16%
  5. 5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한 달 새 66명 늘어
  6. 6"국세청 '부동산 자금출처 조사' 증가율, 서울 4%·지방 51%"
  7. 7[한 손 뉴스] 국산 비만치료 신약 ‘에페’, 위고비·마운자로에 도전장
  8. 8발전설비 점검하고, 길 위 장애물 치우고…부산 기관 로봇들 맹활약
  9. 9“부산 중심으로 체계적 해양AI 개발…협의체 꾸리자”
  10. 102030세대 겨냥 ‘저도수 토마토 막걸리’ 뜬다
  1. 1전원 국힘서 민주당 다수로…낙동강協 단체장 회동 촉각
  2. 2지방소멸기금 강원·충남 66억씩 최다…부산·경남 34억씩
  3. 3市 개발 ‘부산 단디체’ 무료 배포…130개국서 활용 가능
  4. 4인구감소지역 신규지정 금정구, 정주여건 개선 올인
  5. 5“부산 라이프스타일 만족도 최상…아이 키우기에도 매력적”
  6. 6부산북구 자체 감사 가시밭길…의회 “감사를 감사할 것” 벼러
  7. 7“우주항공복합도시 특별법 제정, 기업 유치 등 사천 경제 활성화”
  8. 8합천·하동·산청·거창, 인구소멸 해법으로 양수발전소 유치전
  9. 9영도서 40대 남성 흉기에 찔려 숨져…교도소서 만난 동거인 긴급체포
  10. 10노동자에게 비타민이라고 속이고 납 배출 촉진 주사 DN오토모티브 사태 일파만파(종합)
  1. 1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2. 2과감한 샷 2R 버디 11개 폭발…유현조 ‘부산의 퀸’(종합)
  3. 31부 승격 향한 마지막 질주…부산아이파크, 막판 승점 쌓기 총력전
  4. 4울주군, 삼남읍 교동리에 ‘울주실내테니스장’ 개장
  5. 5유도 차세대 간판 이현지, 세계선수권 정상 메치다
  6. 6허훈·킹 47점 합작에도…KCC, KT에 접전 끝 패배
  7. 7유현조, 여자골프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 정상…시즌 2승
  8. 8한화 김경문 감독·손혁 단장 동반 퇴진…후임 인선 착수
  9. 9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10. 10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지은- little talk-Venice
김지효-우리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자화상 /최은지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3일 (음 9월 3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2일 (음 9월 2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2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생육신 남효온이 가을 강변의 풍경을 읊은 시
아름답게 억새 핀 모습 읊은 조선 중기 문신 이정형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