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과 국제신문이 공동 주최한 제6회 부마항쟁문학상 수상 소감과 심사평을 게재한다. 시상식은 오는 18일 부산 중구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리는 제1회 부마항쟁문학제 때 함께 개최된다. 문학제는 이날 오후 2시 시작하며, 부마항쟁문학상 시상식은 오후 5시 열릴 예정이다.
# 소설 부문 박형숙
-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아픈 시대 되돌아볼 것”
★수상작 ‘모경의 빛’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 저는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거리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분신, 투신, 의문사, 고문치사 등 숱한 죽음을 목격했고 민주화를 열망하거나 더 나은 사회를 꿈꾸었던 친구들이 끌려가거나 구속되어 졸속 재판에 넘겨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시위의 정점은 6월 명동 성당 농성이었습니다. 진압의 위험에 며칠 밤을 두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얻어낸 6·29 선언.
‘모경의 빛’을 내고 난 뒤, 6월 명동 성당을 둘러싼 그 자리에 친구들이, 선배들이, 뜻있는 선생님들이, 또 친구의 친구, 친구의 사촌들이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단편 ‘명동 성당’에서 투피스를 들고 농성장에 찾아온 오빠를 소환한 까닭입니다. 그 오빠는 30여 년 뒤, 온 가족과 함께 축제를 즐기듯 촛불 집회의 일원이 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모경의 빛’의 말없이 운명을 받아들인 아버지도, 가난 속에서 자식들 교육에 인생을 바친 어머니도,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맏딸도, 좌절한 수재도, 성공한 여상 출신도 모두 그 촛불의 일원임을.
제가 겪은 87년 6월 이전에 80년 광주가 있었고 또 그 이전에 부마항쟁이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 12·3 계엄의 저지가 6·29 선언 때 쟁취한 ‘계엄에 대한 국회 동의’ 조항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사는 단절되는 게 아니라,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문학만의 세계는 허술합니다. 역사 속에서 비로소 문학은 자신의 육체를 새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번 수상은 저에게, 저의 세대가 통과해 온 그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인 자유, 민주, 평화, 인권이 역사의 빛이 되어 제게 돌아오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1993년 ‘실천문학’ 등단. 소설집 ‘부치지 않은 편지’ 등.
# 아동·청소년문학 부문 채은하
- “불가능해 보였던 투쟁들, 그 선택이 희망 키웠다”
★수상작 역사동화책 ‘이웃집 빙허각’
오랫동안 곱씹은 질문이 있었다. 조선 후기, 어떤 여자아이가 자기 목소리가 담긴 글을 쓰기로 결심하는 여정을 쫓아가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한 사람이,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된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해진 일상을 사는 안락함을 떨쳐낼 수 있을까. 두려움을 이기고 진실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 인물을 얽어매고 있는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면 살필수록 그런 일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 여자아이가 돌파할 수 있는 틈새를 찾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끝끝내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그때 질문이 새롭게 떠올랐다. 놀랍게도 역사에는 이미,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을 해낸 이들이 있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를 찍은 사진에는 두려움을 떨치고 불의와 맞선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한 명 한 명은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가해하게 느껴지지만, 우리 일상은 그러한 경이로운 선택들로 지켜져 왔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귀중한 역사가 담긴 상을 받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울산에서 태어남. 2021년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 지은 책으로 ‘루호’ 시리즈와 ‘이웃집 빙허각’이 있다.
# 시·시조 부문 안현미
- “부마항쟁이 꿈꾼 미래, 촛불 들기 주저않을 것”
★수상작 시집 ‘미래의 하양’
매우 영광스럽고 기쁩니다. 유신헌법이 선포된 1972년에 태어난 제가 부마항쟁의 정신을 기리는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이 제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그렇습니다. 영구종신집권을 도모하려는 독재정권에 맞서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용감하게 외친 1979년 부마항쟁의 물결이 ‘미래의 하양’이라는 절망을 품은 하양(희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국민주권과 자유를 위해 싸운 모든 분에게 그리고 여전히 ‘중대재해도 중대처벌도 중차대하지 않은 당국’은 물론이거니와 다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란 세력들과 힘차게 싸우고 있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끝끝내 유신종식과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부마항쟁이 꿈꾼 ‘미래’를 지켜가기 위해 내일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부마항쟁문학상 수상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글과 삶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깊은’ ‘미래의 하양’. 신동엽문학상과 아름다운작가상 수상.
# 기록문학 부문 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 “민주주의 수호 女 13인, 그들은 뒷걸음치지 않아”
★수상작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책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여성 열세 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눈보라 속에서도, 경찰 버스 앞에서도 뒷걸음질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이 석방됐던 날처럼 법이 시민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일 때, 더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라지지 않겠다”는 선언은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굳은 의지이기도 합니다. 기록을 가능하게 해준 인터뷰이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최나현·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
“2024년 12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생각을 한 시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탄핵 광장에 뛰쳐나온 우리는 ‘2030여성’ ‘응원봉부대’라고 불렸지만, 아무도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양소영·부산양성평등센터에서 일함)
“저희 책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쪽같고 바른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놀라울 만큼 자기 자신에게 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상을, 그분들에게, 그리고 우리 세대의 여성들에게 바칩니다. 부디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언제고 친절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김세희·부산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 전공, 지역 여성들 목소리를 기록하는 글을 이어가고자 함.)
# 신인문학상 조만근
- “강제 투입된 군인처럼 힘없던 이들 위한 위로”
★수상작 단편소설 ‘그날’
습작생에게 더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읽기만 열심히 하던 사람에게 이번 상은 열심히 쓸 수 있는 큰 힘과 용기를 줍니다. ‘소설 쓰는 것은 남의 초상집에 가서 함께 울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란 말이 기억납니다. 단편소설 ‘그날’은 대한민국 현대사 속 다수 힘없는 사람이 국가 권력과 조직 또는 제도의 폭력으로 지니게 된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 어루만지고 함께 아파하고자 쓴 소설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이 저에겐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화석처럼 자리 잡고 있는 사건입니다. 소설 속 시위대 모습이나 불에 타 버린 파출소는 그 화석들을 하나씩 다시 끄집어낸 것입니다. 언젠가 기사에서 보았던, 파출소 방화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가 사망 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 시민 이야기가 더해져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또 우리 현대사에는 시스템이나 제도 탓에 가해자로 지목됐지만, 피해자였던 힘없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5월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이 대표적일 것이고, 제 소설 ‘그날’ 속 우건안도 4·3 제주 피해자이면서 부마항쟁에서는 조직 시스템 속에서 가해자가 된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도 상처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했고 같이 울어주고 싶었습니다. 더 열심히 읽고 쓰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한의사, 석동한의원(창원시 진해구) 원장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