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및 신인문학상 부문 심사평
- 가난에 의한 가족 간 상처
- 그 속 한줄기 빛 찾는 여정
신작 중·단편을 포함해 기출간 장편소설·소설집·연작소설 등 모두 50여 편을 검토했다. 많은 본심 작품을 검토해야 하는 난감함 속에서,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새롭게 형상화한 작품을 발굴·선양”한다는 공모 취지에 맞되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찾고자 부심했다. 우리는 박형숙의 ‘모경의 빛’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자전적 가족소설 연작인 ‘모경의 빛’은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관통해 온 일곱 식구 사연을 기억의 심연까지 더듬어 오늘의 시점에서 그려낸 노작이다. 50대 중반 여성 서술자가 암 투병을 계기로 기원을 찾아 부모와 남매의 풍찬노숙 같은 고투의 세월을 되짚는바, 가난에 따른 속물적 행태를 드러내면서도 민주화운동 대열에서 비켜서지 않는 의지를 함께 그려내, 이른바 ‘후일담소설’과는 결이 다른 삶의 구체와 다면성을 부조해낸다. 상처로만 여겨졌던 가족의 민낯을 응시하면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가는 섬세한 작가의식과 그 진정성은 잔잔한 심미적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소설 부문에 신인 17명이 응모했는데, 역사 사건 재현에 초점을 둔 작품이 다수였다. 조만근의 단편 ‘그날’은, 부마항쟁과 제주4·3을 시공간적으로 함께 엮는 구성을 통해 인물들의 씁쓸한 변신 행태를 고발하는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투박하고 작위적인 대목이 더러 있지만 역사적 사건들을 관통하는 작가의식이 인상 깊다. 다른 부문 심사위원들과 논의한 끝에 신인문학상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황국명 김문주 김동윤
★시·시조 부문
- 미래 안 보이는 절망 시대
- 살기위한 고투 담담히 그려
응모작들과 지난 1년간 발간된 시집, 두 갈래로 심사는 이뤄졌다. 응모작들에 우선 중점을 두고 세밀하게 반복해서 살폈으나,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으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세계를 투과시키는 새로운 작품이 없어 아쉬웠다. 선자들은 기성 시인들의 신간 시집들을 살펴 협의한 끝에 안현미 시인의 시집 ‘미래의 햐양’을 선정했다.
이 시집은 죽음이 지배하는 현실, 즉 ‘미래’조차 전망할 수 없는 절망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서 삶을 살아내려는 존재들의 고투를 담담하고도 치열하게 그려낸다. 시인은 절망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바깥’을 환기함으로써 독자에게 삶의 불가능성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되묻는다. 특히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해하다”는 인식은,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비극적 태도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기능하며,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깊이를 부여한다.
‘미래의 하양’은 부마항쟁의 정신, 불의에 맞서 싸우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모색하는 인간의 존엄을 시적 언어로 새롭게 해석해 낸다. 안현미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시대의 어둠을 직시하면서도, 그 어둠을 뚫고 나아가려는 시의 힘을 증명해 보였다. 이 수상은 그 치열한 시적 고투에 대한 응답이며, 동시에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모색에 대한 예고이기도 하다. 심사위원 고봉준 성윤석
★아동·청소년문학 부문
- 부당한 세상 바꾸려는 정신
-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힘
아동·청소년 부문에는 마흔세 편(권)이 응모됐다. 장애 아동, 어린이의 생명력과 우정. 제주 4·3 이야기. 착취당하는 어린이들 이야기. 구제역으로 살 처분된 가축 등. 좋은 작품이 많아 읽는 즐거움이 컸다. 먼저 다른 문학상이나 공모전에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중복해 상을 주는 것은 피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문학상의 주제와 부합성, 문학적 완성도, 파급효과 등 세 항목을 중점으로 심사해 높은 점수를 얻은 작품 서너 권을 심사위원 각자 추려 본심에 올렸다. 그중 두 권이 같은 책이었다. 어느 것을 올려도 상관없을 정도인 두 권을 두고 오래 의견을 나눈 끝에 채은하의 역사동화 ‘이웃집 빙허각’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남성 중심 조선 시대. 작가는 여성 실학자 ‘빙허각’을 통해 “여자가 세상을 알아서 뭐 한다고”라며 주저앉을 뻔한 덕주를 일으켜 세운다. 일상에 촘촘하게 스민 부당한 규범과 관습에 질문하고 도전하는 덕주의 뜨거운 의지를 수려한 문장과 섬세한 표현으로 밀도 있게 그려낸 점도 돋보였다.
부당한 세상을 바꾸려 한 부산·마산 시민의 항거 정신을 이렇게 다른 시간을 건너서도 마침내 만나게 하는 문학의 힘. 지극히 한정된 소재를 거칠고 날리는 문장으로 가볍게 소비하는 작품이 유행처럼 쏟아지는데 이 작품은 아름답고 격조 있는 문장으로 부마항쟁문학상의 무게를 아동청소년문학이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심사위원 한정기 조은숙
★기록문학 부문
- 시민공동체 새로운 비전
- 오늘날 민주주의 보고서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우리 사회는 급격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내란의 여진이 진행 중인 현 상황은 우리 공동체의 현실을 우울과 불안 속에 다시 돌아보게 한다.
여전히 혼란한 상황에도 우리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 것은 격변기마다 부정적인 현실을 새로운 비전과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시민공동체 내부의 건강한 의지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비상계엄과 탄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보여준 건강한 에너지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야말로 깨어있는 공동체의 시민 스스로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좌이다. 그런 점에서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지음)는 이번 내란 국면에서 광장 공동체의 중요한 활력이 되어준 젊은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우리 공동체의 현재를 부조하는 중요한 증거라는 점에서, 우리의 건강한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저작이다.
두려움을 뚫고 광장을 만들고 지금-이곳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이 ‘딸’들의 생생한 목소리에는 내란과 혼돈의 파도를 넘어 좀 더 나은 민주공동체에 닿으려 하는 우리 공동체의 시대정신과 의지가 내장돼 있다. 46년 전 부마항쟁을 통해 분출된 시민의 염원·의지와 상통하는 것이리라. 이 책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오늘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내는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심사위원 황국명 김동윤 김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