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슥한 밤을 펼쳐 먹 갈아 붓대 세워

나는 또 누구인가 농담(濃淡)으로 헤아리니

바람도 잠을 잊은 듯 내 언어를 닦으시니



두고 간 여음들이 맛있는 글맛이다

별빛이 익힌 봄밤 진홍의 여울이다

기척은 강물로 흘러 적막에 이르는데



천장의 거미줄에 걸려든 근심 같은

교회당 십자가의 고단한 불빛 같은

진홍의 여울 길에도 해독 못한 문장 있다





기후 변화로 여전히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지만, 시인의 시간은 이미 계절을 앞서갑니다. 9월의 밤, 이는 바람은 잠들어 있던 별빛마저 깨워 시인의 밭을 은은히 비춥니다. 하늘 끝, 별밭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마음은 진홍빛 여울가에 고요히 멈춰 서고, 그 물결 위로 퍼덕이며 떠오르는 시어 하나 낚아 올려 한 줄의 시로 피어냅니다. 긴 밤 끝자락, 고독마저 벗 삼아 반짝이는 마음 하나 품고 이 밤도 길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