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 전문의인 작가 박지욱
- ‘셔터 아일랜드’ ‘간장선생’ 등
- 40편 속 인간 질병·고뇌 다뤄
- 의학서 유래한 용어들 소개도

의사 박지욱의 책, 이번엔 영화다! 글을 잘 쓰고, 재미있게 쓰는 의사를 꼽자면 신경과 전문의·작가·항공 전문의사인 박지욱은 야구팀의 제1 선발투수나 4번 타자 느낌이 있다. 국제신문에 현재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을 연재하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의학을 바탕으로 인문·예술·역사를 두루 품는, 깊고 간결하고 흥미로운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 그는 저서 ‘메디컬 오디세이’ ‘신화 속 의학 이야기’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 ‘이름들의 인문학’ ‘진료실에 숨은 의학의 역사’를 잇따라 냈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 한 장면. 이 영화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 비중 높은 작품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1990년에 이 영화를 처음 만들었는데, 2010년에 리메이크한다. 사진은 2010년 리메이크 작품이다.

이번에 낸 책은 ‘오퍼레이팅 시어터’이다. 작은 제목은 ‘어느 의사의 영화 해부’다. 오퍼레이팅 시어터(operating theater)는 원래 ‘수술실’을 뜻한다. 수술실을 뜻하는 영어에 극장을 뜻하는 ‘시어터’가 들어가게 된 역사 배경은 저자가 직전에 펴낸 책 ‘진료실에 숨은 의학의 역사’에도 잘 나온다. 새 책 ‘오퍼레이팅 시어터’ 서문에도 그 사연을 간략히 소개했는데, 요약하면 근대 의학의 태동기에 유럽에서는 수술을, 의학도와 다른 의사 그리고 일반인도 보거나 배울 수 있게 관람석까지 갖춘 극장 비슷한 곳에서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쓴 에필로그 ‘영화가 뭐라고’를 참고해 보자. “저는 1966년에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를 보낸 곳은 부산진구 범천동입니다. …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태평극장’은 재개봉관으로, 2본 동시 상영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 전 부산 범천동에 있었던 태평극장의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어렵게 싹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내에게도 고맙습니다. 연재를 위해 본 영화만 해도 이삼백 편에 이를 텐데 그 긴 시간을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오퍼레이팅 시어터’는 의사 박지욱 저자가 본 수많은 영화에서 의학·의료·의사·병원이 나오는 대목을 귀신같이 잡아내 ‘의학인문학’ 관점으로 쓴 글을 차곡차곡 쟁인 책이다. 단순히, 의사가 쓴 영화 이야기라는 차원을 이 책은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그렇게 했더니, 무엇보다 몰랐다면 무심히 흘려보냈을 의학·의학사 관련 지식이 지극히 풍성하게 담긴 책이 됐다. 거기서도 멈추지 않고, 저자는 아픔·병·상처 속에 담긴 인간의 고뇌와 고통과 응전이 담긴 깊은 인문학책으로 올라서게 한다. 그렇게 수백 편 영화 가운데 40편을 추렸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질병, 의사와 의료제도 그리고 역사까지 모두 아우르고 싶었습니다.” (프롤로그 중)

‘놔와 정신의 세계’ 단원에서는 ‘셔터 아일랜드’ ‘리스본행 야간열차’ ‘마지막 4중주’같은 영화가 숨막히게 펼쳐진다. 제2부 ‘의사라는 존재’는 사람 이야기이니 더 흡인력이 세다. ‘간장선생’ ‘엘리시움’ ‘언피니시드’ 등에 나오는 의사의 고뇌·헌신·배신·잔인 이야기가 흥건하다. 이런 흐름으로 제3부 ‘제국주의와 전쟁’, 제4부 ‘새로운 발견과 도전의 순간’까지 책은 치닫는다.

‘홀로코스트‘는 ‘전체’를 뜻하는 holo와 ‘태움’을 뜻하는 kaustos의 합성어로 제물을 통째로 태워 바치는 번제(燔祭)를 뜻한다(135쪽), 기원전 27세기에 쓰인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유방암에 대한 기록이 있다(353쪽 ), 마약 ‘해로인’은 효과가 아주 강력하다는 뜻의 독일어 heroisch에서 유래했다(251쪽) 등. 의학 관련 여러 이름의 유래와 연관 지식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