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사실적이고 깊어진 색감 선봬

강혜은 작가의 작업을 지켜본 이는 ‘고생’이란 단어를 절로 내뱉는다. 물감을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린 비닐에 넣고 손가락의 힘으로만 짜내어 캔버스 위에 뿌리는 작업을 수천 번 반복하는 일은 고행을 넘어 수행에 가깝다. 각기 다른 색을 가늘게 흩뿌려 자연의 풍경을 완성하기까지, 사실상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선이 적당히 마르기를 기다리고, 완전히 마르기 전에 다시 선을 뿌리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행에 가까운 작업으로 그의 손가락과 허리는 굽은 지 오래다. 수채화와 같이 여리고 따뜻한 그의 작품은 아픔을 딛고 고집스럽게 이어 온 작업의 결과물이다.

강혜은 작가의 Line-piece 2518. 맥화랑 제공

부산 출신 여성 중견 강혜은 작가의 신작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맥화랑(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서울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2008년부터 자신만의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을 선보여 유명세를 탔다. 아트페어마다 고정 팬이 따라다닐 정도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기업은행 본사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는 10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물감에서 실과 같은 입체적인 선을 뽑아내는 기법을 완성했다. 가느다란 실을 겹겹이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느다란 물감을 뿌리는 작업을 반복해 색을 층층이 쌓고 겹쳐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입체적인 각기 다른 색의 선이 중첩되면서 시각적으로는 폭신한 촉감이 느껴지고, 선을 흩뿌렸기에 가까이에서는 추상 작업처럼 보이지만 한 발짝 물러나면 수채화 같은 자연 속 풍경이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27점 중 22점은 그가 겨울 내내 작업한 신작으로 채워졌다. 새롭게 선보인 작품 역시 같은 기법으로 그렸지만 이전보다 더 사실적인 풍경과 깊어진 색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전 작품보다 덜 화려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색, 본질 그대로를 내보여 한층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혜은 작가는 “이번에는 예쁘게 그리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작업해 봤는데 색을 빼도 작품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소개했다.

여전히 작가는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이는 작가 스스로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하나, 작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해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색을 뿌리는 작업은 예측을 할 수 없어 늘 결과물이 궁금하다. 그래서 손을 놓을 수 없다”며 “물감을 뿌리는 작업, 자연을 그리는 일 모두 제 삶의 일부이기에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