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의 역사 파노라마처럼 담아
- ‘영화 청년, 동호’가 마지막 장식
- 다른 책은 영화제 탄생과정 소개
“돌이켜본 공직 30년과 영화 인생 36년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의 연속이었다. (중략) 이 책은 모든 일에, 매사에 미쳤던 사람의 기록이다”. (책 ‘김동호의 문화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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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이 지난 6일 제29회 BIFF 기간 특별 상영된 ‘영화 청년, 동호’ GV에 참석해 관객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영화 인생을 기록한 ‘김동호의 문화노트’와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를 펴냈다. 김정록 기자 |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전 이사장이 자신의 영화 인생과 삶을 담은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트스페이스 합정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서 그는 ‘김동호의 문화노트’와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두 권 모두 글마당 앤 아이디얼 북스 펴냄)를 공개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단 두 권을 내놓고 출판기념회를 열고 여러분을 모시게 돼 굉장히 송구스럽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책은 김 전 위원장이 신문에 연재한 이야기를 보완하고 그간 남긴 메모 등을 엮어 낸 회고록 성격이다. 문화 행정가였던 그가 영화와 사랑에 빠진 나날이 세세히 기록됐다. 지난 5월 ‘영화청년, 동호’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프랑스 칸에서 만난 김 전 위원장은 국제신문 취재진에 출간 계획을 설명하며 “(책이) 영화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인데, 제목도 그렇게 하는 게 어떨지”라며 웃은 적이 있다.
‘문화노트’에는 영화인 김동호의 도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평소 메모하는 김 전 위원장의 습관 덕분인지, 마치 며칠 전 일처럼 생생하게 기록된 것이 특징이다. ‘K-시네마’를 세계에 알린 임권택 감독, 타고난 배우였던 고 강수연 등 영화인들과 빚은 일화도 흥미롭다.
김 전 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 사장(1988년)으로 취임하던 당시 영화계가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했던 기억도 생생히 전했다. 그는 ‘문화노트’에서 “영화판에서 살아남자면 나도 영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며 밤낮 가리지 않고 영화인을 만난 일을 회상했다.
문화행정가로서 예술의전당 기획·준공,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조성, 국립국악당과 영화의전당 건립 등을 추진하고 예산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한 과정들도 펼쳐 한국 문화정책·행정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긴 세월 애주가였던 김 전 위원장이 소주 150잔을 마신 ‘전설’을 소개하는 대목도 새삼 눈길을 끈다. BIFF 창설 이후 개·폐막식이 끝나면 인근 포장마차를 순회하며 국내외 영화인들과 주고받은 술잔이다. 다만 70세가 되며 술을 완전히 끊은 그는 “집에서는 반주조차 하지 않았고, 밖에서도 ‘혼술’한 적은 없다. 아마 상대가 있어야 마시는 ‘분위기 술꾼’이어서 금주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문화노트’의 마지막은 제77회 칸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청년, 동호’(감독 김량·국제신문 제작)가 장식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올해 칸영화제 칸클래식 섹션에 초청됐다. 그는 당시 상영을 앞두고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소개로 오른 무대 인사에서 했던 말을 이 책에서 활자로 복원했다. “영화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영화를 사랑할 것이다.”
그는 BIFF 창설을 주도하고,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이 시기를 “내 인생의 항로를 바꾼 15년”이라고 표현한다. 2015년부터 2년간은 BIFF 이사장을 지냈다. 책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의 ‘영화 항로 일지’와 다름없다.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는 특히 ‘BIFF의 탄생’ 막전막후를 실감 나게 담았다. 고마운 후원인, 서울행 막차-부산행 첫차를 밥 먹듯 탄 광폭 행보…. 부산을 ‘영화 바다’로 만든 열정의 흔적이다.
이 책에는 ‘다이빙벨 사태’로 촉발된 2016년 BIFF 안팎의 갈등도 담겼다. 당시 정관 개정과 영화제 개최 관련 우선순위를 놓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전 이사장과 갈등을 겪은 일이 실렸다. 그때 ‘씨네21’에 게재된 영화인의 칼럼을 인용해 “영화계 일부에서 김동호 퇴진 요구의 글이 올라왔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는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와 강수연 배우가 사망한 때가 모두 5월”이라며 5월을 잔인한 달로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