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07> 약조제찰비

초량왜관 금지사항 5가지 새겨…밀무역 등 폐단 단속

  • 김소담 부산박물관 전시운영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4-07-01 19:23:58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조선 후기 어느 날, 부산포 어딘가에서 바닷바람에 섞인 낯선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소리는 바로 일본어였다. 이외에도 상인들의 흥정 소리, 관리들의 지시, 그리고 주민들의 정겨운 수다가 뒤섞여 있었다. 이곳은 조선과 일본이 만나는 지점이었으며, 평화와 긴장이 교차하는 ‘초량왜관’이다. 초량왜관의 정문인 수문(守門) 안에는 조선과 왜의 공식적인 외교 규정이자 포고문인 약조제찰비(사진)가 뜻을 알리며 서 있었다.

조선 초 왜구들을 포용하기 위해 제포 부산포 염포 등 3개 포구를 열었다. 이 개항지에는 왜인이 머무르며 무역하고 숙박할 수 있는 왜관이 세워졌다. 왜관은 잦은 왜란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운영이 중단된 이후, 조일관계가 다시 회복 국면에 들어서며 오직 부산에만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은 1601년 절영도에 임시 왜관을 설치한 후, 두모포에 정식 왜관을 만들었다가 1678년 지금의 용두산공원 부근인 초량에 약 11만 평 규모의 왜관을 새로 지어 1876년까지 유지하였다. 약 200년간 초량왜관을 통한 조선과 일본의 무역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왜관 근처의 상인이나 관리 역관 아전 중에는 부를 축적한 사람이 점점 늘어났으며, 왜관에 왜인이 상시 거주하고 일본 상인들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조선법을 무시하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 불법 무역인 밀무역이 성행하는 등 여러 폐단이 따르게 되었다. 이에 조선은 일본과 약조를 맺어 위반자를 단속하고자 했다.

동래부사가 만든 절목(節目)을 대마도주와 의논하고 조정에 보고하여 내용을 추가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마침내 조선 숙종 9년(1683년), 초량왜관 내 금지사항 5가지가 정해졌다. 이를 널리 공포하기 위해 비석에 새겼으니, 바로 약조제찰비이다. 약속한 금지사항은 ‘왜관 경계선 밖에 함부로 나오지 말라, 왜인에게 돈을 빌리지 말라, 밀매매하지 말라, 5일마다 물건을 들여올 때 왜인은 조선 관리를 구타하지 말라’며, 이를 어길 시 사형으로 다스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외에 ‘범죄를 저지른 조선인과 왜인은 모두 왜관 바깥에서 형을 집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왜관 거주자가 왜관 밖으로 나갈 때는 왜관 관리에게 보고하여 조선 관리에게 통행증을 보여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한문과 일문으로 각각 비석에 새겨 조선 측은 수문 안에, 일본 측은 왜관의 경계 지역에 세워서 알리게 했으나, 현재는 조선이 세운 비만 남아 있다. 이처럼 약조제찰비는 왜관의 폐단을 강력하게 바로 잡고자 하는 조선의 의지를 나타내며, 동시에 통제의 장소로서의 왜관을 상징한다.

조선 말, 약조제찰비 속 통제에 맞춰 움직이는 초량왜관 안의 세상과는 달리 왜관 밖, 나라 밖의 세상은 질서를 모른 채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숱한 역경과 거센 변화의 시간을 온몸으로 버텨낸 약조제찰비는 마침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한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제는 부산박물관 전시실로 자리를 옮겨와 사람과 문물이 오가던 초량왜관의 풍경과 그곳의 평화와 질서를 지키고자 노력한 양국의 의지를 전하고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반여 홈플도 매각…대형매장들 ‘아파트 개발’ 러시
  2. 2“187㎝ 몸 구겨넣은 車 트렁크신, 쉽지 않았죠”
  3. 3투타서 훨훨 나는 승리 수호신…롯데 용병처럼
  4. 4“브레이크 없이 탈래요” 10대 아찔한 자전거 질주에 ‘철렁’
  5. 5직접 작사·작곡도 거뜬…‘실력파’ 가수들 돌아왔다
  6. 6용호부두 재개발 재개…해양관광시설 꾸민다
  7. 7에어부산, 팬데믹 이후 첫 대규모 채용
  8. 8올 여름도 삼계탕? 내가 먹고 힘나야 진짜 보양식
  9. 9쿠팡·테무 공세 맥못추는 오프라인…부산 5년간 대형 유통점 8곳 폐점
  10. 10부산지역 대학병원도 전공의 사직처리 임박
  1. 1“에어부산 분리매각, 합병에 악영향 없다” 법률 자문 나와
  2. 2우원식 “2026년 개헌 국민투표하자” 尹에 대화 제안
  3. 3이재성 '유튜브 소통' 변성완 '盧정신 계승' 최택용 '친명 띄우기' 박성현 '민생 우선'
  4. 4與 “입법 횡포” 野 “거부권 남발”…제헌절 ‘헌법파괴’ 공방
  5. 5與 ‘방송4법’ 등 필리버스터 준비 돌입
  6. 6성창용 부산시의회 기재위원장, 자치발전대상 광역부문 수상
  7. 7與 나·원, 전대 막바지 ‘한동훈 리스크’ 집중공세
  8. 8PK의원, 3개 시도 잇는 광역철도 예타 통과 및 조기 건설 건의
  9. 9與 곽규택 “3세대 고속열차 KTX-청룡, 연착률 높아”
  10. 1019일 출생통보·보호출산 시행…김미애 "산모와 아이를 위한 가장 안전한 번호 '1308'"
  1. 1반여 홈플도 매각…대형매장들 ‘아파트 개발’ 러시
  2. 2용호부두 재개발 재개…해양관광시설 꾸민다
  3. 3에어부산, 팬데믹 이후 첫 대규모 채용
  4. 4쿠팡·테무 공세 맥못추는 오프라인…부산 5년간 대형 유통점 8곳 폐점
  5. 5부산은행 3000억 특별대출…조선해양기자재 기업 돕는다
  6. 6부산 요트 타고 영화 속 음식 즐겨요
  7. 7부산항 퀸즈W 오션프런트 임차인 모집
  8. 8직원 자녀출산 팔걷어붙인 회장님…성우하이텍 1명당 1000만원 쏜다
  9. 9가상자산 시세조종 땐 감옥 간다…이용자보호법 19일부터 시행
  10. 10SK이노- SK E&S 합병…100조 에너지기업 탄생
  1. 1“브레이크 없이 탈래요” 10대 아찔한 자전거 질주에 ‘철렁’
  2. 2부산지역 대학병원도 전공의 사직처리 임박
  3. 3부산 남구 보육거점센터 공사, 기준치초과 중금속 나와 중단
  4. 4부산시교육청 학교행정지원본부 정식 개소 불발
  5. 5밀양 한 아파트서 ‘펑’…1명 숨져(종합)
  6. 6“해상풍력특별법 마련해 통영 수산업계 보호해야”
  7. 7[뭐라노]안전이 제거된 픽시 자전거…거리가 위험하다?
  8. 8오늘의 날씨- 2024년 7월 18일
  9. 9[속보] 폭우에 중대본 2단계 가동…호우위기경보 ‘경계’ 상향
  10. 10허위로 수당 40만 원 타낸 부산경찰청 경감 기소유예
  1. 1투타서 훨훨 나는 승리 수호신…롯데 용병처럼
  2. 2음바페 8만 명 환호 받으며 레알 입단
  3. 3문체부 ‘홍 감독 선임’ 조사 예고…축구협회 반발
  4. 4결승 투런포 두란, MLB ‘별중의 별’
  5. 5한국 여자양궁 단체전 10연속 금 도전
  6. 6부산의 아들 수영 김우민 “파리서 가장 높은 곳 서겠다”
  7. 7“황희찬, 마르세유에 이적 의사 전달”
  8. 82관왕 노린 동명대 축구 아쉬운 준우승
  9. 9“매 경기 결승이라 생각, 동아대에 우승 안길 것”
  10. 10MLB 평균타율 56년 만에 최저수준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백행지원 일가지비(百行之源 一家之肥)
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명량 겪은 왜적 ‘조선수군 공포증’…인간 이순신은 후유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내공과 에너지가 만났다, 클래식기타-바이올린 매혹의 하모니
詩 ‘낙화’를 가곡으로…“부산표 음악콘텐츠 만들어 널리 알리고파”
리뷰 [전체보기]
오감이 압도되는 화려한 연출
이 뮤지컬 후회없이 즐기는 법? 눈치보지 말고 소리 질러!
문화현장 톡톡 [전체보기]
학생 발길 붙잡은 ‘등굣길 음악회’…일상에 스며든 리코더 선율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동물과 교감하니 치유의 기적 外
두 여성의 아슬아슬한 승부 外
방송단신 [전체보기]
9개 민방 합작 ‘핸드메이드…’, 한국PD대상 작품상 등 영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말 /최은지
봄비- 어머니 /권상원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돌풍’ 설경구
‘삼식이 삼촌’ 송강호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13년 만에 다시 작품으로 재회 ‘원더랜드’ 김태용·탕웨이 부부
‘범죄도시4’ 허명행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치솟는 제작비에 쪼그라든 편수…K-드라마 생태계 위기
올 여름 K-무비 7편 출격…‘인사이드 아웃2’ 독주 제동 걸까
일인칭 문화시점 [전체보기]
연극연출가 13인이 저마다 재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퍼펙트 데이즈’ 삶의 성실성에 깃든 영화의 존재론
음식·로맨스 뒤에 감춰뒀네, 가부장제를 겨눈 비수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7월 18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7월 17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영화 ‘이소룡-들 (ENTER THE CLONES OF BRUCE)’
뉴진스 하니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4년 7월 18일(음력 6월 13일)
오늘의 운세- 2024년 7월 17일(음력 6월 12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요즘 길가에 한창 피어 있는 나리꽃을 시로 읊은 조면호
세상살이 욕심 내지 말고 살라고 읊은 해원 선사의 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