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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유머와 재치, 어르신들 덕에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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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성백광 외 지음/김우현 그림/나태주 해설/문학세계사/1만6800원

“이제는 여자도 아니라 말하면서도/ 봄이 되면 빛고운 새 립스틱 하나 사 들고/ 거울 앞에서 가슴 설레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에 사는 74세 김남희 어르신의 시다. 시 옆에는 김우현 작가의 그림이 놓였다. 거울 앞에 앉은 고운 할머니다.

김남희 어르신 ‘봄맞이’-그림 감우현
㈔한국시인협회와 ㈔대한노인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이 출간됐다. 전국 각지에서 60세부터 98세에 이르는 어르신들이 5800여 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예심을 거친 100편의 작품에 대한 본심(심사위원 김종해 나태주 유자효)을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시마다 그림이 장식하고 있어 예쁜 시집이다. 여러 편의 시 전문, 어르신 성함과 나이와 동네도 함께 소개한다.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미쳐도 곱게’(곽영명·80세·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용정동) “요즘 트롯에 푹 빠진 할멈/ ○○아! 사랑해/ 잠잘 때 잠꼬대가 심해졌다/ 나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랑 타령/ 미쳐도 곱게, 함께 미칩시다” 할아버지의 마음에는 사랑과 질투의 불길이 함께 타고 있겠다.

김영명 어르신 ‘미쳐도 곱게-김우현 그림
‘당신의 나이는’(양달막·67세·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사십 대에 아버님 멀리 보내고/ 홀로 네 남매 키우신 어머니께/ 경로당에 가서 남자친구 만나라 하니/ 거그 가봐야 매양 영감태기들뿐이여~/ 화를 내는 어머니 나이 85세” 67세 며느리와 85세 시어머니의 ‘케미’가 재미있다.

양달막 어르신 ‘당신의 나이는’-그림 김우현


읽다 보니 이왕이면 부산 어르신 작품을 보고 싶어 책을 뒤적였다.

‘사랑의 정거장’(정대인·76세·부산진구 전포동) “자식에게 받은 용돈/ 내 손을 꼬깃꼬깃 거쳐 손자에게로 간다” 늘 본인보다 손자들부터 챙기는 할아버지의 넉넉한 사랑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그림도 훈훈하다.

정대인 어르신 ‘사랑의 정거장’-그림 김우현
‘고만고만’(하동진·82세·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늙은 호박이 많군요/ 모두가 고민고만하네요/ 복지관에도 늙은 호박이 많아요/ 모두가 고만고만하지요” 나이 듦을 울적해하기 보다 늙은 호박에 슬쩍 비유하는 하동진 어르신의 유머 감각은 아직 청년이다.

‘잃은 안경’(천봉근·73세·사하구 하단동) “할배가 안경을 찾아서/ 여기저기 돌고 있는데// 네 살 손녀가 찾아 주었다// 할배 손에 있다고” 똘똘한 네 살 손녀를 할아버지 안경 담당으로 임명해야겠다.

‘리모델링’(김경희·68세·부산진구 부전동) “신혼집 리모델링 해서/ 초대한다던 아들/ 공사는 다 끝난 것 같은데/ 소식이 감감이로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엄마 마음/ 몰라주는 아들// 너도/ 리모델링감이로구나” 이 집 아들은 이제 큰일났다! 엄마가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기다리는 그림 봤으면 당장 초대하시길.

‘지금 죽으면 호상일까? 요절일까?’(박원배·62세·금정구 구서동) “요절이면 마누라는 청상이어야 하는데/ 분 냄새조차 사라진 지 오래이고// 호상이면 상주들 표정도 밝고 환하던데/ 가족들이 원래 웃는 인상이고// 마누라에게 철이 없다는 소리를 오늘도 들었는데/ 내가 지금 죽으면 호상일까? 요절일까?” 아직 한창인 나이에 별생각 다 한다며 철이 없다고 하시는 부인의 표정이 연상된다.

‘안부’(윤상철·75세·연제구 연산동) “잘 있냐 하기에/ 그렇다고 했다/ 얼굴 한번 보자길래/ 그러자고 했다/ 가을 산 깊어지기 전에/ 함께 보자고 했다” 어느 길목에서 친구를 만나신 걸까. 일상의 간단한 안부지만, 어르신들께는 귀하고 고마운 순간인 것 같다.

짧은 시에 담긴 유머와 재치, 삶의 지혜와 감동이 마음을 적신다. 어르신들 모두 훌륭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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