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선 100개 처방전 기록
- 강물 짠 독일 ‘고제 맥주’ 탄생
- 기후·양조 방식 따라 맛 제각각
- 공간적 측면서 맥주 특성 분석
- 지역 사회에 끼친 영향도 살펴

편의점에서 자주 봤던 맥주들을 떠올려 보자. 하이네켄(네덜란드), 칼스버그(덴마크), 아사히(일본), 칭따오(중국)…. 이름만큼이나 출신 국가도 제각각이다. 맛과 스타일은 어떻고. 독일 바이에른 스타일의 향기로운 밀맥주, 로스팅한 보리로 만들어 초콜릿 맛에 가까운 포터(영국식 흑맥주), 꽃향과 과일향이 어우러진 상큼한 에일 등 비슷한 설명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맥덕’(맥주 덕후)들은 “맥주 맛은 그게 그거 아닌가?” “벌컥벌컥 마실 테니 아무거나”라는 말을 들으면 한없이 속상해진다.

해변의 맥주가 청량한 느낌을 준다. ‘맥주의 지리’는 물과 차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맥주를 제대로 파헤친 지리·맥주·역사 교양서이다. 아이클릭아트 이미지

맥주는 물 곡물 홉 효모 등 4가지 기본 재료로 만들어진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지역마다 토양·기후 조건이 다르니 곡물과 물 홉의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양조 방식에 따라서도 맛은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보리를 얼마나 오래 구웠는지, 홉은 얼마나 썼는지, 꿀 허브 같은 향신료를 첨가했는지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또 오크통에 어느 정도의 발효를 거쳤는지, 여러 지역에서 넘어온 효모가 공기와 만나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서도 맛과 깊이는 달라진다. 맥주양조협회가 분류한 맥주 스타일만 140가지라고 하니 맥주 맛의 미묘한 차이를 결정짓는 복잡한 요인들은 와인과 견줄 정도다.

그런데 와인 이야기를 다룬 책은 교양서 에세이 이론서 등 다양한데도 맥주는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 와인을 잘 아는 것은 ‘교양’으로 여겨지는 반면 맥주는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술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물과 차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음료 중 하나인데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부족했던 셈이다. 책 ‘맥주의 지리’는 그런 의미에서 ‘진지하고 자세하며 흥미롭게’ 맥주를 파헤친다.

책은 고대 수메르부터 오늘날까지 맥주의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확산됐는지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맥주 양조의 다양화를 일군 이집트에서 맥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치료제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달게 하기 위해 대추를 넣거나 쓴맛을 더하려고 루타를 넣기도 했다. 고수 향나무 감초 뿌리나 민들레 민트 굴껍질 당근도 넣었다. 이집트 문헌에는 ‘맥주’를 포함한 100개의 처방전이 나열돼 있다.

반면 와인을 중시한 로마는 포도가 자라지 않는 북부지역에서만 맥주를 즐겼다. 영주들은 맥주 양조를 포기했고, 로마 함락 이후 주인을 잃은 양조장은 수도원으로 옮겨갔다. 수도사들은 최고의 재료와 과학적 방식으로 고품질의 맥주를 만들어 자급자족은 물론 맥주산업 부흥에 이바지했다. 오늘날에도 벨기에나 트라피스트 등에서 만든 수도원 맥주가 고급으로 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쌉싸름하고 강렬한 맛이 특징인 IPA(인디아페일에일)는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영국에서 만든 맥주가 인도로 오는 동안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인들이 페일에일에 방부제 역할을 겸한 다량의 홉을 넣으며 탄생한 것이다. 강물이 짠 편인 독일 고슐라어 지방에서는 짜고 시큼한 맛의 ‘고제’ 맥주가 양조됐다.

책은 맥주 설명서이자 지리 교양서이며 역사책 역할도 한다. 지리학 교수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맥주가 어떻게 지역 환경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공간적 측면에서 상세히 다룬다. 전 세계 지도에 표시된 맥주의 지리적 공간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냉장고 한편에 넣어둔 맥주가 다시 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