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는 쿠바와 깜짝 수교를 맺었다. 여러 분야에서 기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가장 뜨거운 반응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쿠바의 한국문화 커뮤니티 ‘아르코르’이다. 회원 수 1만 명이 넘는 이 커뮤니티는 K-팝, K-드라마, 한국어 등 한국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쿠바의 한류 열풍을 주도한다. 문화는 때로 정치 이념과 역사 갈등을 넘어 서로를 하나로 묶어준다. 조선 시대에도 갈등을 넘어선 화해의 문화 교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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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이 행하는 갖가지 재주인 마상재를 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인 마상재도권 일부. 부산박물관 제공 |
“이 말 등에서 저 말 등으로, 저 말 등에서 이 말 등으로 좌우로 뛰어다니기도 하며 두 말 등에 두 다리를 벌려 다니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 웃기도 하다가 갑자기 말 등에 가로눕는 등 별의별 재주를 다 부리니, 구경꾼으로 담이 쳐져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신유한(申維翰) ‘해유록(海遊錄)’ 1719년 6월 30일 신미
위의 글은 조선 후기 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간 신유한이 쓴 ‘해유록’ 일부로 조선의 재주꾼이 마상재를 공연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신유한은 화려한 마상재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파에 길이 막혀 지나갈 수도 없었다고 기록했다. 조선의 마상재가 무엇이기에 일본에서까지 이렇게 인기가 많았을까?
마상재(馬上才)란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이 행하는 갖가지 재주로 삼국시대부터 성행해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이어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마상재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함경도 홍원에 쳐들어온 원나라군과 싸울 때 말 왼쪽 옆구리에 거꾸로 매달려 몸을 숨기는 마상재 재간, 자신을 노리는 적장의 창을 피해, 적장이 중심을 잃고 거꾸러졌다는 일화가 전한다.
조선 선조 대에는 마상재가 무과 시험과목에 포함되면서 중요성이 강조되고 수준도 높아졌다. 이런 소식은 일본까지 전해져 조선통신사에 마상재 하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제4차 통신사(1636년) 때부터 통신사 일행에는 마상재가 반드시 참여할 정도로 일본 측의 큰 관심을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200여 년 동안 조선과 일본은 통신사를 통해 다방면으로 문화 교류를 이어갔는데, 그중 마상재가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조선 무예의 우수성을 일본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부산박물관 부산관에서는 당시 일본에서 펼쳐진 마상재를 소개한 그림책 ‘마상재도권(馬上才圖卷)’을 만날 수 있다. 전립 쓰고 화려하게 꾸민 마상재꾼이 특별히 고른 키 크고 빛깔 좋은 말을 멋지게 다루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검을 들고 말 달리며 무예를 뽐내고, 말 위에 서서 달리기, 두 마리 말 위에서 달리기, 말 위에 거꾸로 서기, 말 위에 뒤로 눕기 등 다양한 재간을 선보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당시 일본 사람이 마상재를 보며 느낀 희열과 감동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