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공연장에서 만난 서양인이 좋아하는 뮤지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내가 꽂혀 있는 뮤지션을 물었다. “아이유”라고 답하자, 예상 못 한 기발한 농담을 들은 듯 빵-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유를 좋아하느냐고 되물었다. 좋아하는 게 아니고 믿는다고 답했다. 서양인은 어떤 이유에선지 나를 퍼니가이라고 불렀다. 믿음은 꽤 든든한 동력이 되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 다큐시리즈 ‘나는 신이다’를 참고하면 된다. 오래 관찰하고 고심한 끝에 세상 무해한 신앙의 대상으로 아이유를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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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아이유가 발매하는 첫 앨범 ‘The Winning’ 앨범 커버. |
때마침 로또를 사기 전에 기도할 이름이 나도 필요했다. 스스로 참 기특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귀엽고 노래까지 잘하는 수많은 아이돌 중 하나였던 아이유는 한국 여성 가수 중 처음으로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공연하는 국민가수가 됐다. 30대가 된 아이유의 첫 앨범 ‘The Winning’은 그간 세파에 시달리느라 줄어든 신앙심을 채워준다. 선 공개된 ‘Love wins all’ 뮤직 비디오에선 지금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BTS 뷔와 함께 세상 가엽고 안타까운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며 작심한 듯 울려버린다.
아이유가 나를 울린 건 사실 처음은 아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지금은 별이 된 이선균과 함께 수도 없이 울렸다. 이어 공개된 ‘홀씨’에서는 아이유에게 밈처럼 따라붙던 ‘국힙원탑’이란 별명이 이제 더는 밈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유의 컴백이 어쩌면 느슨해진 힙합 씬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뮤직비디오에서 다양한 피부색의 어린이들과 함께 춤추는 아이유 모습에선 왕년의 마이클 잭슨이 연상되기도 한다. 둘 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공연했고 취향 따윈 가볍게 넘어서는 강력한 존재감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탕웨이와 함께 뮤직비디오에서 묵직한 눈빛을 나누는 ‘Shh..’는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아이유가 데뷔한 해에 태어난 뉴진스의 혜인, 그리고 패티 김, 시대를 대표하는 목소리들이 블루지(bluesy)한 기타와 진하게 어우러지는 귀한 노래다. 이젠 누군가 취향을 물을 때 아이유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부질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믿음을 갖고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할 듯하다. 아이유는 이제 그런 뮤지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