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이병주기념사업회 주최
- 작가 메시지 되새기는 장 마련

- 생전 즐겨 듣던 베토벤 운명 등
- 동행금관6중주 공연 시작으로
- 작품 속 등장하는 아나키즘·사랑
- 주제별 토론 통해 의미 공유해

- “대문호가 쌓은 문학 산맥엔
- 배려와 통합, 화해가 자란다”
- “나림의 문학 지리지 만들자”
- 발표자·청중 다양한 의견 나와

시인이자 시조시인 강명호 씨는 제2회 나림 이병주 문학콘서트에 참석한 느낌을 지난 2일 자신의 SNS에 이렇게 썼다.

“젊은 날에 ‘비창’을 읽고 심장 깊숙이 박힌 감흥을 지금도 느끼고 있어 동참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나림 이병주 작가가 사랑한 노발리스의 문장)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문학은 사랑을 배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뜨거운 참여 열기로 창가에 이슬까지 맺혔다.”

제2회 나림 이병주 문학콘서트가 ㈔이병주기념사업회·국제신문 주최로 지난 1일 저녁 부산 서면 영광도서 8층 문화홀에서 열렸다. BNK금융그룹, 지역기업 서봉리사이클링(회장 문정현)의 후원과 문화유목집단동행(예술감독 정두환)의 기획 또한 큰 몫을 했다.

시민·독자·문학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대문호 나림 이병주(1921~1992) 작가가 오늘, 여기, 우리에게 문학의 힘을 담아 선물한 메시지를 되새기고 예술의 즐거움을 만끽한 겨울밤이었다.

지난 1일 부산 서면 영광도서 8층 문화홀에서 열린 제2회 나림 이병주 문학콘서트에서 발표자와 토론자가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희 김주성 소설가, 김종회 ㈔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하태영 교수, 조광수 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대립·분열·갈등 아닌 화합

부산 문단의 중진 박명호 소설가는 이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잠시 잊고 있던 가르침을 다시금 크게 깨우친 밤이었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경남이 낳고 부산을 빛냈으며 한국 문단에 불세출의 업적을 남긴 대문호이다. 특히 그분이 쌓은 문학 산맥은 대립·분열·갈등을 조장하는 세계가 아니다. 인간에 관한 깊은 이해, 사람을 도구로 쓰는 행태에 대한 분노, 배려하고 용서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통합과 화해가 자란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과연 이런 분이 또 있겠는가.”

나림 이병주 작가의 삶과 문학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경남 하동에서 나고 자라, 진주에서 배웠으며, 마산에서 활약하고, 부산에서 꽃 피운 뒤, 서울로 가 한국 문단에 전무후무한 문학 산맥을 일군 대문호. ‘지리산’ ‘산하’ ‘관부연락선’ ‘바람과 구름과 비’ ‘그해 5월’ ‘소설 남로당’ ‘행복어사전’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쥘부채’ ‘허상과 장미’ ‘삐에로와 국화’ ‘철학적 살인’ ‘소설 허균’ ‘소설 정도전’ ‘소설 정몽주’….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최고의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 선생이 인생 말년에 이런 평을 남기게 했다.

“한 사람만 꼽아야 한다면, 이병주를 택할 수밖에 없지. 그의 작품을 모두 모으면 곧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총체가 되거든.”(‘이병주 평전’ 저자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물음에 대한 답변)

나림 이병주 작가는 1950년대 말~1960년대 4·19 혁명 시기 국제신문 주필과 편집국장으로 대활약했다.

나림 이병주 문학콘서트에서 동행금관6중주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동행금관6중주의 음악 선물

문학콘서트는 국제신문 강남훈 사장의 환영사로 문을 열었다. “국제신문은 대선배이시자 대문호인 나림 이병주 선생을 기리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하고자 한다. 이병주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도 나섰다. 시민과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현재 한국법학원장이자 고려대 총장을 지낸 ㈔이병주기념사업회 이기수 공동대표는 축사에서 “경남 하동에서 오랜 세월 해마다 열리는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에 이어 부산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뿌듯하고 고맙다”고 화답했다.

이병주 작가의 아들인 이권기 전 경성대 교수는 가족 대표로 인사말을 하면서 “생전에 선친께서는 인생의 가장 빛나고 좋았던 시절을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에서 언론인으로서 보낸 때라고 말씀하셨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음악단체 동행금관6중주가 나설 차례가 왔다. 이 팀은 이권기 씨가 꼽은 ‘생전 선친께서 사랑한 노래와 음악’ 목록을 오래전 전달받고 열심히 연습해 둔 터였다. 곡목은 베토벤의 ‘운명’과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일부, 대중가요 ‘해운대 엘레지’ ‘추풍령’이었다. 클래식 ‘운명’과 ‘신세계 교향곡’이 나림 문학 세계의 지향·철학·정신성을 담았다면, 대중가요 두 곡은 신산고초가 가득했던 나림의 삶을 보듬어 준 애창곡이었다. 강력한 앙코르 요청이 나왔고 동행금관6중주는 팝송 ‘My Way’를 선곡했다. 거인에게 바친 헌정곡이었다.

■아나키즘에 관한 새로운 이해

㈔이병주기념사업회 김종회 공동대표가 진행을 맡은 ‘이병주 문학 이야기’ 순서에 청중은 높은 호응을 보냈다. 주제는 나림 이병주 문학 속 아나키즘과 사랑이었다. 아나키즘은 이병주 문학 속에 자주, 중요하게 등장하며 나림이 모색한 대안의 실마리나 방향 또한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해준다. 이런 아나키즘이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생태주의, 미니멀리즘, 자유 등의 가치와 이어지는 데 착안해 선정한 주제이며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을 지낸 정치사상가 조광수 전 영산대 교수가 발표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방대하고 거대한 나림 문학의 호수에서 선명하게 빛을 내는 가치이자 지향이다.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영 교수는 이병주 작품을 샅샅이 읽고 사유하며 관련 저서 ‘밤이 깔렸다’를 펴내는 등 법학자 관점에서 나림 연구의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린 2023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에서 나림 작품에 관한 발표로 박수를 받았다.

나림 이병주 작가와 하태영 교수가 나누는 가상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사랑’ 발표에서 하 교수는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문학은 사랑을 배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사무사(思無邪)‘ ’배려합시다‘ ’용서합시다‘ 등 나림의 어록을 결론으로 끌어내며 큰 공감을 얻었다.

■유난히 컸던 청중의 호응

김종회 공동대표의 노련하고 신출귀몰한 진행 속에 ㈔이병주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인 김주성 소설가, 김용희 소설가(평택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대화를 나누자 문학콘서트는 무르익어갔다. 청중의 질문 공세는 그 열기를 더 달궜다. 시를 쓰는 공학도로 부산 문단에 잘 알려진 박하 (박원호) 시인은 나림 문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표현하며 “조광수 교수의 ‘나림 문학 속 아나키즘’ 발표를 통해 내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그간 아나키즘을 너무 좁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청중의 질문, 발표·토론자들의 답변이 한동안 이어지면서 나림 문학에 관한 접근이 한 걸음씩 더 이어지는 가운데 하태영 교수는 법학자이가 문학 애호가로서 그간 이병주 문학을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특히, 나림이 활약하고 중요한 성과를 쌓은 부산에서 ‘나림 이병주 문학 지리지’를 만들고 작은 기념물을 세워 그분을 기리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의 끝은 경품을 뽑는 순서였다. 경품은 조광수 전 교수가 나림 이병주 문학 속 아나키즘을 조명한 ‘나는 자유’, 안경환 명예교수의 ‘이병주 평전’ 그리고 이병주 작가의 작품이었다. ‘이병주’를 선물 받은 이들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