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문학 부문 김예강 시인
-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 쉽게 쓰는 법
- 깊이 고민하던 때 들려온 수상소식
- 독자에게 다가가되 나를 잃지 말라는
- 최계락 선생의 뜻이 아닐까 생각
# 아동문학 부문 정재분 동시인
- 40대가 돼서야 사랑에 빠진 문학
- 따뜻하고 깨끗해지는 동시 특히 좋아
-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춤추면서 부른
- 최계락 동시노래 떠올라 더 큰 감회
# 아동문학 부문 이서영 동시인
- 간결하고 서정적인 최계락 시세계 흠모
- 어르신 생활지도사로 활동하다보니
- 노인도 읽고 느끼는 동시 쓰고 싶어져
- 다정한 동시라는 칭찬 가장 듣기 좋아
제23회 최계락문학상 일반문학 부문과 아동문학 부문 수상자 3인이 지난 16일 국제신문 편집국에 모두 모였다. 김예강 시인(수상작 시집 ‘가설정원’), 정재분 동시인(수상작 동시집 ‘꽃잎의 생각’), 이서영 동시인(수상작 동시집 ‘너, 정체가 뭐니’)이었다.
예년처럼 수상자들을 따로따로 인터뷰하고 따로따로 사진 찍기보다, 한 자리에 모두 모여 함께 최계락문학상 수상소감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사진도 함께 찍어 보았다. 수상자들의 깊은 생각과 문학 사랑, 그리고 밝은 에너지가 한데 뭉치면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구상이었다. 고향은 다르지만, 부산에서 줄곧 문학 활동을 한 세 수상자는 기대했던 좋은 에너지를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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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최계락문학상 일반 문학 부문 수상자 김예강 시인과 아동문학 부문 수상자 정재분 이서영 동시인(왼쪽부터)이 지난 16일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수상 기념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수상 소식 듣던 순간
이서영 동시인은 수상 통보를 받은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날도 친구들과 ‘삶에서 안 좋은 상황도 많이 만나지만 굴하지 말자,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럴 때 깜짝 놀랄 좋은 소식을 들었죠. 수상 소식이었습니다.” 정재분 동시인의 설명은 이러했다. “나는 아동문학을 하면서 ‘올인’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필도 쓰고, 문학단체 활동도 하고, 어린이집·유치원을 47년 하면서 일복이 많았죠. 부족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뭔가 뚫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갈증이 있던 차에 상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뻤고 힘이 났어요.”
김예강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을 올해 내고 나니 덕담해 주시는 분도 꽤 있었습니다. 시를 계속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는 언제나 필요하죠. (응모한 뒤) 최계락 시인의 사진을 보며 평온하고 단아한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지던 때, 연락이 왔어요.”
김예강 시인은 2005년 ‘시와사상’을 통해 등단해 시집 ‘고양이의 잠’ ‘오늘의 마음’을 앞서 펴냈다. 그는 “문학 생애에서 문학상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정재분 동시인은 2000년 ‘한맥문학’으로 등단해 ‘산성마을 아이들’ 등 동시집 여러 권을 냈고 수필과 낭송 등 ‘성인’ 문학 영역 문학상은 받았다. “하지만 아동문학 부문의 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서영 동시인은 2013년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앞서 첫 동시집 ‘소문 잠재우기’로도 주목받았다. 그 또한 등단 때 말고는 문학상은 처음이라고 했다.
■최계락 시인과 나
김예강 시인은 치열하게 시 세계를 갈고 닦으며 진지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시인으로 잘 알려졌다. 어린 시절 경남의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6년 동안 6번을 전학 다니며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았다는 김 시인은 부산교대를 졸업한 뒤 32년 동안 교사로 활동했다. “최계락 시인의 ‘꽃씨’도 ‘꼬까신’도 음악교과서에 나오니까 해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문예반 담당도 했죠. 그리고 나는 사진으로 보는 최계락 시인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그윽하게 바라보며 ‘써라, 계속 써라, 좋은 시를 써라’하고 격려해 주시는 느낌입니다.”
정재분 동시인은 중1 때부터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단골로 나가던 문학소녀였다. 대학 때 유아교육을 전공하면서도 문학과 가까웠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멀어졌다. 생활과 가족 뒷바라지가 먼저였다. “40대가 된 2000년에야 문학을 만났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특히 따뜻해지고 깨끗해지는 동시가 좋더군요.” 어린이집·유치원을 통틀어 47년, 부산 금정산성에서만 23년간 했던 그는 “최계락 시인의 동시 ‘꽃씨’로 만든 노래로 내가 안무를 짜서 아이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한 것 또한 내게는 소중한 문학수업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서영 동시인은 현재 백화점 문예강좌 등에서 글쓰기와 동시를 가르치는 강사이면서 생활지원사로 활동한다. 생활지원사는 홀로 사는 노인 등의 집을 방문해 보살피고 돕는 직업이다. 부산에 정착한 뒤 한 번도 옮기지 않고 동구 수정동 ‘산만디 마을’에 수십 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교과서에서 만나는 ‘꽃씨’ ‘꼬까신’을 보며 언제나 저토록 간결하고 서정성이 높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걸어갈 문학의 길
이서영 동시인은 “중학교 때 잡지 ‘여학생’에 시를 응모해 상을 받았다. 그때 심사를 본 황동규 시인께서 ‘귀엽고 솔직하다. 세월 가면서 무뎌지지 않는다면 아주 좋은 시를 쓸 것이다’는 취지로 써주신 심사평을 지금도 갖고 있다”고 떠올렸다. “동시·동화를 공부하며 쓰고, 글쓰기 지도를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생활지원사로서 어르신도 접하다 보니 어린이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도 읽고 느끼는 동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 문우가 내게 ‘참 다정한 동시다’고 말했을 때 참 좋았다”고 말했다. 따뜻하고 잘 통하는 동시를 그는 지향한다.
정재분 동시인은 “이번 수상이 참으로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그간 너무 바쁜 생활을 해온 것 같다. 2000년에 문학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문학이 정말 좋아 가족에게 문학 공부하러 가는 날은 아무것도 부탁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유아교육가로서 아이들과 평생 산 그는 “좋은 시상이나 아이디어가 팡팡 나오지는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신 아이도 어른도 읽고 나면 입가에 미소가 남는, 따뜻함과 위로가 있는 그런 시를 열심히 쓰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김예강 시인은 “나는 줄곧 시를 통해 고정된 기존 이미지를 깨려고 해왔다. 그렇게 깬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시의 대상과 시를 쓰는 주체를 다양하게 확장하고, 열려 있게 하고 싶었다”고 자신의 문학관에 관해 설명했다. 그렇게 남이 가지 않는 길로 가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고 방향을 개척하면, 시인은 자유로움을 비로소 느낀다. 그런데 김 시인은 “그렇게 하다 보니 ‘시가 어렵다’고 평하는 분도 꽤 있다”고 털어놨다. 어쩌면 이건 ‘개척형’ 시를 쓰는 시인들의 숙명이다.
김 시인은 “그래서 시를 좀 더 쉽게 쓰는 길이 있을까 싶어 관련 책을 주문한 날, 제23회 최계락문학상 수상 통보를 받았다. 이건 아마 조금 더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면서도 자기 방식을 잃지는 말라는 (최계락 시인의) 뜻이 아닐까 싶었다”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