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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옆 우아한 해설가로 보셨나요…운동화 신고 현장 누비는 열정가들이죠

부산 활동 큐레이터 4인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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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curator): 미술관 등에서 전시물의 수집과 관리 및 연구, 전시 기획 등 종합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직업. 국내 미술관 등에서는 ‘학예사’라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부산의 미술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전시기획자들을 부산 해운대구 OKNP 갤러리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장지영 어컴퍼니 대표, 이보성 OKNP 팀장, 창파 아트디렉터,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큐레이터(curator)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고상한 직업’으로 묘사된다. 잘 다듬은 머리와 근사한 정장 차림에 나긋한 목소리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그러나 미술 현장의 ‘현실 큐레이터’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펜 대신 공구를 들기도 한다. 까칠한 피부로 학술연구를 살피거나 행정서류 더미에 묻혀 지내기도 한다. 작품을 확보하고 설치하는 일은 개막 직전까지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미술계 종사자를 뭉뚱그려 ‘큐레이터’로 불렀지만, 최근엔 공공미술관 전시기획 담당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에서 큐레이터로 등장하는 사람은 대개 상업갤러리에서 미술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스트’다. 전시 기획을 포함해 아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아트 디렉터’라고 부른다.

 ● 출신도 현장도 다른 기획자들

 큐레이터가 전시 현장을 누비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영화로 치면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 기획서 작성부터 작품 선정, 피칭, 공간 구성, 홍보 등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책임진다. 좋은 큐레이터의 소양은 무엇일까. 이들은 부산 미술계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래서 들어봤다. 부산의 다양한 미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지역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는 학예사와 아트디렉터 4명을 부산 해운대구 OKNP 갤러리에서 최근 만났다. 장지영 어컴퍼니 대표, 이보성 OKNP 팀장, 창파 실험실 씨(Lab C) 아트디렉터,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등이 함께 자리했다.

 지난해 상업갤러리 어컴퍼니의 문을 연 장지영 대표는 부산에서 잔뼈 굵은 갤러리스트이자 아트디렉터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립해양박물관(부산 영도구)의 첫 현대미술 전시 ‘파란, 일으키다’(국제신문 지난달 23일 자 16면)를 기획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대안공간 반디 작가로 활동하다가 10여 년간 가나부산과 갤러리육공사에서 일했어요. 덕분에 ‘부산 작가들’이라는 무기를 얻었죠. 상업 씬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좋은 작가가 많아요. 요즘엔 이들을 상업적으로 프로모션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창파 아트디렉터는 ‘장소특정적 리서치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마다 해오고 있다. 올해는 부산 염전을 둘러싼 ‘짜디 짠’ 것들의 이야기를 꿰어 ‘짠것들의 연결망’(국제신문 지난달 31일 자 16면)을 선보였다. 창파 아트디렉터는 서울 여성사전시관 큐레이터로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에 산 지는 이제 8년. 부산을 깊게 탐구하는 기획자다.

 이보성 팀장은 서울 토탈미술관, 간송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다 상업갤러리로 넘어온 케이스. “토탈미술관에선 해외 큐레이터와 협업 전시가 많았어요. 우리 전시를 해보자 싶어 작은 공간을 얻어 ‘더룸 프로젝트’를 열었죠. 이승택 김구림 작가 등의 아카이브 전시를 했어요. 지금은 미술관 씬에서 풀어내지 못한 것을 상업갤러리에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해요.” 실제 그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세계 유명 작가의 아티스트북을 선보이는 기획전 ‘Books as Art as’(국제신문 지난 8월 8일 자 14면)를 기획해 지역 갤러리에선 보기 힘든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부산현대미술관 3년 차 학예사인 최상호 학예사는 작가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전시가 작업 같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고 한다. “장점이자 단점이라 생각해요.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 중입니다.” 최 학예사는 부산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았다는 어린이 전시 ‘포스트 모던 어린이’(국제신문 지난 1월 12일 자 10면)을 기획했다. 수치와 별개로 가장 재미있었던 전시는 작품 제목과 작가 이름을 가린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였다고. “관람자들이 웹사이트에 1만 개 넘는 코멘트를 남겨줘서 기억에 가장 남아요.”

 ● 모호한 경계… 대안공간은 위축

 이들은 최근 미술 전시장의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요즘엔 대안공간과 미술관 전시가 크게 차이가 없어요. 비엔날레도 그렇고. 예산과 규모만 다르죠. 미술관에서도 비엔날레형 전시를 보여주면서 경계가 모호해졌어요. 상업갤러리도 마찬가지예요. 해외 비엔날레를 가면 대형 갤러리 전속 작가의 작품이 많아졌어요. 베니스 비엔날레가 식상해졌달까요. 오히려 카셀도큐멘타가 훨씬 재밌더라고요.”(이보성 팀장)

 “비엔날레가 상업 씬으로 많이 옮겨와서 그런 것 아닐까요. 비엔날레에서는 동시대 시각예술을 보여줘야 하는데, 점점 갤러리와 비슷해진다는 인상을 받아요. 미술관과 갤러리도 그래요. 제가 작가로 활동할 때만 하더라도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를 키워서 작업이 무르익으면 미술관 전시를 하고, 그러면서 작업이 성장하는 단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죠.”(장지영 대표)

 창파 아트디렉터는 부산 대안공간의 현실을 꼬집었다. “대안공간과 같은 야생의 씬이 더 위축되고 약해진 거 같아요.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기획자는 아직 괜찮은데, 새롭게 발을 내딛는 전시기획자들이 설 곳이 없어요. 대학도 그래요. 기획자를 배출할 만한 학과가 너무 없어요. 부산대 미학, 경성대 문화기획 전공이 전부예요. 신예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망가지니까 결국 수도권으로 나가버리는 거죠.”

 이보성 팀장이 거들었다. “부산에 미술 공간이 많아요. 갤러리가 정말 넘쳐요. 중요한 건 대표들이 기획자를 둠으로써 갤러리가 빛날 수 있다는 걸 몰라요. 전시 하나도 가치 있게 만들어 낼 사람이 필요한데, 큐레이터가 아니라 단기 알바형 갤러리스트를 채우는 곳이 많으니까 변변찮은 전시만 양산되는 느낌이죠.”

 공공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다. “부산에 미술 비평지가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에요. 부산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미술 생태계를 만들려면 비평가가 필요한데, 저희 입장에서도 비평가 글을 구하기가 참 힘들어요.”(최상호 학예사)

 ● 지역 미술 성장의 한 축은 ‘관객’

 지역 미술의 성장을 위해선 전시장과 큐레이터 못지 않게 중요한 한 축은 바로 ‘관객’이다.

 “부산에도 저희 OKNP를 포함해 좋은 화랑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작품이라도 좋은 전시 기획으로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드릴 거에요. 특히 저희는 상업 갤러리로써 안전한 길을 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야심찬 기획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실험들을 잘 지켜봐주시길 바랄게요.”(이보성 팀장)

 장지영 대표는 미술품을 투자의 대상이 아닌, 작가와 작업에 대한 응원으로 관심 가져주길 바랐다. “다양한 부산 미술 씬의 젊은 작가, 숨겨진 작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주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최상호 학예사는 관객에게 ‘의심’을 가지고 전시를 봐달라고 했다. “미술관 전시를 볼 때 작품이나 주제에 대해서 계속 의심해주세요. 학예사 개인의 의견을 풀어놓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의심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도 찾아가셨으면 합니다.”

 앞서 길을 간 선배를 찾기가 힘들다는 창파 아트디렉터는 자신이 젊은 독립 큐레이터, 아트 디렉터의 든든한 선배가 되어주겠단다. “이른바 ‘인서울’ 하지 않아도, 미술 기획을 발굴·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있으니까요. 많은 기획자가 자리 잡고 성장해 주길 바랍니다. 여기 선배가 있으니까요.”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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