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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피해 모여든 예술인들…포화 속에 피어난 부산문화

상지건축과 함께하는 오 부산-유산과 미래 <6> 피란수도 부산과 문화 르네상스

  • 이순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  |   입력 : 2023-11-06 19:09:01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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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후방사회 단결 도모하고
- 반공의식 높이려는 목적으로
- 적극 장려된 문화예술 소양교육

- 당대 활동하던 거의 모든 문인과
- 음악의 장수철 윤용하 윤이상
- 미술의 이중섭 박영선 김환기 등
- 걸출한 예인들 창작활동 맞물려
- 전무후무 문화전성기 누린 부산

한국전쟁은 인구 구성 변화와 이데올로기적 재편, 생활세계의 해체와 변동, 권력구조와 문화의 재편성을 가파르게 촉발했다. 전황이 급변하면서 정부기관을 비롯한 서울의 문화예술 제도가 부산에 터를 잡았으며, 도시는 대규모 피란민들로 흘러넘쳤다. 부산이야말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땅끝이자 끝의 끝, 자유의 교두보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부산이 변방의 항구도시에서 피란수도로, 예술사회 중심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된 것은 한국전쟁의 결과였다. 피란수도 부산은 사회공론장과 피란예술 사회가 폭넓게 형성되었다.
1952년 무렵 뷔엔나 다방(현 부산 중구 백산기념관 옆) ⓒ부경근대사료연구소
■문학-중심지가 되다

포연 자욱한 폐허의 전장에도 꽃은 피는가. 부산은 충격 여파를 헤아릴 여유도 없이 피란 문인과 토박이 문인이 중층을 이뤄 새로운 문학사회를 구축했다. 1953년 4월 14일 문화인등록령 공포 이후 1954년 9월 문화인 자격을 취득한 문인은 105명이었다. 이름을 올리지 않은 문인까지 포함하면 부산 거주 문인은 100명을 훌쩍 넘는다. 문단 재편은 문학제도와 소통 방식, 문학인의 삶과 문학활동뿐만 아니라 문학의 존재방식과 문학작품 생산·향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매체 생산과 향유의 폭발적인 증가는 부산 지역문학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했다. 지역지 ‘국제신보’(지금의 국제신문) ‘부산일보’ ‘자유민보’ ‘민주신보’가 작품 발표 환경을 제공했으며, ‘서울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연합신문’ ‘평화신문’들이 부산에서 복간과 속간을 거듭했다.

‘신조’ ‘주간국제’ ‘자유세계’ ‘문화세계’ ‘신사조’ ‘경남공보’ ‘신생공론’ ‘수산’ ‘국방’ ‘예술타임쓰’ ‘새벗’ ‘어린이 다이제스트’ ‘파랑새’ 등 잡지도 발간됐다. 이들 매체는 작품 발표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시문화담론을 생산하는 데 이바지했다. 등사본 매체까지 더하면 전쟁기 부산은 지식 생산과 문학 활동의 중심지였다. 문총 본부는 전시문예강좌를 열어 결전 의지를 다지고 문학 교양을 고취하기도 했다. 새로운 문학 환경은 후속세대의 작품 생산 가능성을 확대하고 학생문단을 두텁게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음악-교류하고 달래며 성장하다

우신출 종군화, ‘보병소식(步兵小息)’, 1950.10.5. ⓒ전쟁기념관
문학과 달리 음악사회는 부산 음악인과 피란 음악인들의 상호교류가 활발했다. 전시작곡가협회와 실험악회 결성이 대표적이다. 전시작곡가협회는 장수철 김대현 박재훈 윤용하 등 피란 작곡가와 부산의 이상근 윤이상이 결합했다. 실험악회는 전봉초 신재덕 안용구 윤이상 등 중견 음악인이 결성한 단체로, 창작 활동의 다각화를 추구하고 음악의 본질적 가치를 모색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당시 무명에 가깝던 윤이상 이상근 정윤주와 같은 지역 작곡가를 발굴해 작품 실연 기회를 제공한 일은 실험악회의 성과다.

이 시기 음악은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자장 안에서 전시문화전선 구축과 국가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동원됐다. 무력을 앞세운 군사전략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사상 정보 심리전에 적극적으로 동원됐다. 각 군 군악대를 비롯해 해군정훈음악대와 육군교향악단이 대표적인 정훈음악단체다. 이들은 정부와 군의 행사, 유엔 및 외빈 초청 행사를 비롯해 선무공작과 위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해군정훈음악대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육군교향악단은 KBS교향악단의 모체가 됐다. 이 시기 전시가요의 창작·보급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후방 사회의 단결이 일선의 전투 못지않게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전시국민가요는 적멸의 의지와 애국심을 노골적으로 담아냈다. 전시국민가요 개창을 통해 적과 대치하는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했으며, 반공이데올로기는 삶을 지배하는 논리로 자리 잡았다. 피란 대중음악인들도 ‘군번 없는 용사’로 참전하거나 후방 무대를 누벼야 했다. “위문공연 활동 중 죽더라도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인 ‘먹물도장’을 작성할 정도로 목숨을 건 활동이었다.

대중가요가 피란살이의 시름과 설움, 실향민과 이산가족의 통한을 달래주며 널리 애창되는 가운데 영도다리, 국제시장, 40계단은 삶터이자 일터, 잃어버린 가족을 만날 희망의 장소로 각인됐다.

■미술-전시 잇따르고 지역 화단 조명

전시작곡가협회 제1회 작품발표회 팸플릿, 1951.7.7. ⓒ이순욱
미술 사회 또한 1·4후퇴 이후 김인승 박영선 김환기 도상봉 남관 이마동 이세득 한묵 장욱진 손응성 정규 이중섭 김병기 김영주 들이 부산으로 대거 유입됐다. 미술이 전쟁 수행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기는 여느 장르와 다르지 않았다. 해병대 양달석, 동부전선 박성규 우신출 이준, 중부전선 서성찬 임호 박정수 들이 종군화가로 활동했다.

중부전선 종군화가의 기록화 전시(미국공보원), 문총구국대 주도의 3·1기념전(광복동 밀다원다방), 대한미술협회 주최 전시미술전(창선동 외교구락부), 육군종군화가단의 전쟁기록화전(남포동 국제구락부)이 잇따랐다. 이때 부산·경남 화가 김남배 서성찬 양달석 우신출 이준 문신 전혁림 임호 들이 출품하기도 했다. 특히 1952년 대한미술협회 주최 3·1기념전에는 재부 화가 30여 명이 출품하여 창선동 다방 일대가 출렁거렸다. 1953년 3월 부산 화가 서성찬 김영교 김종식 김윤민 임호 김경 들이 토벽(土壁) 동인을 결성한 일은 의미 있는 성과다.

■무용-‘춤의 고장’ 기틀을 닦다

1·4후퇴를 기점으로 피란 무용인들의 유입도 가파르게 이뤄졌다. 중견 무용인 조용자 진수방, 신인 이월영 이인범 주리 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군대 기반 예술단체에서 활동하며 군과 민간 위문공연, 발표회 들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환도 이후 김미화 이매방 정무연 이춘우 황무봉 오화진 들의 무용인들이 부산에 정착해 재부무용인들과 연대하여 부산 무용계를 재편해 나갔다.

■영화·방송-‘낙동강’을 기억하자

한국전쟁기에는 다큐멘터리와 뉴스를 비롯한 문화영화 제작이 번성했다. 국방부 정훈국에서는 ‘국방뉴스’와 ‘백만인의 별’을 제작해 후방 국민에게 전황을 전했다. 공보처도 경남도청 지하실에 현상소를 설치해 ‘대한뉴스’를 제작했다. 이러한 기록영화들은 정부기관과 군기관이 촬영반을 꾸려 영화인들에게 활동기반을 제공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51년 부산에서는 낙동강변을 배경으로 후방사회의 결집을 강조한 문화영화 ‘낙동강’을 제작했다. 향토문화연구회 주도로 경상남도 공보과에서 제작비 1000만 원을 지원받아 만든 16mm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다. 1951년 말 완성해 이듬해 2월 23일 부민관에서 개봉했다. 촬영기간 40일, 제작기간 3개월에 불과했다. 윤이상의 음악과 조용자의 무용으로 감정표현을 강조했다는 점,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서사구조를 갖췄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화영화와 차별성을 지녔다. 예산과 기자재가 부족한 환경에서 전문 영화인이 아닌 지역예술인이 폭넓게 결합해 낙동강의 심상 지리를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지역문화사적 의미도 크다.

■문화 자양분 풍성한 이 도시

한국전쟁기는 서울과 지역 사이에 존재했던 문화자본과 예술의 격차가 일거에 무너진 시기다. 부산은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 전시담론과 국민형성담론을 가파르게 생산하며 문화예술 부흥기를 누렸다. 정전협정 체결과 환도는 전중기의 매체 환경을 재편하고, 반공전선의 기지이자 결전문화예술의 거점이던 부산의 위상과 성격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부산은‘임시수도’라는 정치적 지위를 잃고, 피란예술사회에서 ‘피란’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냄으로써 침묵과 공백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만큼 피란예술사회가 남긴 영광과 상처를 갈무리하고 지역예술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정위시켜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피란수도 부산의 문화예술이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란예술사회의 활동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공동기획 : 국제신문, 상지건축

*‘오! 부산’ 강연 일정 blog.naver.com/osangj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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