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출생이다. 법관 아버지에게서 혈통을 이어받아 런던 사법재판관 대리, 변호사, 하원의장을 거쳐 51세인 1529년 평민으로서는 최초로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헨리 8세 이혼에 반대한 뒤 1532년 퇴임했다가 3년 후 처형됐다. 400여 년 뒤인 1935년 교황 비오 11세는 토머스 모어를 성인으로 모셨다.
모어는 명문 세인트 앤서니에서 유년 공부를 하고 12세에 존 모턴(캔터베리 교구 대주교, 대법관) 집에 들어가 2년간 비서가 돼 식견을 쌓았다. 14세 때 옥스퍼드대에 입학해 고전을 배웠다. 16세에는 런던 법학원에 들어가 공부해 23세부터 교수로서 강단에 섰다. 20대에는 수년간 수도승처럼 살았다. 그는 존 콜릿, 에라스뮈스 같은 학자와 교유하면서 고전문학을 닦았다. 성서와 교부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헨리 8세는 한때 모어를 신임해 그에게 외교 업무를 맡겨 저자는 유럽 전역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