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존 발데사리 ‘노즈 피크’ 등
- 예술적 실험 시도한 작품 모아
- 내달 10일까지 해운대 OKNP

미술 갤러리에 ‘책(冊)’ 전시가 마련됐다. 네모 반듯한 생김새는 분명 책이 맞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면 이를 ‘책’이라 부를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진다. 종이 대신 모피를 묶어 놓았는가 하면 백과사전급 두께인데 한 장짜리 책도 있다. 글·그림 대신 인체 모형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이른바 ‘아티스트 북(Artists’ Books)’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사이먼 후지와라 등 동시대 주요 작가와 존 발데사리, 소피 칼, 마이크 캘리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의 에디션을 부산의 한 화랑이 한자리에 모았다.

존 발데사리의 아티스트 북 ‘ Nose Peak’. Three Star Books 제공

■ 존 발데사리·마우리치오 카텔란…

OKNP(그랜드조선 부산 4층)가 다음 달 10일까지 아티스트북 기획전 ‘Books as Art as(북스 애즈 아트 애즈)’를 선보인다. 프랑의 전시기획자 크리스토프 부탱과 멜라니 스카칠리아가 공동기획한 이 전시는 아카이브를 포함한 5개 섹션으로 구분되며 영상도 함께 상영된다.

사이먼 후지와라의 아티스트 북 ‘Fabulous Beasts-Kohinoor Mink’.

전시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개념미술가 존 발데사리가 2020년 작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아티스트 북 ‘Nose Peak(노즈 피크)’를 선보인다. 12개 에디션 가운데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이번 전시를 위해 부산으로 가져왔다. 이름처럼 책장을 넘길수록 가운데 뚫린 구멍 위로 사람의 코 모형이 산처럼 드러나는 작품. 작가는 눈이나 입보다 개성이 약한 코에 주목해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요구한다. 작가는 이 작품의 코가 누구의 것인지는 밝히고 있다. 그가 좋아했던 러시아의 문학가 니콜라이 고골이다.

바나나를 벽에 붙인 작품 ‘코미디언’으로 화제가 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아티스트 북 ‘Three-Volume Set(쓰리-볼륨 세트)’도 출품됐다. 최근 서울 리움미술관 회고전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세계를 부산에서도 책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자전적 성격인 이 책에는 그동안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사진이 아닌 그림(회화)으로 남겼으며, 글씨 또한 손글씨로 작성했다. 제본을 하지 않아 낱장이 분리되기 때문에 작품과 책의 경계는 흐릿하다.

■ 권오상·엄유정 등 국내 작가도

‘종이를 묶은 물건’이라는 책의 속성에 예술적 실험을 시도한 작품도 눈에 띈다.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원제: Fuck Seth Price)라는 책으로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있는 세스 프라이스의 아티스트 북 ‘한 페이지 책을 위한 모델’이다. 두툼한 이 책은 이름처럼 한 페이지로 만들어졌는데, 외형만 보면 거대한 지우개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단 10개의 에디션만 제작한 오브제로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 농축됐다.

사이먼 후지와라의 ‘Fabulous Beasts’ 시리즈는 베를린에서 생산된 모피 코트 한 벌로만 만들어졌다. 종이 대신 모피를 분해한 뒤 다시 꿰매어 엮었다. 사치를 위해 만들어진 모피 코트는 ‘읽을 수 있는’ 책 형태로 변모해, 그 자체로서 비뚤어진 관능을 통해 직접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국내 작가로는 조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권오상의 ‘Small Sculpture’가 그 원작인 조각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엄유정의 ‘FEUILLES(푀유)’도 원화들과 함께 전시된다. 날마다 일기처럼 나무의 색을 기록해 온 박형진 작가의 책 ‘까마귀와 까치’도 원화와 함께 전시되며, 김선우는 오한기(소설가) 오재형(영화감독)과 함께 작업한 책 ‘ASTROLABE_FROM AM 5 TO PM 5’를 들고 새로 제작한 드로잉 원화와 함께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