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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20> 여름 복달임, 물메기찜

겨우내 꾸덕꾸덕 말려 칼칼한 찜으로…남해안 여름 버티는 보양식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8-01 19:34:23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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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절기 물메기 잡아 해풍에 건조
- 이듬해 매콤한 양념요리 등 즐겨
- 회 부드러우면서 기분좋은 식감
- 탕·국 깔끔하고 구수한 맛 일품

삼복 와중이다. 극한 더위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다. 오죽하면 복날의 ‘복’이 엎드릴 복(伏) 자인지 새삼 알겠다. 바짝 엎드린 심신이 염천에 하릴없이 허덕이는 것이다. 이럴 때면 원기도 돋우고 입맛도 되돌리는 음식이 간절해진다.
필자가 얼마 전 먹은 물메기찜. 통영 추도산 말린 물메기로 조리했다. 말린 물메기의 쫀득함, 칼칼한 양념, 양념이 잘 스민 무와 감자의 알찬 맛이 일품이었다.
예전의 해안 사람들은 김장하듯 제철 어류들을 짭조름하니 염장하거나 말려 두었다가, 유사시에도 사용하고 사철 두고두고 조리해 먹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해의 우럭 조기 민어 황석어, 남해의 대구 고등어 물메기 아귀, 동해의 가자미 명태 청어 꽁치 등이다. 이들로 우럭 간국, 보리굴비, 민어 굴비, 간고등어, 대구포, 아귀찜, 가자미식해, 황탯국, 과메기 등으로 즐겨 먹어 왔다.

그중에서도 남해안 사람들은 겨울의 진객 대구와 물메기를 해풍에 꾸덕꾸덕 말려 겨우내 술안주로 삼거나 칼칼한 양념 발라 찜으로 해 먹었다. 좀 더 오래 먹을 요량이면 물기 없이 바짝 말려, 두고두고 국으로 먹거나 조림처럼 자작한 양념장에 바특하게 조려내는 생선찜으로 먹기도 했다.

■고을마다 이름도 다양

해풍에 물메기가 잘 말라가고 있다.
특히 통영 지역 사람들은 더운 여름, 입맛 없을 때 바짝 말려 보관한 물메기를 쌀뜨물에 충분히 불려 양념장 넉넉히 넣고 맵싸하게 찜을 해 먹었다. 일종의 한여름 복달임 음식이라 보면 되겠다.

원래 물메기는 겨울이 제철인 어종이다. 쏨뱅이목 꼼치과로 지방마다 물메기 물미거지 곰치 물곰 물텀뱅이 잠뱅이 등으로 불린다. 이 물메기로 끓인 국이나 탕은 깔끔하고 시원한 맛에 남녀노소 없이 즐겨 먹는 겨울 음식 중 하나이다.

동해권에서는 묵은김치와 함께 시원하게 끓여내는데 경북 북부 강원도에서는 ‘곰치국’, 포항 영덕 지역에서는 ‘물곰탕’ 등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함께 끓여내는 김치가 잘 익었을수록 더욱 깊은 맛을 내는 음식이다.

남해권에서는 ‘물메기탕’이라고 부르는데 잘 장만한 물메기 온마리를 먹기 좋게 토막을 내고 무와 파 청양고추 등을 넣고 팔팔 끓여내면 그 시원함이 어느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국수’라고 부르는 물메기 껍질을 ‘면 치기’ 하듯 후루룩 먹거나 등뼈에 붙은 점액질을 쪽쪽 빨아먹는 맛도 별미 중 하나이다.

■요즘은 회도 인기

물메기 온마리와 무·파·청양고추로 팔팔 끓여낸 물메기탕. 놀랍도록 개운한 맛이 났다.
요즘은 담백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하고 차진 물메기의 식감을 좋아해 회를 즐겨 찾는 이도 많아졌다. 그래서 물메기 한 마리를 반은 회로, 나머지는 탕으로 조리해 먹는 방식도 유행하고 있다. 필자가 제철 내내 지인들과 즐겨 먹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물메기는 생물로 활용하지 않았다. 물메기는 점액질 때문에 온몸이 미끈거리는 데다 살이 흐물거려 조리해 먹기에는 거부감이 컸다. 그러하기에 통영 추도를 중심으로 남해안 쪽에는 물메기를 잡는 즉시 배를 따고 해풍 잘 드는 곳에서 말렸다. 말리면 점액질이 사라지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생선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꾸덕꾸덕 말린 물메기는 양념을 발라 찜을 해 먹기도 하고 살짝 구워 죽죽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특히 작두로 큼직큼직하게 자른 물메기를 무 넣고 된장 풀어 바락바락 끓여낸 ‘물메기 국’은 깔끔하고 구수한 맛이 가히 일품의 음식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래도 단연 물메기찜

그중 여름철 입맛 없을 때는 단연 ‘물메기찜’이다. 통영이나 남해 지역에서는 물메기를 잡아 이듬해 가을에 이르기까지 별미로 찜을 해 먹었는데 특히 여름철 이열치열, 원기를 회복하는 복달임 음식으로 즐겨 먹는다.

얼마 전 통영 추도산 말린 물메기로 조리한 ‘물메기찜’을 먹었다. 추도는 남해안의 물메기 주요 산지이다. 낚시가 아닌 통발로 잡아 물메기가 상처 없이 온전한 데다, 청정 바다에서 적당한 기온과 해풍으로 말리기에 최상급으로 인정받는다.통영 물메기찜은 언뜻 보기에도 벌겋게 식욕을 돋우는 비주얼인데 말린 물메기의 쫀득쫀득한 식감에 칼칼한 양념이 더해져 먹고 나면 온몸이 개운하고 시원해진다. 양념이 잘 밴 무와 감자도 함께 먹을 수 있어 가족들과 함께 먹기에 좋다.

조리법을 살펴보면 잘 말린 물메기를 먹기 좋게 토막을 내고 쌀뜨물에 물메기가 포슬포슬할 때까지 잘 불린다. 냄비에 무와 감자를 한 겹씩 깔고 불린 물메기를 올린다. 양배추 고추 파 등을 넣은 뒤 고춧가루 설탕 소금 간장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 등 양념을 얹어 자작하게 조린다. 물메기찜이 다 익으면 마지막에 통깨를 솔솔 뿌려 맛을 더한다.

■찜으로 차린 한 상

물메기찜 한 상 차려진다. 상 중앙에 벌건 양념장 넉넉히 감싼 물메기찜이 놓였다. 큰 접시에 물메기와 무 감자 등의 고명이 양껏 올라갔다. 그 옆으로 색색의 통영너물(나물)이 담긴 대접이 자리한다. 그 주위로 각양각색의 밑반찬이 제 맛깔대로 앉았다.

물메기 한 점 맛본다. 마른 생선 특유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제대로 살아있다. 흐물거릴 정도로 부드러운 살점이 이렇게나 기분 좋은 식감을 내는 것이다. 뒤이어 달큰하고 짭조름하면서 매콤한 양념이 입 안을 가득 채우며 물메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무도 한 점 베어 문다. 부드러우면서도 양념이 촉촉하게 잘 배어 밥 생각이 절로 난다. 감자도 아삭하고 고소하다. 찜 요리에 또 다른 주연급들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게 눈 감추듯’ 물메기찜을 해치우고 나니 양념장이 남는다. 밥을 넣고 비빈다.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 터라 고소한 맛 또한 더해져 흔쾌한 풍미를 자아낸다.

■남해안권 소울푸드

남해안권 사람들이 오래도록 즐겨 먹어 왔던 소울푸드, 물메기찜. 그런데 같은 남해권이라도 통영 지역과 남해 지역의 물메기찜은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남해는 말 그대로 불린 물메기에 주로 된장 베이스의 양념을 얹어 찜통에 바로 쪄낸다. 같은 찜이라도 통영은 냄비에 고춧가루, 간장양념을 함께 넣고 바글바글 조려낸다. 엄연히 따지면 조림과 찜의 특징을 두루 갖춘 음식이라 볼 수 있다.

사철 활어로, 생물로, 건어로,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널리 쓰이는 물메기. 그중 여름철 복달임으로도 즐겨 먹어 왔던 남해안의 물메기찜. 이즈음에 이열치열의 물메기찜 한 접시면 극한의 불볕더위도 시원하고 개운하게 넘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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