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18> 갯장어와 하모

냄비 위 눈꽃처럼 피어 입 안서 사르르…日이 탐했던 그 맛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7-04 18:55:03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일제강점기 생산량 모두 日 반출
- 조선에선 유통·판매 금지시켜
- 일왕에 진상… ‘하모’로 더 알려져

- 국내선 1980년대부터 즐겨 먹어
- 장어류 중 가장 고단백 보양식

- 3.3㎝ 살점에 칼집 25번은 내야
- ‘송치기’ 잘하는 명인 대접 받아

꽃이 핀다. 백옥같이 눈부신 하얀 꽃이 핀다. 물안개 짙은 새벽녘, 빗방울 수런거리는 연못 위로 함박하니 꽃 한 송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전골냄비에서 갯장어 샤브샤브가 부드럽게 익어간다. 세밀하고도 규칙적인 칼집을 넣은 갯장어 한 점, 슬슬 끓어오르는 전골냄비에 넣는다. 전골냄비 속에서 갯장어가 화르르 꽃으로 핀다. 개화하듯 갯장어 살점이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송치기한 갯장어를 전골육수에 넣으면 꽃이 피듯 갯장어 살점이 하얗게 부풀어 오른다. 큰 사진 왼쪽부터 갯장어 뼈튀김, 갯장어회, 송치기 한 갯장어요리가 먹음직스럽다.
■단백질 풍부한 보양식

요즘 여름철 보양식의 새로운 강자는 단연 장어류이다. 장어는 몸길이가 기다란 어류로 그 대표적인 것이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 먹장어 등 네 가지가 대표로 꼽힌다. 이들은 모두 단백질 함유량이 많고 유익한 지방 성분이 골고루 분포해 몸을 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중 갯장어는 다른 장어류보다 단백질 함유량은 많고 지방 함유량은 적으면서 다량의 감칠맛 성분으로 깔끔하고 담백하며 입안에 감도는 풍미가 좋다. 이 때문에 집안 어른이나 소중한 분들께 대접하는 고급 보양 음식으로 인식된다. 주로 샤브샤브나 회로 먹는다.

그러나 갯장어가 대중화된 것은 불과 10~2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잡히는 대로 전량 일본으로 보내졌다. 그러니 아직까진 대중적으로 친숙하지 못한 어종이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이즈음까지도 우리 이름 ‘갯장어’보다는 일본 이름 ‘하모’로 널리 통용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함께 통용되는 갯장어와 하모. 이 두 이름 뒤에는 어떤 역사적 이면이 있을까? 갯장어는 일제강점기 조선 수산물 수탈사의 중심에 서 있던 어족이다. 당시 일본제국주의는 조선 연안의 고등어 청어 고래 대구 등과 더불어 붕장어 갯장어 등의 수산물을 전량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특히 갯장어와 새조개 등은 ‘수산 통제 어종’으로 지정해 조선 내에서는 유통·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는 ‘조개는 새조개, 어류는 갯장어’라 할 만큼 일본인이 좋아하던 바다 식재료이면서, 스시의 주요 재료로도 활용되었기에 전량 일본 수급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日에선 천황에 진상되기도

한 치(3.3cm)당 25번 이상의 칼집을 넣어야 비로소 갯장어 요리 명인 대접을 받는다. 꽃송이처럼 핀 샤브샤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원래 우리 민족은 장어류 먹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뱀처럼 생겼기에 먹기에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일본인 세키자와 아케키요(關澤明淸)가 조선 해역을 조사하여 편찬한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은 “갯장어는 경상도 등 곳곳에서 서식하는데 사람들이 잘 잡지 않고, 또 잡더라도 뱀을 닮은 모양 때문에 먹기를 꺼려 일본인에게만 판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장어류를 보양 음식으로, 절기 음식으로 널리 먹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는 일본인에게는 ‘주인 없는 노다지’로 보였을 것이다. 조선인에게는 그리 기꺼운 어종이 아니었지만, 일본인들에게 조선 장어는 아주 귀한 식료로 대접받았다.

해방 후에도 갯장어는 갯장어 요리를 즐기는 일본으로 전량 건너갔다. 여전히 갯장어는 일본인이 즐겨 먹는 식재료이면서 국내보다 높은 가격에 일본으로 팔려 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갯장어 장만법을 익힌 국내 요리사들이 갯장어 요리를 선보이게 되고 이후 서서히 우리나라에서도 갯장어를 즐기는 인구가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장어 이름이 ‘하모’ ‘아나고’ ‘우나기’ 등이다. 우리의 견아리(犬牙鱺, 갯장어), 해대리(海大鱺, 붕장어), 해만리(海鰻鱺), 사장어(蛇長魚· 뱀장어)의 일본 이름들이다. 주 생산지인 전남 여수 고흥, 경남 고성 등지에서도 ‘하모’라고 부르며, 이는 ‘갯장어’보다 더 널리 불리고 있다. ‘붕장어’보다 ‘아나고’를 더 널리 쓰듯이 말이다.

갯장어는 자산어보에 견아리(犬牙鱺), 속명으로 개장어(介長魚)로 표기했다. ‘개 이빨을 가진 장어’란 뜻이다. 기록에서처럼 개처럼 주둥이가 뾰족하고 이빨이 날카롭다. 성질 또한 사납고 포악하다. 낚시에 걸려 배에 올라올 때면 이따금 어부의 손을 물고 늘어질 정도로 호전적이다.

일본에서 갯장어는 ‘례(鱧)’라 쓰고 하모(はも)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도 하모의 어원은 ‘개’에서부터 유래되었다. 개처럼 잘 ‘문다’고 ‘はむ’, 탐식성이 강해 뭐든지 먹어 치우기에 ‘먹다(食, は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일본어 ‘하모’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물고기 어(魚)’자에 ‘풍성할 풍(豊)’자를 썼다. 그만큼 다양한 음식으로 쓰이고, 그 맛 또한 풍성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의 하모 요리서 ‘하모백진’에는 100가지의 하모 요리를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생선계의 요코즈나(일본 씨름 ‘스모’의 천하장사)’라며 즐겨 먹는다. 천황에게도 올렸던 진상품이기도 하다

■회·샤브샤브 요리로 친숙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 교토에서도 갯장어를 오래전부터 즐겨 먹었거니와 교토를 수호하는 신에게 바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일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서 잡히는 갯장어는 생명력이 강해 먼 내륙지역인 교토까지 활어로 운송할 수 있는 유일한 생선이었다. 그렇기에 싱싱한 상태의 갯장어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교토의 큰 축제인 ‘기온축제(祇園祭)’ 기간에는 기온시장의 기모노 상인들이 기모노를 사러 온 전국의 구매자들에게 ‘하모 스시’를 관례처럼 대접했기에 이 축제를 일명 ‘하모 마츠리(갯장어 축제)’로 부르기도 했단다. 이 갯장어는 뼈가 억세고 등지느러미 쪽으로 성가신 잔가시가 살점에 박혀있어 고도의 장만 기술이 필요했고 여간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제맛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탄생한 하모 장만 기술이 바로 ‘호네기리(骨切り)’이다.

갯장어의 배를 가르고 펼쳐서 살점 속에 파묻힌 잔가시를 빠르고 균일하게 잘게 자르는 기술로, 1cm 안에 8~10번 정도의 칼집을 넣어 가시를 끊어낸다. 이렇게 해야 식감이 부드럽고 가시가 씹히지 않아 입속에 이물감이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갯장어 살점 한 치(3.3cm)당 25번 이상 칼집을 넣을 수 있어야 비로소 ‘하모 명인’으로 인정받는다. 한국에서는 이 호네기리를 ‘송치기’라고 하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이 기술이 도입되어 갯장어의 주요 조리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호네기리로 장만한 갯장어를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거나 뜨거운 물에 데쳐 소스에 찍어 먹는 ‘하모오토시’ ‘하모치리’가 일본에서는 최고의 갯장어 요리로 널리 인정받는다. 한국에서는 전골냄비에 각종 채소를 넣은 육수에 샤브샤브로 먹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갯장어 음식. 비록 침략의 역사 위에 교류되었던 음식이지만 이제는 우리 음식, 음식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인간 탐식에 대한 욕망은 경계를 초월하고 시대를 관통한다. 그러하기에 민족과 국가보다 상위에 서는 가치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음식은 생명과도 직결되는 중차대한 존재이기에, 인류의 역사 속 음식문화가 필히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시립미술관 대개조…430억 신축급 공사
  2. 2내달 부산시 고위직 물갈이 촉각…2·3급 최대 4명 바뀔 듯
  3. 3금태섭·류호정 “女도 병역의무 이행을”
  4. 4김기현 측근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 총선 출마선언 10일 만에 번복 왜?
  5. 5[단독] 장제원 의원 "마지막까지 내려놓겠다" 내년총선 불출마 선언
  6. 6경남도, 가덕신공항 배후도시 청사진 개발 착수
  7. 7백내장 수술 뒤 흐릿한 시야? 인공수정체 주머니 없애면 해결
  8. 8피부 가렵고 부푸는 만성 두드러기…6주 넘으면 약물 치료해야
  9. 9김기현 “기득권 내려놓겠다” 정면돌파…당내 책임론 공방
  10. 10아쿠아파크 부실…기장군의회 “오규석 前군수 책임” 吳 “흠집내기”
  1. 1금태섭·류호정 “女도 병역의무 이행을”
  2. 2김기현 측근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 총선 출마선언 10일 만에 번복 왜?
  3. 3[단독] 장제원 의원 "마지막까지 내려놓겠다" 내년총선 불출마 선언
  4. 4김기현 “기득권 내려놓겠다” 정면돌파…당내 책임론 공방
  5. 5총선 레이스 시작…“얼굴 알리자” 정치신인들 앞다퉈 등록
  6. 613일 부산 찾는 이재명…이번엔 ‘산은법’ 응답할까
  7. 7민주 1호 영입 환경변호사 박지혜…첫 청년공약 ‘월 20만 원 기숙사 5만 실’(종합)
  8. 8유권자도 어깨띠 매고 선거운동…인터넷 게시판 익명 댓글달기 가능
  9. 9‘글로벌 허브 도시’ 부산의 신성장동력으로
  10. 10텃밭·무주공산으로 몰리는 후보군…부산 지역구 양극화
  1. 1‘연말정산’ 식대 비과세 한도 月 20만 원으로↑(종합)
  2. 2제2금융 대출자는 상생금융 제외? 시작도 안 했는데 삐걱
  3. 3불안불안 부동산PF, 대출잔액·연체율 동반 상승
  4. 4주가지수- 2023년 12월 11일
  5. 5한국무역협회 부산본부 무역 발전 기업 훈장 수여
  6. 6연말 술자리 부담스럽네…부산 맥주·소주 가격 상승세(종합)
  7. 7가성비와 프리미엄… 연말 소비 양극화 뚜렷
  8. 8정부 "국내 주유소 97% 요소수 비축…가격도 평시와 유사"
  9. 9길어지는 HMM 새 주인 찾기… 막판까지 진통
  10. 10팍팍한 부산 신혼부부, 1억 이상 빚 있는데 연소득 5800만원
  1. 1내달 부산시 고위직 물갈이 촉각…2·3급 최대 4명 바뀔 듯
  2. 2경남도, 가덕신공항 배후도시 청사진 개발 착수
  3. 3아쿠아파크 부실…기장군의회 “오규석 前군수 책임” 吳 “흠집내기”
  4. 4대학 선택의 폭 넓은 중위권, 환산점수 유리한 전형 지원해야
  5. 5경찰, 제보자도 못 찾았다…도시공사 비위수사 한달째 스톱
  6. 6예산 없다며…노동자 몫은 깎고 업체 돈은 다 챙겨준 지자체
  7. 7부산 울산 경남 오후까지 비…남해·동해에는 천둥·번개 주의
  8. 8착용만 허용된 선거홍보물, 손에 들고 흔들면 위법(종합)
  9. 9도시공사 도시창조본부장 공모절차 돌입
  10. 10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국민, 신속한 재판 받을 권리있어”
  1. 1토트넘 6경기 만에 승리 안긴 손캡…8연속 두 자릿수 골
  2. 2이정후 연봉 1500만 달러 거론…토론토도 참전할까
  3. 3한국 여자핸드볼 결선리그 전패 수모
  4. 4BNK 썸 맏언니 김한별 복귀에도 4연패 수렁
  5. 5리디아 고, 데이와 우승 합작
  6. 6‘의사 복서’ 서려경, 태국 선수에 TKO승
  7. 7아이파크 통한의 역전패…4년 만의 1부 승격 불발
  8. 8정보명호 아시아야구선수권 3위
  9. 99200억 다저스맨 오타니, 내년 서울서 김하성과 대결
  10. 10황인범 세르비아 데뷔골…복귀한 김민재는 혹평
우리은행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복천동 10·11호분 출토 목가리개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부산 작곡가 이상근 아카이브…공연·교육 활용법 고민을”
리뷰 [전체보기]
웅장한 에너지 보여준 ‘한국판 레미제라블’…연기·미술·음향 앙상블, 감동의 무대 펼쳐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우크라이나 ‘아미’의 서울 여행 外
사계절로 분석한 한의학 세계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딱풀 /최성아
완주 /김만옥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마스크걸’ 이한별과 고현정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3일의 휴가’ 김해숙과 신민아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서울의 봄’ 황정민 틀을 깬 악역 창조…이태신 役 정우성 캐스팅은 화룡점정
네 편의 자연 다큐…우리, 잠깐 쉬어가는 건 어때요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불의가 정의로 둔갑한 시대…그 부당한 역사에 맞선 의인 이야기
계급사회 속 비틀리고 고립된 개인…일상이 호러가 된 세상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3년 12월 12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3년 12월 11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
이것이 어른들의 록앤롤이다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3년 12월 12일(음력 10월 30일)
오늘의 운세- 2023년 12월 11일(음력 10월 2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3년 10월 11일
오늘의 BIFF- 2023년 10월 1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고요한 산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반추해 보는 김부식
아이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가정교육을 했던 홍인모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