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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함성 울려퍼진 그 길, 피란민 허기 달랜 국수…구포를 향유하다

부산문화재단 ESG 캠페인 <下> 구포만세길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3-06-27 19:23:12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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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민족계 지방은행 ‘구포은행’
- 역 인근 우리은행 자리서 태동

- 테마거리엔 만세주역 얼굴 가득
- 그날의 1000명 외침 들리는 듯

- 시장 입구 눈에 띄는 일식 건물
- 옛 기로사는 경로당으로 변신
- 여러 곽 에워싸인 구포왜성 등
- 걸음마다 이야기가 한 보따리

부산문화재단의 ESG 문화예술 캠페인인 ‘보행친화·문화예술의 삶에 나를 더하는 걷기 여행’(나를 더하는 걷기 여행). 지난 11일 진행된 ‘나를 더하는 걷기 여행’의 코스는 구포만세길이었다. 부산도시철도 3호선 구포역에서 만나 구포장터 3·1운동 기념비, 옛 구포다리 터를 둘러본 뒤 구포만세길과 구포성당, 구포시장을 거쳐 의성산의 구포왜성에서 일정을 마쳤다.
부산문화재단의 ESG 문화예술 캠페인 ‘보행친화·문화예술의 삶에 나를 더하는 걷기 여행’ 참여자들이 지난 11일 코레일 구포역 부근 구포만세길을 걷고 있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부산 북구 구포동의 ‘구포(龜浦)’는 말 그대로 ‘거북 포구’를 뜻한다. 낙동강을 향해 물을 마시려고 머리를 쭉 내민 거북을 떠올린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지금의 구포동, 덕천동 일대는 구포나루를 중심으로 수운이 발달했다. 구포나루의 감동진은 경북 상주의 낙동진, 경남 합천 밤마리나루와 함께 낙동강의 3대 나루였다. 조세창고(감동창)도 있던 물류의 중심지였다. 부산항의 근대개항(1876년) 이후 낙동강 수운을 이용해 부산과 경상도 내륙의 물자를 연결하는 곳이었다. 낙동강을 따라 수많은 곡물이 들고나갔으니 정미업과 제분업, 객주업이 발달했다. 1912년 우리나라 최초 민족계열 지방은행인 구포은행이 구포에 자리 잡은 것은 이러한 상업적 입지 조건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가능했다.

■ 구포다리·구포은행의 기억

이날 ‘나를 더하는 걷기 여행’의 첫 번째 장소는 도시철도 구포역 부근 구포장터 3·1운동 기념비. 이곳으로 일행을 안내하면서 박찬석 해설사(북구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가 구포나루와 구포장을 설명해 준다. 도로 맞은편에 있는 우리은행 구포지점에 관한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그곳이 구포은행의 전신인 구포저축주식회사와 맞닿아 있는 까닭이다. 구포저축주식회사의 창립총회는 1909년 1월 15일 구포시장 내 사무실에서 열렸다. 구포의 유지인 윤상은과 장우석이 구포저축주식회사 설립을 주도했다. 구포저축주식회사는 1912년 구포은행으로 바뀐다. 회사령(1910)과 은행령(1912)으로 기존 유사은행은 대부업과 은행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포은행으로 바뀌었을 때 주주는 종전의 구포에서 부산부의 일본인 중심으로 재편된다. 일본인 주주 가운데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오이케 추스케(大池忠助)도 눈에 띈다. 이는 지역 조선인 경제의 한축이던 구포가 점차 일본인 경제를 대변하는 부산부 상권 중심으로 옮아갔음을 의미한다. 당시 구포지역 조선인 상권 내리막길의 서막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옛 구포다리 사진 패널들 앞에 서 있다. 구포다리가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졌는지를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1932년 12월 구포와 대저를 잇는 구포다리가 완공되면서 대저지역은 더는 섬이 아니었다. 낙동강에 들어선 최초의 다리인 구포다리의 길이는 1060m. 다리 건설 당시 신문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보도됐다. 다시 도시철도 구포역으로 돌아와 코레일 구포역으로 넘어간다. 뒤돌아보니 도시철도 구포역의 역사 꼭대기에 장대 같은 구조물이 여럿 있다. 박찬석 해설사는 “구포나루 황포돛배의 돛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만세운동에 상인 많은 까닭

부산 북구 구포동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가옥.
본격적으로 구포만세 역사테마거리를 걷는다. 테마거리의 벽 곳곳에는 구포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만세운동 주도 인물에서 경제인까지 다양하다. 1919년 3월 29일 시작된 구포 만세시위의 규모는 1000명 정도로, 부산지역 만세시위 규모 중 가장 컸다. 구포 만세시위로 체포된 인물들을 직업별로 보면 농업이 43%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미곡상 등 곡물상이 26.2% 달했다. 여타 상인까지 포함하면 상인층이 33.3%나 된다. 만세 시위 과정에서 상인층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식민 통치로 일본인 상권에 의해 구포의 조선인 상권이 주변부로 내몰리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구포만세길에서 구포국수체험관과 제면소, 문화예술플랫폼을 잇달아 만난다. 한국전쟁 무렵 구포장 일대에서 생산돼 피란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줬던 게 구포국수였다. 철도 아래 지하도로 건너간다. 구포성당으로 가는 길에 구포기로사(龜浦耆老社)를 만난다. 지금은 경로당으로 쓰이고 있다. 1918년 창립된 구포기로사는 동래기영회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박찬석 해설사는 말했다.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곳이다. 어느새 구포성당이다. 성당 건물이 배 모양이다. 구포나루를 드나들던 황포돛배가 아니라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것이다. 구포성당 맞은편에 자리 잡았던 구포1동 행정복지센터 터에서는 지역자치센터 및 지역아동센터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신축공사 관계로 이곳에 있던 ‘이유하 축은제비’도 다른 곳으로 잠시 옮겨놓았다. 물난리가 잦은 구포의 대리천에 제방을 쌓은 이유하 양산군수(1808∼1810 재임)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역민이 세운 비석이다.

길을 다시 재촉한다. 구포시장에 닿기 전 일본식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구포 일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건물이라고 한다. 건립 당시부터 건물 1층은 상점으로, 2층을 주거시설로 활용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 덕성초교 일대에 있던 기찰

구포왜성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걷기 여행 참여자들.
구포시장 먹자골목을 지나 구포왜성이 있는 의성산으로 향한다. 도로 표지판을 보니 ‘기찰로’가 눈에 띈다. 기찰은 검문하는 것을 뜻한다. 조선 후기 지금의 부산에 ‘기찰’은 두 곳에 있었다. 하나는 구포에서 낙동강을 건너 김해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동래에서 양산으로 가는 곳에 있었다. 전자는 지금의 북구 덕천2동 덕성초교 일대에 있던 구법곡(九法谷) 기찰이다. 후자는 십휴정(十休亭) 기찰로, 지금의 금정구 부곡동에 있었다. 금정구 부곡동에는 그 흔적이 기찰마을로 남았는데, 북구 덕천2동에는 도로명으로만 전해진다.

부산실내빙상장 및 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북이교를 건너 의성산으로 향한다. 구포왜성으로 가는 길이다. 구포왜성은 임진왜란 발발 1년 뒤인 1593년 7월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낙동강 수로 확보와 부근 김해와 양산지역 왜성과 연락하거나 지원을 하기 위해 쌓았다. 2006년 동아대 박물관이 빙상장 건립 부지 내 왜성 외곽부에 대해 발굴조사를 해 일부 구조가 확인됐다. 중심주인 천수각을 중심으로 여러 곽이 에워싸는 모양새이다. 발굴 조사에서 토축부, 호구(虎口, 출입구) 등이 확인됐다. ‘호구’는 흔히 바둑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성에도 있다. 출입구 역시 곽으로 둘러싸이는 식이어서 이곳에 들어서면 꼼짝없이 ‘범의 아가리’에 갇히는 격이다. 다양한 이야기보따리와 함께 이번 걷기 여행을 구포왜성에서 마무리한다.

※공동기획 : 부산문화재단·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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