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전후 부산미술 양상 등
- 연대기적 가치 있는 150점 선봬
- 개방성 기반 아시아 작품도 포함
- 공공미술관의 정체성 볼 수 있어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해 왔고, 앞으로 무엇을 수집해야만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첫 ‘소장품 선집’이 발간됐다. 현재 소장한 미술작품은 모두 2984점, 이 가운데 한국과 부산 근현대미술사의 주요 맥락에서 연대기적 가치가 있는 작품과 아시아 미술 일부 등 100점을 추렸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를 기념해 지난 25년 동안 모은 소장품 150여 점을 선보이는 기획전 ‘영점(zero-point)’을 지난 16일 시작해 오는 8월 27일까지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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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식의 작품 ‘부산항 겨울’.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전시 제목 ‘영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겼다. 일반적으로 ‘시작점’ ‘기준점’이라는 의미와 양자물리학에서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로 채워진 진공상태를 의미하는 ‘영점 에너지(zero-point energy)’가 있다. 소장품 기획전 ‘영점’은 이 두 개념을 확장해 시립미술관의 시작부터 이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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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 키시오의 작품 ‘周光化(주광화)’.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소장품 선집’ 구성을 따르는 이번 전시는 8개 장으로 진행된다. ▷근대기 부산의 작가들 ▷격동의 역사와 현실의 반영 ▷구상에서 추상으로 ▷확장된 미술의 경계 ▷정신으로서의 평면 ▷새로운 형상을 향하여 ▷다양성의 시대 ▷아시아를 품다이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미술사의 흐름을 따르되, 부산미술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고려해 7개 장으로 나눴고, 아시아 미술 소장품을 수록한 1개 장을 더했다.
특히 두 번째 장인 ‘격동의 역사와 현실의 반영’과 여섯 번째 장인 ‘새로운 형상을 향하여’ 장은 부산미술의 역량이 극대화된 시기의 작품들로, 부산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먼저 한국전쟁기 전후를 다룬 ‘격동의 역사와 현실의 반영’에서는 해방 이후 혁토사, 토벽 동인 등을 중심으로 표현주의적 구상미술 계열의 흐름이 두드러지는 독특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 김종식의 ‘부산항 겨울’, 최민식의 ‘인간’ 사진집 등을 볼 수 있다.
‘새로운 형상을 향하여’ 장은 삶과 괴리된 1970년대 모더니즘이 1980년대 격변의 사회상을 담아낼 수 없다는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민중미술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부산에서 전개된 ‘형상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서사 회복, 현실 문제를 다루며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이야기를 새로운 형태의 구상미술을 통해 드러낸다. 작가 송주섭의 ‘세대(얼굴)’, 방정아의 ‘복귀’ 등이 전시됐다.
마지막 장 ‘아시아를 품다’에서는 미술관 소장품 중 10%를 차지하는 아시아미술 작품이 전시된다. 다른 국공립미술관의 소장 비율이 통상 3%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부산미술 정립과 더불어 해양성, 개방성에 기반한 부산시립미술관의 정체성과 개성이 드러난다. 작가 세키네 노부오의 ‘교차하는 원’, 유에 민쥔의 ‘금자탑’이 있다.
소장품 수집·연구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소장자원 기초 연구와 데이터베이스 구축, 디지털 환경에서 실현 가능한 소장품 활용 방식 등 그간 연구 성과와 고민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스마트미술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소장품 연구 방향성을 모색하는 학술행사를 9월 중 마련할 계획이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은 “올해 말 시립미술관 리노베이션이라는 큰 전환점을 앞둔 지금, 부산시립미술관이 지향하는 글로컬(glocal)한 미술관으로서 행보를 이어 나갈 새로운 항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