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발레단으로 손꼽히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작품의 주역을 맡는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 불새가 된다. (…) 관객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많은 사람으로 곽 채워졌다. 하지만 난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 발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가면서도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춤을 출 것이다. 그들은 나처럼 가난할 수 있다. 내가 그랬듯 불안할 수도 있고, 나처럼 오해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위해 춤을 출 것이다. 특히 그들을 위해.”

ABT(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최초 흑인 수석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왼쪽)와 그가 표지모델을 장식한 미국 주간지 ‘타임’.

솔직히 말해 미국 최고 발레단 ABT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라는 책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 편협했던 시각을 곧 반성했다. 위에 일부만 소개했는데, 책의 서두를 장식한 미스티 코플랜드의 ‘프롤로그’부터 벌써 읽는 사람의 마음을 뛰게 한다. 한 발레리나의 열정이 있고. 그의 삶이 뜨겁게 다가와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책은 미스티 코플랜드가 발레를 처음 배운 순간부터 수석 무용수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발레를 잘하는 법이 아니라 발레를 통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는 법을 들려준다. 솔직한 이야기들이 발레와 상관없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발레리나는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군무 무용수인 코르 드 발레, 독무를 출 수 있는 솔리스트, 발레단에서 제일 높은 위치의 발레리나로서 주역을 맡는 수석 무용수로 나뉜다. 1940년에 설립된 ABT에서는 단 한 번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수석 무용수로 승급한 적이 없었다. 레이븐 윌킨슨, 애샤 애쉬, 알리시아 그라프 맥 등 피부색으로 인해 부당한 일을 겪어야 했던 많은 흑인 발레리나들이 있었다. 2015년, 미스티 코플랜드는 ABT의 75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가 됐다. 마침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흑인 발레리나가 되어 발레계에 새 역사를 쓴 것이다.

그는 불우하고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13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다. 중요한 시기마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으며, 사춘기 시절에는 갑작스러운 체격 변화도 겪었다. 피부색 말고도 수석 무용수가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미스티 코플랜드의 성공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의 성공으로 “발레는 백인 엘리트 집안의 자녀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선입견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발레는 발레가 좋아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예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