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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15> 통영 욕지 고매 이야기

구황작물로, 日 침략연료로 쓰인 ‘고매’…욕지도 웰빙푸드로 몸값 급등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5-23 19:14:2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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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해풍·황토 최적 생육환경
- 1887년 입도 허가 뒤 재배 추정
- 잘게 썰어 말린 ‘빼떼기’ 활용
- 죽으로, 수제비로, 떡으로 조리

- 일제 때 국내산으로 주정 뽑아
- 가미카제 비행기 연료 생산도

- 최근 건강작물 ‘자색 고매’ 주목
- 묵·막걸리·전으로 색다른 변신

통영 욕지도는 해남과 더불어 고구마 주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욕지 처녀, 쌀 서 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는 말이 있듯이 척박한 바다 섬 환경 속에서 그나마 끼니 굶지 않고 연명했던 시절을 보내게 해 준 고마운 작물이 고구마였다.
고구마로 만든 묵과 전.
■조선통신사 통해 유입

고구마는 공식적으로 조선통신사 조엄에 의해 대마도에서 유입돼 우리나라로 들여온 구황작물이다. 이 고구마란 이름도 일본 대마도의 ‘고코이모(孝行芋)’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이 고구마는 재배법이 대중화되면서 남해 연안과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되기 시작한다.

부산에도 영도 지역에서 한때 조엄 통신사를 기려 ‘조엄의 고구마’라는 뜻의 ‘조내기 고구마’가 청학동 일대 산간에 널리 재배되던 시절이 있었다. 통영도 조선시대 수군통제영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서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욕지도도 1887년 입도가 허가된 후 입도 주민들과 함께 고구마가 유입되어 재배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도민들은 산으로 둘러싸인 비탈진 경사의 땅을 개간하다 보니 논농사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한여름 뜨거운 햇볕과 짭조름한 해풍, 양질의 황토 등 고구마 생육조건이 좋은 환경으로 일찍이 고구마 생산이 활발했다. 이 고구마는 배편으로 통영을 비롯해 이웃 지역에서 쌀과 기타 생활필수품으로 맞바꾸는 귀중한 작물이기도 했다.

1960년대 욕지도에는 고구마전분으로 주정(酒精)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다. 지금도 국민 술로 즐겨 먹는 희석식 소주의 원료가 바로 알코올, 주정이다. 욕지도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고구마로 주정을 생산했기에 다른 곳의 주정보다 더 우수했다고 한다.

이 고구마는 앞서 기술했듯이 일본 대마도에서 처음 유입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제주도를 중심으로 대량 재배가 된다. 이 대량 재배한 고구마로 순수 알코올인 무수주정(無水酒精)을 생산하기 위해서이다. 이 주정으로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기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 비행기 등의 항공연료를 생산했다.

특히 제주도 제주항 인근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무수주정 제주공장을 설립해 고구마로 대량의 주정을 생산했는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는 이 공장의 주정 생산량이 일본 전역에 주정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동양 제일의 시설 규모라고 자랑하였다고 한다. 백성들의 기아를 막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구황작물인 고구마가 일제강점기에는 그들 침략전쟁의 연료로 활용되었던 역사가 참 아이러니할 뿐이다.

■웰빙 음식으로 각광

통영 빼떼기죽.
하여튼 이 고구마를 잘게 썰어서 바짝 말린 상태를 ‘절간(切干)고구마’라고 하는데, 이를 활용해 전분과 주정 등을 생산한다. 이 절간고구마가 우리 지역 말로 ‘빼떼기’다. 이 빼떼기는 부산, 통영을 중심으로 일반주민들에게는 음식 재료로 널리 보급된다. 특히 빼떼기죽은 통영 욕지도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음식으로 알려졌다.

빼떼기에 팥이나 콩 등 잡곡과 찹쌀 등을 섞거나 이마저 없을 땐 밀가루를 풀어 죽을 쑨 음식이 “빼떼기죽”이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구황음식이자 건강 음식인 고구마로 욕지 주민들은 그나마 따뜻한 겨울을 났을 것이다.

죽 이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단다. 빼떼기 가루와 밀가루를 잘 반죽하여 멸치육수에 끓여 먹는 ‘빼떼기 칼국수’나 ‘빼떼기 수제비’, 밀가루나 쌀가루와 섞어서 동그랗게 절편처럼 쪄낸 ‘빼떼기 개떡’, 떡 사이에 팥고물을 얹어 쪄낸 ‘빼떼기 시루떡’ 등도 그 시절 먹거리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고구마가 참살이 음식 웰빙 음식으로 주목받으며 그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리고 욕지도발 다양한 고구마 음식이 개발되면서 그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우선 욕지도의 할매 바리스타가 만들어 주는 대표 음료인 ‘고구마라떼’가 있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에 입안으로 살짝 감도는 고구마의 풍미와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자색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막걸리.
애주가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있는데, 욕지도의 자색 고구마로 빚은 자색 고구마 막걸리다. 좋은 쌀로 밥을 지어, 누룩과 자색 고구마를 잘 섞어 막걸리를 빚는다. 우선 색감부터가 사람 눈길을 끈다. 막걸리 고형물이 가라앉으면 맑은 투명한 핑크빛이, 흔들어 놓으면 파스텔 톤의 핑크빛이 몽환적이다. 막걸리 속 탄산도 자연적인 발효 공법으로 생성시키기에 목 넘김이 아주 상쾌하고 혀끝은 개운하다.

이 고구마 막걸리와 잘 맞는 안주도 개발되었는데, 바로 ‘자색 고구마채전’과 ‘자색 고구마묵’이다. 고구마채전은 고구마를 잘게 채를 썰고 프라이팬에 기름 둘러 구운 뒤 전 위에 파르메산 치즈를 넉넉히 뿌려 먹는 퓨전 음식이다.

‘고구마묵’은 자색 고구마 전분으로 묵을 내려 한입 먹기 좋게 깍둑깍둑 썰어서 갖은 채소와 새콤고소한 참깨 소스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모두 고구마 특유의 풍미가 있으면서도 고구마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바싹바싹 쫀득쫀득한 식감에 고구마의 들큰함이 은근하다.

그 외에도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빵과 도넛도 있고, 욕지도 짬뽕에는 고구마 줄기가 고명으로 들어간다. 고구마 줄기 볶음과 고구마 줄기 김치 등도 만들어 밥상에 단골로 오르는 반찬들이다. 음식으로 보자면 마치 욕지도 섬 전체가 ‘고구마의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지역·시대 영향 받아

고구마는 유입 초기에는 부산 경남 지역의 음식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름 또한 공식 기록의 이름인 ‘감저(甘藷)’를 제치고 ‘고구마’가 된다든지, 욕지식 말 ‘고매’가 경상도 지역에서 캐릭터 같은 정겨운 이름으로 MZ세대에게 널리 불리는 것 등이 그 일례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변하면 음식 또한 뒤안길로 넘어가는 음식이 있고 새로이 만들어지는 음식이 있다. 식재료야 어디 크게 바뀌겠느냐마는 그 조리법과 조리해 먹는 음식의 종류는 나고 지는 법. 잘 보전하고 제대로 기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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