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가·연애·폴리아모리 소재로
- 사람 간의 간극 메우는 소통 강조
문학작품을 읽으면 공감 능력이 강해진다는 건 이제 ‘정설’이 됐다. 공감 능력을 워낙 강조하는 시대라 그런지 인터넷만 살펴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작가가 노심초사 숨겨둔 상징이나 짐짓 슬몃 묻어둔 실마리를 캐내는 공감 여행은 오늘날 예술의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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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소설집 ‘웰컴 문래’를 최근 펴낸 강이라 작가. 국제신문 DB |
울산에서 활동하는 작가 강이라가 두 번째 소설집 ‘웰컴 문래’(도서출판 득수·표지)를 냈다. 강 작가는 제24회 신라문학상 수상,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으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2018년 첫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를 냈고 이어 공동 작품집 ‘나, 거기 살아’ ‘당신의 가장 중심’ ‘작은 것들’에 속속 작품을 실으며 꾸준히 활발하게 창작한다.
그의 소설에는 상징성 강한 요소나 표현이 ‘미니멀하게’(아주 적게) 등장했다가 슬쩍 없어지곤 한다. 이런 걸 찾아내거나 즐겨 만나면 소설 읽는 섬세한 재미를 느낀다. 그런 걸 안 놓치고 똑똑 따다 보면 독자는 투명하고 차분한 문장·낱말의 세계를 만난다. 힘주고 애써서 무얼 굽히거나 펴려 하지 않는데 그 잔잔한 강물 같음이 강이라다움을 이룬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는 치열하고 아프고 위험한 이 세상에서 작은 공감의 기미를 놓치지 않는다면 목숨도 살리고 영혼도 구할 수 있다고 차분히 말한다.
수록 작품 ‘우리의 공갈 젖꼭지 나무’는 멋진 역설을 그려 보인다. 학원 국어강사 다정의 집은 가난하다. 수강생인 중학생 한솔의 집은 부유하다. 쫓기고 찌들려 담배 피는 버릇을 갖게 된 다정이 무력감·공허감에 학원 교실에서 떠밀리듯 담배를 피워 물다 위기에 처하자 한솔이 자기를 희생해 가며 구한다. 다정은 한솔 엄마를 만난다. “정다정 선생님 믿고 맡기는 거예요. 애 성적, 좀 잘 부탁드려요.” 한솔 엄마가 이렇게 말하자 다정은 생각한다. “애를 좀 부탁한다고…한솔이를 잘 부탁한다고 했으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다정의 집은 가난한데, 식구는 모두 정말 다정한 사람들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솔과 다정은 짧은 여행에 나선다. 한솔이 털어놓는다. “샘은 애들 이름을 부를 때 항상 우리라는 말을 붙여요. 우리 한솔이 왔니…우리 한솔이가 풀어볼래…우리 한솔이 혼날래.” 덧붙인다. “샘, 저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아요.” 명장면은 속상한 다정이 아파트 주민의 암묵적 흡연구역에 앉아 담배 필 때, 청소 일을 하는 아버지와 마주친 때다. 아버지는 지긋이 말한다. “그냥 버려…괜찮아…괜찮대도. 버려. 아버지가 치워줄게.…고단하겠지. 우리 다정이도.”
‘수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는 핏줄이 아니지만 소중한 가족이 된 외할머니-엄마-젊은 여성 서늘봄의 당차고 당당하고 생기 넘치는 내면이 수국처럼 피어나는 단편소설이다. 서늘봄의 연하 남자친구 현우는 우물쭈물 생각 많은 성격인데, 그가 서늘봄과 외할머니에게서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배워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핸우 군은 막걸리 좋아하나? 나는 좋아하네(외할머니).” “참 부럽네. 나도 연애하고 싶어(외할머니).” “결혼도 하고?(서늘봄) 뭐 하러, 결혼해서 과부밖에 더 됐어? 오지게 연애만 할 거야(외할머니).”
‘스노볼’ ‘물고기 그라피티’에서는 부유하지만 공감력이 떨어져 정작 자녀가 무얼 간절히 바라는지 도무지 모르고 ‘진심’이라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가 도드라진다. 표제작 ‘웰컴, 문래’는 폴리아모리(배타적이지 않은 동시다발적인 사랑)를 들고 왔다. 작가는 이를 그저 소재로 쓰지 않고 ‘함께함’에 관한 사유로 확장한다. 예컨대 “좋다…너희들과 함께 있으니까.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이렇게 야밤에 걸을 수도 있고” 같은 문장이다.